움베르토 에코 (Umberto Eco)
20세기를 대표하는 기호학자이자 미학자로, 세계적 인기를 누린 소설가이다. 1932년 이탈리아 알레산드리아에서 태어나서 토리노 대학교에서 중세 철학과 문학을 공부하고 학위 논문을 발전시켜 1956년 첫 번째 저서 『토마스 아퀴나스의 미학 문제』를 펴냈다. 이후 이탈리아는 물론 미국, 브라질, 아르헨티나 등 여러 나라의 대학에서 강의를 하고 왕성한 저술 활동을 펼쳤다. 1971년에는 볼로냐 대학교 부교수로 임명되었고 이때부터 그의 기호학 이론들이 본격적으로 자리를 잡기 시작했다. 정교수로 승진해 2007년까지 볼로냐 대학교에 재직했으며 국제기호학회 사무총장을 맡기도 했다.
1980년 첫 소설 『장미의 이름』을 출간했고, 이 작품은 곧바로 <백과사전적 지식과 풍부한 상상력의 결합>이라는 찬사를 받으며 전 세계에서 3천만 부 이상 판매되었다. 이후 『푸코의 진자』, 『전날의 섬』, 『바우돌리노』, 『로아나 여왕의 신비한 불꽃』, 『프라하의 묘지』, 『제0호』 등 역사와 허구, 해박한 지식과 놀라운 상상력이 교묘하게 엮인 소설들을 발표했다. 소설 외에도 그의 저서는 철학, 미학, 역사, 정치, 대중문화 비평 등 인문학 전체라고 할 만큼 광범위하다.
『미친 세상을 이해하는 척하는 방법』은 『레스프레소』지에 연재한 <미네르바 성냥갑> 중에서 2000년부터 타계 전까지 쓴 최근 칼럼을 모은 에세이로, 독선과 광신을 경계하고 언제나 명석함과 유머를 잃지 않았던 그가 2016년 암으로 세상을 떠난 직후 출간되었다.
박종대
성균관대학교 독어독문학과와 동 대학원을 졸업하고 독일 쾰른에서 문학과 철학을 공부했다. 움베르토 에코의 《미친 세상을 이해하는 척하는 방법》, 리하르트 다비트 프레히트의 《세상을 알라》 《너 자신을 알라》 《사냥꾼, 목동, 비평가》 《의무란 무엇인가》 《인공 지능의 시대, 인생의 의미》와 《특성 없는 남자》 《데미안》 《수레바퀴 아래서》 등 150권이 넘는 책을 번역했다.
들어가며
내가 로마의 시사 잡지 『레스프레소 L'Espresso』에 「미네르바 성냥갑 La Bustina di Minerva」이라는 칼럼을 쓰기 시작한 건 1985년 3월부터였다. (······)
이 책에 실린 모든 칼럼 또는 나의 거의 모든 칼럼은 〈유동사회〉라는 우리의 사회적 현상에 대한 성찰로 이해됨 직하다. 최근에 쓴 성냥갑 칼럼에서 이 현상에 대해 본격적으로 다룬 바 있기에 여기서는 그 칼럼으로 문을 열겠다. _ p9~10
유동사회
〈유동사회 Liquid Society 〉 또는 〈유동근대〉는 알다시피 지그문트 바우만이 처음 사용한 개념이다. (······)
바우만이 볼 때, 현대에 새로 생겨난 특징 중 하나가 국가의 위기다. 초국가적 실체의 권능에 맞서고 있는 지금의 국가들에 어떤 결정의 자유가 남아 있을까? 개인에게 우리 시대의 문제를 동질적 방식으로 해결할 가능성을 보장하던 조직체는 사라졌고, 그런 조직체의 위기와 함께 이데올로기의 위기 역시 심화되었다. 정당의 위기가 고조되었고, 개인의 욕구를 이해하고 해석하면서 조직의 일원이라는 소속감을 개인에게 심어 주던 가치 공동체도 전반적인 위기에 빠졌다. _ p12~14
1부 늙은이와 젊은이
잘못 산 13년
나무랄 게 없으면 자기 일을 잘 해낸 사람이다. 나는 <좋은 교황>이라든지 <정직한 자카니니>라든지 하는 말을 들으면 항상 마음이 좀 불편하다. 그런 표현은 다른 교황은 모두 나쁘고 다른 정치인은 정직하지 않다는 인상을 불러일으키기 때문이다. 교황 요한 23세와 자카니니는 그저 자신이 해야 할 일을 했을 뿐이고, 그래서 그들이 특별히 칭찬받아야 할 이유는 없다. (······) 올리버 웬들 홈스 2세의 금언이 생각나곤 한다. <내 성공의 비밀은 젊었을 때 내가 신이 아니라는 사실을 깨달았다는 데 있다.> 자신이 신이 아님을 깨닫고, 자신의 행위를 항상 의심하면서 지난 삶을 충분히 잘 살지 못했음을 자각하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그래야만 나머지 시간을 더 잘 보내려고 노력할 수 있다. _ p22~23
