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은이 : 엘러리 퀸
옮긴이 : 서계인
출판사 : 검은숲
주제 : 추리/미스터리 소설

제1막: 제1장
햄릿 저택
9월 8일 화요일 오전 10시 30분
눈 아래 저 멀리서 우울한 안개에 싸인 허드슨 강이 희미하게 빛나고 있었다. 그 강 위로 흰 돛을 단 돛단배 한 척이 미끄러지듯 나타났고 평화로워 보이는 증기선 한 척이 천천히 상류로 올라갔다.
그들이 탄 자동차는 좁고 구불구불한 길을 흔들림 없이 올라가고 있었다. 차에 탄 두 사내는 바깥으로 고개를 내밀고 위를 올려다보았다. 상공에는 믿기 어려운 중세풍의 망루와 돌로 쌓은 성벽과 총안(銃眼), 기묘한 모양을 한 교회의 첨탑 같은 것들이 구름 사이로 모습을 드러냈다. 첨탑의 끝은 울창한 푸른 수풀 위로 솟아나와 있었다. (17쪽)
레인의 목소리는 매력적인 설득조로 바뀌어 있었다. 그는 경우에 따라 목소리를 자유자재로 구사했다.
"그럴 만한 이유에서, 지금 시점에서는 이 사건의 범인, 이제부터 이 인물을 X라고 부르기로 하죠. 아무튼 범인의 정체를 당신들에게 밝힐 수가 없습니다. 공범이 있는 듯도 하고요." (110쪽)
퀘이시는 철사에 걸린 덥수룩한 반백의 가발을 고른 뒤 전등을 끄고는 주인의 곁으로 되돌아왔다. 그리고 레인의 앞에 있는 긴 의자에 앉아 특이한 모양의 빗을 꺼내 들고 가발을 손질하기 시작했다.
"지나치게 완벽한 분장 따위는 없습니다요, 주인님. 세상은 엉터리 전문가들로 가득할 뿐이지요."
퀘이시가 말했다.
"자네의 솜씨를 탓하려는 건 아니네."
레인은 노인의 재빠른 손놀림을 지켜보며 말을 이었다.
"하지만 분장에서 세부적인 면은 그다지 중요하지 않다네. 말하자면 그런 건 소도구에 지나지 않지."
퀘이시는 불만스러운 표정을 지었지만 레인은 개의치 않고 말을 계속했다.
"정말이네. 평범한 사람들은 사물의 전체를 바라보는 본능이 있어. 자네는 그런 본능을 고려하지 않고 있네. 보통의 경우 사람들은 세부적인 면이 아닌 전체적인 면으로 사물을 바라보는 법이라네."
"하지만 말입니다. 그 세부적인 면도 중요합니다! 만약 세부적인 면에서 뭔가가 잘못되면 전체적인 면에도 영향을 끼치는 법이죠. 그렇게 되면 사람들은 어디가 잘못되었나 하고 그 부분을 찾습니다. 그러니까 세부적인 면에 완벽을 기해야 하는 건 당연합니다!"
퀘이시는 흥분한 듯이 큰 소리로 말했다.
"확실히 옳은 말이네. 캘리밴."
레인의 목소리에는 온화함이 깃들었고 애정이 담겨 있었다.
"그렇긴 하지만 자네는 아직도 내가 말하고자 하는 바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는 것 같군. 사람들이 이상하게 여길 정도로 분장의 세부적인 면이 조잡해도 좋다고는 결코 말할 수 없네. 그것은 분명한 사실이네. 분명 세부적인 면에도 완벽을 기해야겠지. 하지만 세부적인 면들이 모두 그래야 할 필요는 없다네. 알겠나? 분장이 아주 꼼꼼하다는 것은 모든 파도를 세세히 그려놓은 바다의 풍경이나 모든 잎사귀의 윤곽을 선명하게 그려놓은 나무와도 같은 거네. 모든 파도, 모든 잎사귀, 사람 얼굴의 주름살을 모두 하나하나 꼼꼼하게 그리는 것은 자칫 그림을 엉망으로 만들기 쉬운 법이라네." (183~184쪽)
레인의 표정은 언제나 그렇듯이 잘 억제되어 감정이 드러나지 않았다. 그는 무대에서 평생 동안 쌓아온 훈련 덕분에 곡예사가 사지를 마음대로 다루듯이 얼굴 근육을 다룰 수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지금은 아무도 그를 눈여겨보지 않았기 때문에 레인의 두 눈 속에는 무언가 의미가 담긴 번득임이 일었다. 마치 숲 속에 몸을 숨기고 엽총을 겨누고 있는 사냥꾼처럼 예리한 활기와 냉철한 이성이 빚어내는 묘한 흥분과 기대감이 뒤섞인 번득임이었다. 누구든 이 두 눈을 들여다본다면 이 두 눈의 주인이 불구의 몸으로 불편한 생활을 하고 있다고는 도저히 상상도 할 수가 없을 것이다. 그 무엇인가가 그의 자아를 눈뜨게 하고, 신선한 활력으로 그 존재를 자극하고, 자신감과 활기와 날렵함으로 가득 찬 새로운 물줄기로 생명의 흐름을 이끌었던 것이다. (225쪽)
레인은 쉬지 않고 얘기를 이어갔다.
