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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문화

(책)제3의 침팬지

by 두우주 2025. 1. 3.
728x90

0123
출처 : 알라딘

 

프롤로그 :

인간이 동물과는 전혀 다른 존재라는 것은 의문의 여지가 없다. 동시에 인간은 신체 구조나 신체 분자의 가장 미세한 부분까지 대형 포유류의 한 종류라는 것도 틀림없는 사실이다. 이러한 모순이야말로 인간이라는 종(種)이 지닌 가장 흥미로운 특징일 것이다. 그것은 누구나 잘 아는 사실인데도 정작 어떻게 해서 그렇게 되었는지, 또 그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여전히 파악하기 어려운 일이다.

한편 인간과 다른 동물과의 사이에는 도저히 넘어설 수 없는 높은 벽이 가로놓여 있는 것처럼 보인다. 그래서 인간은 '동물'이라는 범주를 따로 만들어놓고 인간이 동물이라는 사실을 인정하려 들지 않는다. 지네, 침팬지, 조개류 등은 짐승이나 벌레로서의 생물체 특성을 지니고 있을 뿐, 인간만이 지닌 고유한 특징은 없다고 우리는 생각하고 있다.

인간만이 지닌 독특한 특징으로는 말하기, 쓰기, 복잡한 기계를 만들 수 있는 기술 등을 들 수 있다. 인간은 생활하기 위해서 맨손이 아니라 도구를 활용한다. 거의 모든 인간은 옷을 입고 예술을 사랑하며 종교를 믿는다. 인간은 지구 구석구석까지 퍼져 지구상의 숱한 에너지와 생산의 대부분을 지배하고 있으며, 대양의 깊은 바다부터 우주에 이르기까지 그 영역을 확대하고 있다. 한편 집단 살육이나 고문을 하면서 쾌감을 느끼는 심리, 마약 같은 유독 물질 중독, 다른 종을 멸종시키는 부정적인 행동도 인간만의 독특한 일면이다.

미숙하게나마 인간의 독특한 특징 중(예를 들면 도구 사용) 한두 가지를 보이는 동물도 간혹 있지만 인간과는 비교도 되지 않는다. 따라서 실제로든 법률상으로든 인간은 동물이라고 생각되지 않는다.

1859년에 찰스 다윈이 '인간은 유인원에서 진화했다'는 이론을 발표했을 때, 신이 인간을 창조했다고 믿어왔던 사람들은 그의 이론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아직도 미국에서는 대학 졸업자의 4분의 1을 비롯한 수많은 사람이 그렇게 믿고 있다.

그러나 다른 측면에서 보면 인간은 동물임이 분명하다. 여느 동물과 신체 구조가 같고 분자나 유전자도 같다. 인간이 특별히 어떤 종류의 동물인가를 생각해보면 더욱 분명해진다. 인간은 외견상 침팬지와 매우 비슷해서 신이 인간을 창조했다고 굳게 믿었던 18세기의 해부학자들조차 이미 인간과 침팬지의 유연성(類聯城)을 알고 있었다.

인간에게서 옷을 벗기고 모든 소유물을 빼앗은 후, 말하는 능력마저 없애버리고, 오로지 으르렁거리는 소리밖에 낼 수 없게 만든 다음 그들을 동물의 침팬지 우리 옆에 넣어보자. 이제 동물원 우리에 갇힌 침팬지와 인간을 비교해 보자. 동물원에 갇힌 인간은 두 발로 서서 걸을 줄 아는 털 없는 침팬지일 뿐이다.

외계에서 동물학자가 온다면 그는 우리를 자이르의 보노보(일명 '피그미침팬지')와 열대 아프리카에 사는 일반적인 침팬지와 함께 '제3의 침팬지'로 분류할 것이다. (17~19쪽)

 

인류의 흥망에 관한 이야기를 담은 이 책은 다섯 부분으로 이루어져 있다.