옛날 옛날에 처칠이 살았다
최근에 영국에서 실시한 설문 조사에 관한 기사를 읽었다. 그에 따르면 영국인의 4분의 1이 처칠을 허구의 인물로 생각하고 있었다. 그건 간디와 디킨스도 마찬가지였다. 반대로, 정확한 수치는 모르겠으나 응답자 가운데 상당수는 셜록 홈스나 로빈 후드, 엘리너 릭비를 실제 인물로 알고 있었다. _ p25
그런데 그런 질문을 우리나라 청소년들에게 던졌다면 가까운 과거에 대한 것조차 우리의 관념이 상당히 불분명하다는 사실을 알게 될 것이다. _ p27
많은 사람이 역사를 인생의 스승으로 받아들여야 한다는 말을 곰팡내 풀풀 나는 서당 훈장의 잔소리 정도로 치부하지만, 그럼에도 분명한 건 있다. 만일 히틀러가 나폴레옹의 러시아 원정을 면밀히 연구했더라면 과거와 똑같은 덫에 빠지지 않았을 것이고, 부시가 19세기 영국의 아프가니스탄 전쟁을 잘 알고 있었더라면, 아니 최소한 소련이 초기 탈레반과 벌인 최근의 전쟁이라도 제대로 알고 있었다면 아프가니스탄 원정을 다르게 기획했을 것이다. _ p29~30
신은 안다, 내가 바보라는 걸
다만 어리석은 일은 이런 경우 사람들이 <알아본다>는 의미를 착각하고 있다는 것이다. 우리는 자신의 성취나 희생, 또는 그 밖의 좋은 특성을 남들이 <알아주기>를 원한다. 하지만 우리가 텔레비전에 나온 다음날 누군가 카페에서 우리를 보고는 <야, 어제 너 텔레비전에 나온 거 봤어!> 하고 말한다면 그건 단순히 네 얼굴을 알아봤다는 것이지, 너를 알아준다는 뜻은 아니다. _ p41
나는 트위터를 한다, 그러므로 존재한다
술집에서의 수다가 국제 정치를 바꾸지는 못한다. 다만 파시즘 정권만이 술집에서 오고 가는 수다로 정치가 바뀔 것을 걱정해서 그런 곳에서 정치 이야기를 금지한 바 있다. 그러나 전체적으로 보면 다수의 생각은 각자 자기 생각을 내놓은 뒤 집계되는 투표용지의 수로 나타날 뿐이다. 누군가 다른 사람이 내놓은 의견이 선택되면 술집에서 말했던 것들은 모두 잊히고 만다. _ P45
사생활의 상실
타인의 생각과 감정을 감시하는 도구 역할을 하는 페이스북 같은 소셜 네트워크는 여러 권력 기관의 통제 수단으로 이용되기도 하지만, 사용자들의 열정적인 기여 덕분에 우리를, 바우만의 표현에 따르면 <고백 사회>로 이끈다. (······) 달리 표현하자면, 인류 역사상 처음으로 비밀 탐지의 대상이 비밀을 캐야 하는 스파이의 일을 덜어 주려고 그들과 협력하는 것이다. 게다가 그들은 이러한 항복에서 만족감을 얻는다. 그들이 존재하는 동안 누군가는 그들을 보고 있기 때문이다. 이때 그들이 범죄자로 보이건, 바보로 보이건 그건 문제가 안 된다. _ p50
2부 인터넷 세상
핸드폰을 삼키다
게다가 누군가의 입에 핸드폰을 쑤셔 넣는 것은 그 사람의 성기를 잘라 내는 것과 비슷하다. 그의 소유물 중에서 가장 내밀하고 개인적인 것을 훼손하는 일일 테니까. 그사이 핸드폰은 자연스럽게 우리 육체의 일부가 되었다. 귀의 연장이고, 눈의 연장이고, 심지어 페니스의 연장이기도 하다. 누군가를 그의 핸드폰으로 질식시키는 것은 그의 창자로 목을 졸라 죽이는 것이나 진배없다. <자, 받아, 메시지 왔어!>하고 말이다. _ p81~82
딸기 크림 케이크
그들은 내가 하는 말에는 관심을 보이지 않고 나중에 유튜브에 올릴 생각인지 행사의 겉모습만 촬영했을 뿐 아니라 내 말을 이해하는 것은 아예 포기한 채 말하는 내 겉모습만 핸드폰으로 전송하기에 바빴다. _ p84
열한 살 때였을 것이다. 우리가 피난 갔던 도시의 성벽 근처에서 이례적인 소리가 들려 달려갔다. 저 멀리 화물차와 마차가 충돌한 광경이 보였다. (······)
나는 걸음을 멈추었다. 공포로 온몸이 굳어 버렸다. 아스팔트 위에 사람의 뇌수가 흘러내린 광경을 본 것은 그때가 처음이었다. 게다가 죽은 사람을 본 것도, 돌이킬 수 없는 슬픔과 절망을 본 것도 처음이었다.