"이처럼 주안점은 그릇된 곳에 놓여 있고 접근 방법은 잘못되어 있습니다. 당신들의 근대적인 범죄 수사 방법 또한 무턱대고 알리스를 떠받들거나 햄릿 역을 배리모어에게 맡기는 것처럼 주안점이 엉뚱한 곳에 놓인 불합리한 방법일 뿐입니다. 연출가는 셰익스피어가 조화롭게 만들어놓은 작품의 특징에 배리모어가 적합한지 어떤지는 생각해보지도 않고, 햄릿을 왜곡하고 깎아내고 조화를 깨뜨려 배리모어에게 적합하도록 뜯어고칩니다. 경감님과 지방 검사님도 이와 비슷한 오류를 범하고 있습니다. 당신들은 범죄의 확실한 특징을 조사하여 존 드위트가 적합한지 여부를 판단하지 않고, 멋대로 범죄 쪽을 왜곡하고 깎아내고 조화를 깨뜨려 존 드위트에게 적합하도록 뜯어고치고 있는 것입니다. 가설을 지나치게 끼워 맞추려 하다 보니 설명할 수 없는 크고 작은 갖가지 사실들이 애매하게 남아 있는 겁니다. 언제나 확실한 사실만을 취합해서 범죄 그 자체를 고찰하는 입장에 서서 문제를 풀어 나가야만 합니다. 만약 어떤 가설이 아직 해결되지 않은 사실과 모순된다면 그것은 그 가설이 잘못되어 있는 탓입니다. 아시겠지요?"
"얘기 잘 들었습니다, 레인 씨."
브루노는 미간을 찌푸렸지만 그 태도는 미묘하게 바뀌고 있었다. 그는 말을 이었다.
"실로 멋진 비유이고 근본적으로 그것이 진실임을 의심치 않습니다. 하지만 도대체 우리가 그러한 방법을 쓸 수 있는 기회가 얼마나 되겠습니까? 우리는 행동해야만 합니다. 현재 우리는 상사와 신문, 대중한테서 압박을 받고 있습니다. 어느 정도 모호한 점이 있더라도 그것은 우리가 잘못된 게 아니라 증인들이 말을 하지 않았거나 혹은 사건과는 관계가 없는 하찮은 것이기 때문입니다." (239~240쪽)
그림 판사가 외쳤다.
"앞으로 남은 공판 중에 이처럼 수치스러운 소란을 되풀이할 경우에는 전원 퇴정을 명하고 입구를 폐쇄하겠소! 휴정 요구에 동의하여 오후 2시까지 휴정하겠습니다." ……
"몇 년 동안 이토록 눈부신 변론을 들어본 적이 없었네. 프레드!"
소용돌이치는 혼란 속에서 검찰 측 테이블 앞에 앉은 브루노 지방 검사와 섬 경감은 반쯤은 우스꽝스러운 부아를 억누르며 서로 마주 보았다. 신문기자들이 변호인 측의 테이블을 둘러쌌다. 정리 한 사람이 기자들에게 에워싸인 드위트를 보호하느라 애를 먹고 있있다.
섬 경감이 앞으로 몸을 기울이며 신음하듯이 말했다.
"브루노, 꼴이 말이 아니게 됐소. 아무래도 당신은 좋은 웃음거리가 된 거 같군요."
"그건 당신도 마찬가지라고, 섬! 당신 또한 좋은 웃음거리라고. 어쨌든 증거를 수집하는 것은 당신 역할이었으니까. 그리고 난 그것을 제출했을 뿐이지."
브루노가 뜨악하게 대꾸했다.
"그건 나도 부정하지 않겠소."