1부에서는 수백만 년 전부터 시작해서 1만 년 전쯤, 인간이 농업을 시작하기 전까지 다루겠다. …… 여기에서는 우리 유전자의 98퍼센트가 침팬지의 유전자와 같다는 결론에 대해 음미하고 남은 2퍼센트의 특성으로 인류의 대약진이 어떻게 가능했는가를 살펴본다. ……

인간의 생활사는 화석으로 남아있지 않아서 언제부터 그렇게 변했는지 정확히 알 수는 없지만 매우 중요한 변화인 것만은 사실이다. 인류의 진화를 말할 때 뇌의 크기와 골반 형태의 변화보다도 이런 것을 많이 다루는 이유는 인류만의 독특한 문화 발달에 중요한 역할을 했기 때문이다. 이처럼 1부와 2부에서는 인류의 문화를 번영할 수 있게 한 생물학적 기반에 대해서 검토한다.

3부에서는 인간과 동물을 확연히 구분 짓는 문화적 특징에 대해 다루겠다. 언어, 예술, 기술, 농업 등은 인간이 가장 자랑스럽게 내세울 만한 주요한 특징이다. 그러나 이런 놀랄 만한 문화적 특징에는 유독성 화학물질의 남용 같은 어두운 그림자도 포함되어 있다.

이런 특징들이 인간에게서만 볼 수 있는 것인지 어떤지는 아직 확실한 결론이 나지 않았지만, 최소한 인간의 유독성 물질 남용은 동물에게 볼 수 있는 사례에서 진보한 것이라고 짐작되고 있다. 진화의 역사에서 볼 때 그 특징들이 최근에서야 뚜렷해진 것으로 보아 동물들 사이에 선례가 있었을 것이다.

이런 선례들은 어떤 형태로 나타났을까? 진보는 지구상에 존재하는 생명의 역사에 필연적인 일이었을까? 필연이라면, 우주 저편의 다른 많은 행성에도 진보한 생물이 살고 있는 것은 아닐까?

화학물질의 남용 외에도 인류를 멸망시킬 수 있는 어두운 그림자가 두 개나 더 있다. 4부에서 다루게 될, 외부 집단을 살육하는 성향은 동물들 사이에 이미 그 예가 확실히 있다. 개체와 집단 간의 대립으로 인하여 상대를 죽이는 동물은 인류 외에도 많이 있다. 다만 동물과 달리 인류는 기술적인 진보를 통해 살인 능력을 키워온 것이다.

4부에서는 정치적인 의미를 띤 국가들이 형성됨으로써, 문화적으로 동일화되기 전에는 항상 외부인을 경계하고 극단적으로 격리되어 있었던 인류의 상황을 검토한다. 여기서는 역사상 일찍이 볼 수 없었던 두 번에 걸친 처참한 세계대전에서 집단과 집단 사이에 벌어졌던 대립의 결말이 기술, 문화, 지리적 관계에 따라 어떻게 좌우됐는가를 알아본다. 그리고 세계 역사에서 볼 수 있는 타민족 대량 학살도 검토한다. 이 일은 다시 생각하는 것조차 괴로운 문제지만 역사를 올바르게 인식하지 않으면 과거의 잘못을 반복할 수 있으므로 대량 학살에 대한 검토는 살아있는 예로써 중요하다. ……

5부에서는 4부에서 다룬 인류의 현재 상황이 더욱 심해졌다는 것 외에는 전혀 새로울 게 없다는 점에 초점을 맞추고자 한다. 인간이 환경 관리를 그리치면서 인간 사회를 관리하려는 시도는 과거에도 몇 번이나 되풀이된 것이다.

에필로그에서는 우리가 동물의 상태에서 진화해온 과정을 더듬어보면서 인류를 멸망으로 이끄는 속도가 점점 빨라지고 있다는 사실을 강조하려 한다.