만일 그때 내가 오늘날의 거의 모든 청소년처럼 카메라 기능이 장착된 핸드폰을 갖고 있었다면 어떤 일이 벌어졌을까? 어쩌면 나는 사고 현장에 내가 있었다는 걸 친구들에게 보여 주려고 그 장면을 찍었을 것이고, 그다음에는 남의 불행을 나의 행복으로 아는 사람들을 위해 그 영상을 유튜브에 올렸을지 모른다. 그다음에도 그런 짓을 계속해 나가다가 또 다른 사고 장면들을 찍고, 그래서 타인의 고통에 무덤덤한 인간으로 변해 갔을지 모른다. _ p85~86
3부 음모와 대중 매체
<깊은 목구멍>은 어디에 있는가?
지금도 미국인의 달 착륙이 텔레비전 스튜디오에서 조작된 것이라고 믿는 사람들이 있는데, 그런 주장을 반박하는 논거로 사용될 수 있는 것이 바로 침묵의 증거다. 만일 미 우주선이 실제로 달에 착륙한 것이 아니라면 당시에 누군가는 그 사실을 말했을 것이다. 지구상엔 그것을 검증할 능력이 있는 누군가가 있었고, 그렇게 말하는 것이 그 누군가의 이익에도 부합했기 때문이다. 그건 바로 소련이다. 하지만 당시 소련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
우리는 (역사적) 경험으로 다음 사실을 안다. 첫째, 비밀이 있다면, 그게 설령 단 한 사람만 아는 비밀일지라도 당사자는 웬만큼 시간이 지나면 애인과의 잠자리에서라도 비밀을 털어놓게 돼 있다. (······) 둘째, 비밀이 있다면 적당한 가격에 그것을 팔 용의가 있는 사람도 항상 존재하기 마련이다. _ p98~99
음모와 비밀
음모의 심리학은 세간의 이목을 집중시킨 많은 사건에 대한 공식적인 설명이 우리를 충분히 만족시키지 못한다는 데서 기인한다. 그런 일은 드물지 않다. 우리로선 그런 불충분한 설명을 받아들이는 것이 고통스럽기 때문이다. (······)
어떤 의미에서, 의심을 동반한 해석은 우리를 우리 자신의 책임으로부터 해방시킨다. 우리를 불안하게 하는 것 뒤에는 하나의 비밀이 숨어 있고, 비밀의 은폐가 우리에게 해를 끼치기 위한 작당이라는 믿음을 우리에게 주기 때문이다. 음모를 믿는 것은 기적의 치료를 믿는 것과 약간 비슷하다. 다만 기적의 치료는 위협이 아니라 불가해한 행운을 설명하려 할 뿐이다. (포퍼의 말에 따르면 사람들은 항상 신들의 작당에서 그 이유를 찾는다.)