경감은 미간을 찌푸리며 말을 이었다.
"아무튼 우리는 두 사람 다 뉴욕에서 으뜸가는 바보가 된 셈이오." (281~282쪽)
레인은 자신의 옆에서 조용히 귀를 기울이고 앉아 있는 드위트에게로 고개를 돌리고 말했다.
"드위트 씨, 당신은 인간의 감정에 가장 상처를 받을 무서운 경험을 했습니다. 생사를 결정짓는 것이지만 오류가 있을 수도 있는 평결을 피고석에 앉아 끝없는 세월을 보내는 것 같은 심정으로 묵묵히 기다렸습니다. 이것은 확실히 이 사회의 가장 불가사의한 형벌입니다. 그와 같은 고통에 처해도 위엄을 잃지 않고 견뎌낼 수 있었다는 것은 너무나도 장한 일입니다. 저는 프랑스의 저술가 시에예스가 공포정치 시대에 무엇을 했는가라는 질문을 받고서 대답한 약간 익살스러우면서도 비극적인 말이 생각납니다. 그가 한 대답은 '살아 있었다.'였습니다. 이것이야말로 기개와 달관을 지닌 인간이 아니면 해낼 수 없는 대답이 아닐까요?"
레인은 깊이 한숨을 들이켜고 전혀 표정을 바꾸지 않은 채로 모두를 둘러보았다.
"아마도 인내하는 용기보다 더 위대한 미덕은 없을 것입니다. 이 말이 진부하다는 것 자체가 이 말이 진리임을 보증하는 것입니다." ……
그는 목소리에 힘을 주며 이야기를 진행했다.
"셰익스피어의 작품 가운데에서 그 진가를 충분히 인정받지 못하는 작품의 하나인 《리처드 3세》에는 악인의 이면에 자리 잡고 있는 선에 대해 묘사한 구절이 있습니다. 그 깊은 통찰력은 얄밉다는 생각이 들 정도입니다."
그는 고개를 숙이고 있는 드위트의 머리를 천천히 내려다보았다.
"드위트 씨, 지난 몇 주일 동안의 경험은 다행히도 당신에게서 살인 혐의를 거두게 해주었습니다. 하지만 그것으로 큰 문제가 해결된 것은 아닙니다. 왜냐하면 우리 주변 어딘가에는 이미 두 사람의 목숨을 지옥으로 보낸, 아니 살해된 사람들을 위해서는 천국이라고 말하고 싶습니다만, 여하튼 그러한 살인자가 정체를 감춘 채 숨어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이 살인자의 성격이나 그의 영혼에 대해 생각해 본 사람이 우리 중 몇이나 있을까요? 비록 진부한 생각일지는 몰라 그 인간에게도 영혼이 있고 우리의 정신적 안내자들의 말을 믿는다면 그의 영혼 또한 불멸의 것입니다. 우리 대부분은 살인자를 보통의 인간과는 다른 괴물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우리 자신의 마음속 깊숙한 곳에도 아주 사소한 자극에 따라 살인을 저지를 수 있는 약점이 도사리고 있음을 깨닫지 못하는 것입니다……."
방 안의 공기를 무겁게 만드는 침묵이 감돌았다. 레인은 주저없이 얘기를 계속했다.
"그럼, 여기서 셰익스피어의 가장 흥미로운 극적 인물인 피에 굶주린 불구자 리처드 3세를 작자가 어떻게 관찰했는지 살펴보기로 합시다. 인간의 탈을 쓴 귀신이 있다면 그것은 바로 리처드 3세일 것입니다. 그런데 모든 것을 꿰뚫어 볼 수 있는 안목을 지닌 셰익스피어는 대체 그의 무엇에 주목했던 걸까요? 리처드 3세 자신의 통렬한 독백 속에서 그걸 찾아보기로 하죠……." ……
"'아아 겁쟁이 양심 같으니, 어째서 이다지도 나를 괴롭히느냐, 등불이 파랗구나. 한밤중인 모양이다. 식은땀으로 온몸이 떨려온다. 뭘 겁내는 거지? 나 자신을? 나 이외에는 아무도 없잖아. 리처드는 리처드를 사랑하지. 나는 곧 나니까. 어디 살인자라도 와 있단 말인가? 바보같이……. 아니지 그래, 내가 바로 살인자야. 그럼 도망쳐야지……. 뭐라고, 내가 내 자신으로부터? 그렇지, 커다란 이유가 있지……. 복수가 두렵거든. 뭐, 내가 나를 복수한다고? 아아, 나는 나를 사랑하는데, 어째서냐고? 내가 나 자신에게 뭐 잘해준 것이라도 있기 때문인가? 아아, 그게 아냐! 나는 저 가증스러운 죄악을 저질러온 나 자신을 미워하고 있다고! 나는 악인이야. 그런데도 아닌 척 시치미를 떼고 있지. 자기 얘기를 좋게 말하려는 어리석은 놈이라고. 이 멍청아, 우쭐대지 마라…….'"