그 위험이 아직 먼 앞날의 일이거나 당장 코앞의 일이라고 생각했다면 나는 이 책을 쓰지 않았을 것이다. (26~29쪽)

 

 

 

보노보 및 침팬지와 우리를 구별하는 유전적 차이(1.6퍼센트)는 고작 보노보와 침팬지를 구별하는 차이(0.7퍼센트)의 두 배에 지나지 않는다. 침팬지와 사람을 구별하는 거리는 두 종의 긴팔원숭이끼리의 차이(2.2퍼센트)나, 붉은눈비레오(red-eyed vireo)와 흰눈비레오(white-eyed vireo)처럼 비슷한 새끼끼리의 차이(2.9퍼센트)보다도 가깝다.

우리의 DNA 중 98.4퍼센트는 침팬지의 DNA와 같다. 예를 들어 혈액에 붉은색을 띠게 하고 산소를 운반하는 역할을 하는 단백질인 헤모글로빈은 287개의 단위 수까지도 침팬지의 헤모글로빈과 똑같다. 이 점에 있어서도 인간은 단지 제3의 침팬지일 뿐이다.

침팬지와 보노보에게 해당되는 것은 우리에게도 해당된다. 직립보행이라든가 커다란 두뇌, 말하는 능력, 숱이 적은 체모, 독특한 성생활 등 인간이 다른 침팬지와 구별되는 중요한 특징은 인간의 유전자 중에 있는 1.6퍼센트 속에 전부 모여 있는 것이다. (47쪽)

 

명칭은 세세한 기술적 내용이 아니라 태도를 분명하게 드러내는 것이다(그것을 확실히 하기 위해 오늘 밤 배우자에게 '당신(그대)'이라는 호칭과 '이 돼지야'라는 호칭을 같은 표정과 말씨로 말해보라). 새로운 발견은 우리가 사람과 침팬지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해야 할지를 명시해주는 것은 아니다. 다윈의 《종의 기원》처럼 그 발견은 우리의 생각에 영향을 줄 것이다. 그리고 우리의 입장을 재조정하는 것은 아마 여러 해가 걸릴 것이다. (55~56쪽)

 

우리는 박테리아에서 인간에 이르는 범위 중 어디까지가 살인이며, 고기를 먹는 행위가 식인종이 되는 것인지 기준선을 정해야 한다.

보통 인간과 다른 모든 동물과의 사이에는 선이 그어져 있다. 그러나 세상에는 어떤 동물도 먹고 싶어 하지 않는 채식주의자도 많이 있다. ……

만약 우리의 윤리관이 인간과 다른 동물과의 사이에 완전히 독단적인 경계를 설정해둔 것이라면, 그것은 더 이상 높은 차원의 원칙은 없다는 식의 공공연한 이기심에 근거한 것이다. 지능과 사회적인 관계, 그리고 고통을 느끼는 능력에 있어서 동물보다 훨씬 우수하다는 점을 근거로 경계를 나눈다면, 인간과 다른 동물 사이에 절대적인 선을 긋는 논리를 정당화하기 어려워질 것이다. 왜냐하면 실험 대상이 되는 종이 바뀔 때마다 서로 다른 윤리적 규제를 적용해야 할 테니 말이다. (57쪽)

 

유인원의 계통에서 분기된 후 몇 백만 년 동안에는 인간도 살아가는 방식에 있어서 약간 영악한 침팬지에 지나지 않았다. 불과 4만 년 전만 해도 서유럽에는 기술도 진보도 거의 없는 원시 상태의 네안데르탈인이 살고 있었다. 그러다 해부학적으로 현대인과 같은 인간들이 기술, 악기, 램프, 무역과 진보를 가지고 유럽에 출현해 갑작스럽게 변화가 일어난 것이다. 그러자 아주 짧은 기간 안에 네안데르탈인은 자취를 감추고 말았다. (60쪽)

 

지구상에 최초의 생명이 탄생한 것은 수십억 년 전이다. 공룡은 약 6,500만 년 전에 멸종했다. 우리 조상이 침팬지 조상과 갈라진 것은 불과 600만~1,000만 년 전 사이였다. 인류의 역사는 생명의 역사에서 보면 정말 하찮은 것이다. 원시인이 공룡을 피해 달아나는 공상과학 영화는 그야말로 공상과학일 뿐이다.