다행인 것은 일상생활에서도 음모와 비밀보다 더 투명한 것은 없다는 사실이다. 음모는 그게 효과적일 경우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면 그 결과가 명확하게 드러나면서 백일하에 밝혀지기 마련이다. 비밀도 마찬가지다. 비밀은 보통 <깊은 목구멍들>에 의해서만 누설되는 것이 아니다. 중요한 비밀이라면 기적적인 물질의 형태건 정치적 기획의 형태건 시간이 지나면 밝혀지게 돼 있다. 음모와 비밀이 끝까지 드러나지 않는다면 그건 어설픈 음모이거나 알맹이 없는 비밀, 둘 중 하나다. 비밀이 있다고 주장하는 사람의 힘은 그것을 숨기는 데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비밀이 있다고 우리가 믿게 하는 데서 나온다. 이런 의미에서 비밀과 음모는 그것을 믿지 않는 사람이 갖고 노는 효과적인 무기가 될 수 있다. (······)
역설적으로, 모든 가짜 음모 뒤에는 어쩌면 우리에게 그것을 진짜 음모로 믿게 만듦으로써 이익을 보는 사람의 음모가 숨어 있을지 모른다. _ p102~105
두 명의 빅 브라더
아마 빅 브라더가 소설 『1984년』에서 조지 오웰이 고안해 낸 알레고리인 줄은 꿈에도 모르는 시청자들이 많을 것이다. 소설 속의 빅 브라더는 소련의 스탈린을 연상시키는 독재자다. 그는 혼자 유일하게, 또는 매우 제한된 소수 지도층과 함께 모든 신민을 끊임없이 감시한다. _ p119
영웅이 필요한 나라는 불행하다
선장이 조난 시 배에서 맨 마지막으로 떠나는 것은 그 직업의 기본 원칙이다. 물론 그 의무를 다하는 데엔 분명 위험이 따른다. (······)
사람들은 왜 자신의 의무를 다했을 뿐인, 용감하고 신중한 사람을 영웅이라고 부르는 것일까? 베르톨트 브레히트는 『갈릴레이의 생애 Leben des Galilei 』에서 영웅이 필요한 나라는 불행하다는 점을 상기시켰다. 왜 불행할까? 그 나라에는 묵묵히 자신의 의무를 다하는 보통 사람이 없기 때문이다. 남의 것을 빼앗아 자기 배를 불리지 않고, 자신의 책임을 회피하지 않는 정직한 방식으로 자신의 의무를 다하는 사람들, 요즘엔 이런 표현을 좋아하는 것 같은데, <프로 정신으로> 자기 일을 하는 사람이 없기 때문이다. 그런 보통 사람들이 없다면 그 나라는 필사적으로 영웅적 인물을 찾기 마련이고, 그렇게 찾은 사람에게 금메달을 나눠 주기에 급급하다.
그렇다면 사람들이 자신의 의무가 뭔지 몰라 일일이 지시 내려 주는 카리스마 있는 지도자를 필사적으로 찾는 나라는 불행하다. 내 기억이 정확하다면 바로 그것이 『나의 투쟁』에 담긴 히틀러의 이념이었다. _ p132~135
시간과 역사
극단적 네오나치를 제쳐 놓고도 우리의 민족성에는 파시즘적 유산이 분명 어느 정도는 남아 있고, 그것은 이따금 인종주의나 동성애 혐오증, 마초 문화, 반공주의, 우익 발호 등의 형태로 다시 나타나곤 한다. 물론 엄밀하게 보면 이러한 성향은 파시즘 이전의 이탈리아에도 존재했다. _ p137~138
4부 인종주의의 여러 형태
히잡을 쓰라고 누가 명령했을까?
히잡이 비판을 받는 것은 자신의 정체성을 분명히 드러낼 목적으로 착용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자신의 소속이나 정체성을 드러내는 것을 뭐라 할 수는 없다. (······) 다만 흥미로운 건 코란이 그렇게 하라고 명령했기에 무슬림 여성들이 히잡을 써야 하느냐 하는 문제이다. (······) 그런데 히잡 착용과 관련해서 늘 인용되는 코란 24장에는 그런 규정이 없다고 한다. 가슴만 가리라고 기술되어 있을 뿐이라는 것이다. (······) 코란은 여성들에게 단순히 정숙하게 입을 것을 요구했다. (······)
그렇다면 여성들에게 베일을 쓰라고 요구한 사람은 누구였을까? 만델은 어느 정도 고소한 심정으로 답한다. 그 인물은 바로 「고린도 전서」의 사도 바울이라는 것이다. 물론 바울은 이 의무를 설교하고 예언하는 여성들에게로 한정했다. 그런데 바울 이후 또 다른 기독교인인 테르툴리아누스가 코란이 나오기 아주 오래전에 자신의 저서 『여성의 치장 De cultu feminarum 』에서 이렇게 썼다.