흐트러진 어조로 당장이라도 끊어질 듯이 헤매던 목소리가 느닷없이 다시 높아지면서 비극적인 자책의 외침으로 끓어올랐다.
"내 양심은 천 갈래의 혀를 가졌고, 그 혀 하나하나가 갖가지 얘기를 하지. 그런데 한결같이 나를 악인이라고 아우성치고 있어. 위선이야. 더할 나위 없는 위선이라고. 온갖 죄가, 무거운 죄 가벼운 죄 할 것 없이 온갖 죄가, 유죄 유죄! 하고 외쳐대면서 법정으로 한꺼번에 밀어닥치고 있어. 이젠 끝장이야……. 나를 사랑하는 자는 아무도 없어. 내가 죽더라도 누구 하나 나를 동정하지 않을 거야. 그렇지, 남이 뭣 때문에 나를 동정한단 말인가. 나조차도 나 자신에게는 아무런 동정도 느낄 수가 없는데!"
누군가가 한숨을 쉬었다. (290~294쪽)
"설탕 그 자체가 무엇을 의미하는 건지는 모르겠지만 한 가지 점만은 분명하다고 생각합니다. 죽어가던 그 사내의 행동은 살인자의 정체에 대한 단서를 남기기 위한 것이었다는 점입니다."
레인이 찬사를 보내고서 얘기를 계속했다.
"훌륭합니다! 맞았습니다, 드위트 씨. 그럼 지금부터 설명해 드리죠. 잘 들으세요. 그 설탕은 설탕 그 자체로써의 단서였을까요? 곧, 피해자는 범인이 단것을 좋아하는 사람임을 가리키려 했을까요? 아니면 범인이 당뇨병 환자라는 의미일까요? 물론 그렇지 않습니다. 저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왜냐하면 이 단서는 의심할 여지없이 경찰에 알리려고 남긴 것입니다. 그리고 죽어가는 피해자의 입장에서 보면 경찰이 그것을 추리하면 충분히 밝혀낼 가망이 있는 단서를 남겼으리라 생각되기 때문입니다. 한편, 설탕은 이 밖에도 달리 어떤 것을 나타낼 수 있었을까요? 분말 설탕과 비슷하게 생긴 것은 무엇일까요? 그렇습니다. 그것은 백색의 결정 물질입니다! 그래서 나는 빈 경찰의 책임자에게 이렇게 써 보냈습니다. 설탕은 범인이 당뇨병 환자임을 가리키기 위한 것인지도 모르지만 더욱 가능성 있는 해석은 범인이 코카인 상용자라는 것을 가리키기 위한 것일 거라고 말입니다."
모두 레인을 뚫어지게 바라보고 있었다. 드위트가 가볍게 허벅지를 치면서 말했다.
"그렇지, 코카인 또한 하얀 결정 분말이지!"
레인이 계속 얘기했다.
"체포된 범인은, 이곳 미국의 대중지에도 곧잘 코가인 중독자로서 우스꽝스러운 화젯거리를 제공하는 사람 중의 하나였습니다. 답장을 보낸 그곳 경찰의 책임자는 그 사실을 알려주며 제게 거창한 찬사를 잔뜩 늘어놓더군요. 하지만 저는 그 수수께끼를 해결한 것이 그다지 대단한 일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보다도 제가 흥미를 느낀 것은 피살된 사내의 심리입니다 그 사내가 남들보다 뛰어난 지능을 갖고 있었다고는 생각되지 않습니다. 그런데도 그의 두뇌 어딘가에서 절묘한 생각이 번득였던 것입니다. 그리고 그는 죽기 직전의 아주 짧은 순간에 범인에 대해서 자신이 남길 수 있는 유일한 단서를 남겼던 것입니다. 곧, 이처럼 죽기 직전의 비할 바 없이 성스러운 순간에 인간의 두뇌는 한없이 비약하는 것입니다." (304~306쪽)
"콜린스가 직접 조사당하지는 않았단 말입니까? 어떻게 그럴 수 있었나요?"