사람, 침팬지, 고릴라의 공통 선조는 아프리카에서 살았다. 침팬지와 고릴라는 지금도 그곳에 살고 있으며 우리도 수백만 년 전까지는 그곳에서만 살았다. 우리의 선조도 원래는 유인원의 일종이었지만 잇달아 일어난 세 가지 변화를 계기로 현재의 인류로 향하기 시작했다.

그 변화 중 최초의 것은 약 400만 년 전쯤의 일이다. 당시의 팔다리 뼈 화석을 보면 그 구조상 인류가 습관적으로 뒷발을 딛고 서서 걷게 된 것이 바로 그때부터라는 걸 알 수 있다. 이에 비해 고릴라와 침팬지는 보통 네발로 걷다가 어쩌다 두 발로 서곤 한다. 뒷발로 걷게 된 덕분에 우리의 선조는 앞발을 다른 용도로 사용할 수 있게 되었는데, 그중에서도 도구를 사용할 수 있게 된 것이 가장 중요한 변화다.

두 번째 변화는 300만 년 전, 우리의 계통이 크게 두 종으로 나누어진 것이다. 같은 지역에 살고 있는 두 종의 동물은 생태학적으로 각각의 역할이 다를 뿐만 아니라 대개는 서로 교미할 수도 없었다.

우리의 선조가 유인원보다 조금 더 인간답게 바뀌게 된 세 번째 변화는 석기를 일상적으로 사용하게 된 것이다. 도구 사용은 인류의 특징 가운데 하나이지만 동물들도 종종 도구를 사용한다. 딱따구리핀치, 이집트민목독수리, 해달을 비롯한 많은 종이 각각 독립적으로 먹이를 손으로 잡기도 하고 가공하기 위해서 도구를 사용한다. 그러나 인간처럼 도구에 많이 의존하지는 않는다. 침팬지도 빈번히 도구를 사용하고 때로는 석기도 사용하지만 자연을 바꾸어 버릴 정도로 사용하지 않는다. (62~64쪽)

 

호모에렉투스와 초기의 호모사피엔스가 아프리카 이외의 땅에서 살았던 오랜 주거 기간에 비해 문화의 변화는 매우 느리게 진행되었다. 사실 중요한 진보라 불릴 만한 사건은 불의 사용뿐인지도 모른다. 베이징 원인이 살았던 동굴에 재, 목탄, 불에 탄 뼈 등, 불을 사용했다는 가장 오래된 증거가 있다. 이 증거들이 번개 때문이 아니라 정말 인간이 사용한 불에 의한 것이라면, 이러한 진보도 그나마 호모사피엔스가 아닌 호모에렉투스 때에 이루어진 것이다. 호모사피엔스의 출현은 우리가 인간성을 가지게 된 것은 유전자의 변화와 직접적인 관계가 없다는 것을 설명한다. 초기의 호모사피엔스는 침팬지 시대부터 진보되어 가면서 문화보다는 해부학적으로 진보하고 있었다. 제3의 침팬지가 시스티나성당에 그림을 그릴 생각을 할 수 있기까지는 몇몇 결정적인 요소가 첨가되어야 했다. (66쪽)

 

인간이 현재와 같은 인류의 몸 구조와 행동을 완전히 갖추게 되기까지 대형 동물 사냥이 일상의 식량 공급에 크게 보탬이 되지는 않았다고 여겨진다. 나는 수렵 활동이 인류 특유의 뇌나 사회를 발달시키는 추진력이 되었다는 일반론을 그다지 믿지 않는 편이다. 오랜 역사 속에서의 인간은 위대한 수렵인이 아니라 식물이나 소형 동물을 얻기 위해 석기를 사용하는 약삭빠른 침팬지였던 것이다. 가끔 커다란 동물을 죽인 적도 있긴 하나, 좀처럼 보기 드문 일에 관한 이야기들이 과장되어 계속 되풀이되었던 것이라고 생각된다. (72쪽)

 

규칙이 있는 한 사회에서, 위반에 따른 벌보다 위반으로 얻는 이익이 더 크다고 판단된다면 규칙을 지키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 따라서 문제는 양적인 것이 된다. 즉 규칙을 지키지 않는 쪽이 많아 사회 전체가 무너지든지, 규칙 위반이 있긴 하지만 조직 전체가 망가질 정도는 아니든지, 규칙 위반이 거의 없든지.