너희는 오직 너희 남편의 마음에 들도록 해야 한다. 너희가 다른 남자의 마음에 들지 않으려고 노력할수록 남편은 더욱 흡족해할 것이다. (······) 하느님은 너희가 베일을 쓰길 원하신다. 아마 남들이 너희 얼굴을 보지 못하게 하기 위해서일 것이다.
오호, 이제야 알 것 같다. 과거의 온갖 그림들 속에서 성모 마리아와 독실한 여성들이 왜 무슬림 여성들처럼 베일을 쓰고 있는지. _ p144~148
『쥐』에서 샤를리까지
프란치스코 교황은 이런 말을 했다. 자신의 어머니가 모욕을 당하면 누구든 주먹을 날릴 거라고. 많은 사람이 이 말을 듣고 무척 당혹스러워하고 불편해했을 것이다. 하지만 교황이 말한 건 분명하다. 주먹은 날릴 수 있지만 죽여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_ p166~167
5부 철학과 종교 사이
사랑과 증오
사랑의 계명은 우리에게 이웃을 우리 자신처럼 사랑하라고 요구한다. (······) 불가능한 일이다. 실제로 이 계명이 우리에게 권하는 것은 누구도 증오하지 말라는 것이다. (······)
반면에 증오는 집단적으로 나타날 때가 많다. 특히 전체주의 체제에서는 더욱 그렇다. 파시즘 시절의 학교는 어린 우리에게 영국의 <모든> 아들들을 증오하라고 가르쳤고 (······) 이렇듯 독재 체제와 포퓰리즘은 대중에게 증오를 요구한다. (······) 사랑은 몇몇 사람을 향해서만 내 가슴을 따뜻하게 하지만, 증오는 수백만 명의 사람이나 한 국가, 한 인종, 다른 피부색이나 다른 말을 쓰는 인간 집단들을 향해 나와 내 이웃의 가슴을 분노의 불꽃으로 뜨겁게 한다. (······)
따라서 증오는 개인적인 차원이 아니라 범위가 넓고 많은 사람에게 해당된다. 또한 단 하나의 불꽃으로 거대한 군중을 껴안는다. 소설에서는 사랑으로 죽는 것이 얼마나 아름다운지 이야기하지만, 신문에서는 증오하는 적에게 폭탄을 던짐으로써 사지로 뛰어든 영웅의 죽음이 얼마나 황홀한지 묘사되곤 했다.
이것이 바로 우리 인류의 역사가 예부터 증오와 전쟁, 학살로 점철된 이유이다. 거기엔 사랑이 끼어들 자리가 별로 없다. 사랑의 행위가 우리에게 내재된 견고한 이기주의의 좁은 울타리를 뛰어넘고 나오려면 정말 불편하고 힘든 점이 많기 때문이다. 증오의 환희에 대한 우리의 본능은 각 나라의 지도자들이 국민을 그리로 몰아가기 무척 쉬울 정도로 자연스럽다. _ p175~177
죽음은 어디에 있을까?
오늘날 우리는 죽음에 관해 사람들에게 무엇을 가르치고 있는가? 죽음은 우리와 동떨어진 병원에서 일어나는 일이고, 이제는 공동묘지까지 운구 행렬을 따라갈 필요가 없으며, 우리는 죽은 사람들을 주변에서 더는 보지 못한다고 가르치지 않는가? 뭐? 죽은 사람들을 더는 보지 못한다고? 아니다, 우리는 그들을 끊임없이 본다. (······) 그러나 그들은 우리가 아니다. 우리가 사랑하는 이도 아니다. 그저 TV나 영화 속 배우일 뿐이다. 심지어 죽음은 우리 집에서도 구경거리가 되고 있다. 강간 살해된 소녀나 연쇄 살인범의 희생자들을 보도하는 언론을 통해서 말이다. 물론 그렇다고 피 흘리는 시체가 직접 나오지는 않는다. 그건 우리에게 직접적으로 죽음을 상기시키기 때문이다. 대신 사건 현장에 꽃을 갖다 놓으면서 눈물짓는 친구들만 보여 줄 뿐이다. 그러고는 훨씬 더 고약한 사디즘적 성향으로 피해자 어머니를 찾아가 이렇게 묻는다. ≪따님이 살해당했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심정이 어떠셨습니까? ≫ 이로써 그들은 죽음을 보여 주는 것이 아니라 어머니의 고통이나 벗들의 슬픔을 연출할 따름이다.