경감은 입을 꾹 다물었다가 말했다.
"녀석으로서는 그다지 어려운 일은 아니었죠. 서류를 변조해서 몇 달 동안이나 발각되지 않도록 막아왔던 거죠. 그리고 또 뇌물로 싸구려 정치가들을 마구 이용하기도 했고요. 그러다가 결국엔 더는 손을 쓸 수도 없는 궁지에 내몰리게 된 셈이죠."
"인간성의 단면을 증명하는 멋진 실례로군요. 울컥하기 쉽고 외고집일뿐더러 감정에 지배당하기 쉬운 사내였던 만큼 이제까지의 인생은 아마도 남을 짓밟으려는 충동의 연속이었을 겁니다. 따라서 그가 지나온 길에는 그의 책략에 의해 쓰러진 사람들의 시체가 무수히 널려 있을 테죠……. 브루노 씨의 얘기에 따르면 그는 무릎을 꿇고 애원을 했다더군요. 그도 결국은 패배자인 셈입니다, 경감님. 그도 완전히 짓밟히고 만 것입니다. 어떻게 보면 이로써 그는 사회에 대해 일찌감치 죗값을 치르기 시작한 것이기도 합니다." (401쪽)
"자, 아래로 내려가십시다, 경감님. 우리는 아마도 '생각해왔던 일을 행동으로 옮길 때가 왔노라.'라는 대목에 이른 것 같습니다. 그러므로 '생각해왔던 일을 해야만 하노라.'라고 해야겠죠." (409쪽)
몇 시간이나 수색을 계속하면서 섬 경감은 아주 맥이 빠지고 말았다. 드루리 레인의 예지력이나 추리력에 대한 신뢰는 커졌다고는 하더라도 마음속에서 거센 동요가 일어나는 것을 억누를 수는 없었다. 종교재판 시대의 유물 같기도 한 묘하게 생긴 장비를 갖춘 사내들 한 무리가 오후 내내 서해안선을 가로지르는 뉴저지 주의 강들을 따라 깊은 강바닥 여기저기를 휘저어대고 있었다. 준설 작업이 계속해서 실패로 끝남에 따라 경감의 얼굴에는 점차 못마땅한 빛이 떠올랐다. 레인은 준설 작업을 감독하며 찾고자 하는 것이 있음 직한 물속 지점을 이것저것 제안할 뿐 다른 말은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414쪽)
기묘한 여해이었다……. '역사'라는 상상력이 없는 깡마른 말(馬)이 똑같은 일을 되풀이했던 것이다. 그때와 같은 장소, 그때와 같은 어두운 밤, 그때와 같은 시각, 그때와 같은 소음. (425쪽)
처음과 마찬가지로 눈 아래 저 멀리로 허드슨 강이 흐르고 있었고 그 강 위로 흰 돛을 단 돛단배와 증기선이 평화롭게 오가고 있었다. 다섯 주 전과 마찬가지로 섬 경감과 브루노 지방 검사를 태운 자동차는, 우아하게 단장한 옛이야기 속의 성처럼 단풍 든 수풀에 둘러싸여 덧없고도 미묘한 아름다움을 보이는 햄릿 저택을 향해 좁고 구불구불한 길을 쉬지 않고 기어오르고 있었다.
다섯 주! (438쪽)

엘러리 퀸 (Ellery Queen) 20세기 미스터리를 대표하는 엘러리 퀸은 만프레드 리(Manfred Bennington Lee, 1905~1971)와 프레더릭 다네이(Frederic Dannay, 1905~1982)라는 두 사촌 형제의 필명이다. 작가 활동 외에도 미스터리 연구가, 장서가, 잡지 발행인으로 잘 알려져 있다. '엘러리 퀸'은 그의 작품 속에 등장하는 탐정 이름으로, 셜록 홈스와 명성을 나란히 하는 금세기 최고의 명탐정이다.
서계인 (옮긴이) 1986년 계간 <시와 의식> 신인상을 받으며 문단 데뷔 후 번역 활동을 하며 명지대학교 객원교수 및 성균관대학교 사회교육원 교수를 역임했다. 옮긴 책으로 《X의 비극》, 《Y의 비극》, 《Z의 비극》, 《드루리 레인 최후의 사건》, 《붓다처럼》, 《라이언스 게임》, 《플럼 아일랜드》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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