이 질문을 사람의 성행위에 대한 것으로 바꿔보자. 혼외정사로 태어나는 아기는 과연 몇 퍼센트일까? 90퍼센트? 30퍼센트? 아니면 1퍼센트? (135쪽)

 

이러한 사실은 다윈이 어째서 스스로 고안한 자연선택의 개념으로 인종의 변이를 설명하지 않았는지 가르쳐준다. 결국 그는 자연선택으로 설명하려던 시도를 다음과 같은 짧은 문장을 남기고 그만두었다.

"인종의 외형적 변이 중 어느 하나도 인간에게 직접적으로 도움이 되는 것은 특별히 없다."

다윈은 스스로 만족할 수 있는 이론에 몰두했고 그것을 자연선택과 대비해서 성선택이라 이름을 붙인 후 이를 설명하기 위해 한 권의 책을 썼다. 이 이론의 기본 개념은 간단하다. 다윈은 동물에게 생존상 명확한 가치는 없지만 이성을 끌어들이거나 동성의 라이벌을 위협하는 것과 같이 짝을 확보하는 데 도움이 되는 형질이 많다고 지적했다. (183쪽)

 

야생동물들 중에서 집단에 따라 눈동자 색깔이 파란색·녹색·회색·갈색·검은색으로 다양하다느니 지역에 따라 피부색이 흰색에서 검은색으로 달라진다느니 머리색이 빨간색·노란색·갈색·검은색·회색·흰색으로 제각각이라느니 하는 사례를 한번도 못 봤다. 진화할 수 있는 시간만 충분하다면, 우리는 성선택을 통해 변화할 수 있는 색깔이 무궁무진할 것이다. 만약 인간이 앞으로 2만 년 더 생존할 수 있다면 녹색 머리나 빨간색 눈을 갖고 태어나는 여성이 있을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여성을 섹시하다고 생각하는 남성도 있을 것이다. (189쪽)

 

나이를 먹고 죽어간다는 사실 그 자체만 보면 인간과 다른 동물은 전혀 차이가 없다. 그러나 자세히 보면 인간은 진화의 역사 속에서 발전해왔다. 유인원 중 어떤 개체도 현대의 미국 백인에 필적하는 수명을 기록했던 적이 없었고, 50세 이상 사는 유인원도 극소수에 지나지 않는다. 분명히 인간은 우리와 가장 가까운 종들보다는 천천히 노화한다.

40세 이상 살았던 네안데르탈인은 거의 없었지만 크로마뇽인은 60세 이상까지도 살았던 것으로 보아, 노화 속도가 늦추어진 것은 '대약진' 때였던 것 같다. 천천히 늙는다는 것은 결혼이나 배란의 은폐처럼 사람의 생활 방식에서 중요한 역할을 한다. 그 이유는 우리의 생활양식이 정보의 전승에 의존하기 때문이다.

언어가 발달하면서 그 이전과는 비교가 안 될 정도로 많은 정보를 얻을 수 있게 되었고, 얻은 정보를 다음 세대로 전할 수 있게 되었다. 문자가 발명되기 전에는 노인이 정보 전달과 경험의 보고 역할을 했다. 오늘날에도 부족 사회에서는 이러한 현상을 여전히 볼 수 있다. 수렵·채집 생활에서는 70세 이상의 노인이 단 한 명만 있어도, 그가 가지고 있는 지식으로 부족 전체를 기근에서 구할 수 있었다. 따라서 수명의 연장은 우리가 동물적 상태에서 인간으로 비약하는 데 상당히 중요한 역할을 했다. (191쪽)