이렇듯 죽음을 우리의 직접적인 경험 영역에서 몰아내면 훗날 때가 되어 죽음 앞에 섰을 때 우리는 더한층 겁을 먹고 뒤로 물러나게 된다. 죽음은 태어날 때부터 원래 우리 삶의 일부였고, 현자는 평생을 죽음과 함께 살아간다. _ p181~182
쉿, 그런 이야기는 하지 않는 게······
특정 주제를 언급하는 것에 대한 두려움, 즉 터부가 문제시되고 있다. 이런 식의 모든 터부는 그와 관련해서 굉장히 예민하게 반응하는 이슬람 근본주의자들 때문에 생긴 것이 아니라 미국에서 넘어온 정치적 올바름의 이데올로기에서 비롯되었다. (······)
차라리 말을 하지 않는 편이 나을 수도 있다. 다만 어떤 잘못된 말로 해를 입을지 모른다는 두려움 때문에 학자와 선생들이 예를 들어 아랍의 철학자를 아예 끌어들일 생각조차 하지 않는다면, 그런 문화는 장차 어디로 가겠는가? 아마 기억의 말살, 즉 침묵을 통해 존경할 만한 다른 문화의 소멸에 이르게 될 것이다. 문화 간의 소통과 이해에 전혀 도움이 안 되는 일이다. _ p196~199
6부 글을 쓰고 읽는 것에 대하여
불신과 동일시
소설적 허구는 미적 실험도 허용한다. 어떤 독자는 보바리 부인이 존재한 적이 없는 인물이라는 것을 잘 알지만, 그럼에도 플로베르가 그 인물을 창조한 방식을 즐길 수 있다. (······)
서술자는 우리에게 자신의 이야기가 정말 진실하다고 말하는 것이 아니라 마치 진실한 것처럼 말하고 있을 뿐이다. 그래서 자신의 이야기를 그대로 따라와 달라고 청한다. 콜리지가 권한 것처럼 <불신의 자발적 유예>를 부탁하는 것이다.
스칼파리는 괴테의 베르테르를 언급한다. 우리는 당시 얼마나 많은 낭만적인 젊은이들이 그 작품의 주인공과 동일시하기 위해 스스로 목숨을 끊었는지 안다. 그들은 그 이야기를 사실로 믿었던 것일까? 그럴 필요가 없다. (······)
우리는 보바리 부인이 결코 존재하지 않은 인물임에도 그녀와 비슷한 운명을 겪은 여자들이 현실 속에 많이 있음을 알고, 또 우리 자신에게도 어는 정도는 그녀와 비슷한 면이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리는 그녀의 이야기에서 인생 일반과 우리 자신에 대한 가르침을 끌어낸다. 고대 그리스인들은 오이디푸스가 겪은 일들이 실제라고 믿었고, 그것을 운명에 대한 숙고의 계기로 삼았다. 프로이트도 오이디푸스가 실존 인물이 아님을 잘 알고 있었지만, 그 이야기를 우리의 무의식 속에서 일어나는 사건들에 대한 이론으로 읽었다.
그렇다면 허구와 실재를 도저히 구분하지 못하는 독자들에게는 어떤 일이 일어날까? (······) 그들은 그저 <허구의 결핍>이라고 부르고 싶은 상태만 드러내고, <불신을 자발적으로 유예할 > 능력조차 없다. 이러한 독자는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많기에 관심을 기울일 필요가 있다. _ p266~268
7부 뻔뻔하고 멍청한 인간부터 황당하고 정신 나간 인간들까지
우리가 B를 아예 무시해 버리면?
그날 그 사건 이후에도 나는 며칠 동안 <똥싸개>를 계속 외쳐 댔지만, 엄마는 못 들은 것처럼 전혀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 (······)
아무리 <똥싸개>를 외쳐 대도 반응이 없자 나는 더 이상 <똥싸개>를 외치지 않았고, 그 뒤로는 좀 더 풍부하고 복잡한 어휘를 배우는 데 전념했다. (······)
어린 시절의 이 기억을 정치인이나 칼럼니스트, 신문 편집인들에 대한 충고로 내세우고 싶지는 않으나, 혹시라도 그들의 비판적 태도가 오히려 적에게 대중적 관심의 토대로 사용되는 것을 막고 싶다면 내 어머니의 방법을 한 번쯤 사용해 볼 수는 있을 듯하다. _ p286~287
좌파와 권력
1996년 로마노 프로디가 선거에서 이겼을 때였다. 좌파가 권력을 잡은 건 처음이었다. 당수 마시모 달레마가 단상을 향해 걸어갈 때 한 여성이 그의 소매를 붙잡고 소리쳤다. <마시모 동지, 이제야 드디어 우리는 힘 있는 야당이 될 겁니다!>
이야기는 이것으로 끝이지만, 그 속에 담긴 저주는 끝나지 않았다. 그 여성 당원은 자신의 정당이 승리한 것을 잘 알고 있었지만, 이제 그 정당이 정부를 구성해야 한다는 사실을 깨닫지 못하고 있었다. 다수의 사안에 <예>라고 말할 수밖에 없는 좌파 정당은 그녀로선 상상할 수 없는 일이었다. 모든 일에 오직 <아니요>라고 말하는 영웅적이고 고집 센 좌파 정당만 그녀의 머릿속에 각인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
유럽 좌파는 150년 넘게 반대 세력으로 살아왔다. 혁명을 꿈꾸었지만, 그 과정은 오랜 시간 인내로만 버텨야 했던 기다림의 연속이었다.
그 때문에 좌파는 항상 <아니요>라고 말할 수 있어야 했고, 그런 자신이 스스로 정당하다고 느꼈다. 그 세력 중 일부가 자의 반 타의 반으로 <예>라고 말한다면 그들은 <사회 민주주의자>로 비난받으며 당에서 쫓겨나거나, 아니면 알아서 당을 나가 새로운 정당을 만들었다. 따라서 좌파는 항상 분열될 준비가 되어 있었다. 다시 말해 영원히 세포 분열의 운명을 타고난 세력이었다. 그러다 보니 이제껏 정권을 잡을 만큼 힘이 강했던 적이 없었다. 약간 비비 꼬인 심정으로 말하자면 정권을 잡지 못한 것도 그들의 복일지 모른다. 그렇지 않았다면 다른 정당들과 정부를 구성하는 협상 과정에서 많은 사안에 <예>라고 말했어야 하기 때문이다. 좌파는 <예>라고 말하는 순간 도덕적 순수성을 잃어버린다. 그 순수성 때문에 그들은 늘 패배했지만 권력의 유혹을 고집스레 이겨 낼 능력은 갖출 수 있었다. _p288~290
용서를 구합니다
돌을 던진 뒤 재빨리 손을 숨기고는 용서를 구하는 사람은 숱하다. 그래 놓고는 또다시 지금까지 했던 것과 똑같은 행동을 한다. 용서를 구하는 데는 전혀 비용이 들지 않기 때문이다. _p291~292
골 빈 인간들과 신문의 책임
인터넷이 골 빈 인간들에게도 황당하기 짝이 없는 의견들을 말하도록 허용하는 것은 옳다. 하지만 그런 어리석음의 과잉은 소통 채널을 가로막는다. (······)
해결책이 하나 있기는 하다. 신문은 인터넷의 노예일 때가 많다. (······) 이제 그런 습성을 버려야 한다. 그 대신 웹 사이트들을 분석하는 데 힘을 쏟는 게 어떨까 싶다. 다시 말해 책과 영화에 관한 지면이 있듯이, 좋은 사이트는 추천하고, 부정확한 정보나 터무니없는 헛소리를 퍼뜨리는 사이트는 경고하는 지면을 신설하는 것이다. 이는 인터넷 사용자들에게 막대한 도움이 될 뿐 아니라 신문에서 등을 돌린 많은 사람이 다시 신문을 들추게 하는 요인이 될 수 있다.
(······) 결코 비용이 적지 않은 일이다. 하지만 문화적으로 상당히 가치 있는 일이고, 신문의 새로운 기능을 여는 서막이 될 수도 있다. _ p306~309
원제 : Pape Satàn Aleppe - Cronache di una società liquida (2016년)
지은이 : 움베르토 에코
옮긴이 : 박종대
주제 : 외국에세이
출판사 : 열린책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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