 

당신이 사랑하는 사람의 얼굴은 1개월 전에 찍은 사진과 똑같겠지만 그 몸을 만들고 있는 분자는 1개월 전과 다른 것이다. 임금님의 말과 가신들도 험프티·덤프티를 원상 복귀시킬 수 없지만, 자연은 매일 우리의 몸을 파괴하고 다시 재생시키는 것이다. (195쪽)

 

나이를 먹는 것에 관한 놀랄 만한 사실 중 진화적 시점에서 비로소 이해할 수 있는 마지막 예는, 인간은 번식 연령이 지나도 산다는 것이다. 특히 여성은 폐경 후에도 계속 살아간다. 자신의 유전자를 다음 세대로 전하는 것이 진화의 원동력이기 때문에 번식 연령을 넘어서도 계속 살아가는 동물은 거의 없다. 번식 연령이 끝나면 자신의 몸을 복구해서 보전해둘 진화적 가치가 더 이상 없기 때문에 자연은 번식의 종료와 죽음이 동시에 일어나도록 프로그램을 만들어왔다. 여성이 폐경 후에도 몇 십 년이나 살고, 남성이 아이를 만드는 일에 거의 흥미를 잃은 후에도 계속 살아가는 것은 설명을 필요로 하는 예외이다.

그러나 잘 생각해보면 그 설명은 자명하다. 사람이 자식을 돌보는 기간은 상당이 길어서 거의 20년이나 계속된다. 성인으로 자란 자녀를 거느리고 있는 노인들도 그들의 자식뿐만 아니라 부족 전체의 생존에 있어서 상당히 중요하다. 문자가 발명되기 전 노인은 결정적으로 중요한 정보의 담당자 역할을 수행해왔다. 자연은 여성의 번식 기관이 망가진 후에도 신체를 사용할 수 있게 복구하도록 인간을 만들었다. ……

수렵·채집인의 어머니가 죽어 버리는 것은 어린아이에게 있어서 다른 어떤 영장류의 새끼보다도 치명적이다. 이미 몇 명의 아이가 있는 수렵·채집인 여성의 출산은 그 아이들의 생명을 위협하는 도박과도 같다. 이미 있는 아이들에 대한 그녀의 투자는 그들이 성장할수록 증가하고, 그녀가 출산으로 죽을 위험도 그녀가 나이가 들수록 증가하기 때문에 그 도박은 점점 위험해진다. 만약 아직 걸음마도 못하는 아이가 세 명 있다면 네 번째의 아이를 위해 그 세 명을 위험하게 할 필요가 있을까.

승률이 그처럼 점점 떨어지므로 아마도 자연선택에 따라 이미 낳은 자녀들을 보호하기 위해 폐경기라는 번식 능력의 종말을 선택하게 되었을 것이다. 그러나 부친에게는 출산의 위험이 없기 때문에 남성에게는 폐경이 진화하지 않았다. 노화와 마찬가지로 폐경 또한 진화적 시각을 가지고 비로소 인간의 라이프사이클이 이해된다는 점을 시사해주고 있다.

폐경은 크로마뇽인이나 다른 해부학적 현생 인류가 종종 60세 이상 살게 된 4만여 년 전부터 생겨났는지도 모른다. 네안데르탈인이나 그 이전 인류는 대개 40세 이전에 죽었기 때문에 여성의 폐경이 현재와 같은 시기에 일어났다면 아무 이익도 없었을 것이다. ……

노화의 징후는 어디서나 발견된다. 나는 이미 치아 기능이 약해졌고 근육이 점점 쇠약해지며 청력, 시력, 후각, 미각도 쇠퇴하는 것을 느낀다. 감각에 있어서 여성이 어느 연령 집단이든 같은 연령의 남성보다 훨씬 정확하다. 아마 이제부터 나는 심장이 약해지고 관절이 삐걱거리고 뼈가 약해지며, 신장의 투과 속도가 늦어지고, 면역력이 떨어지고, 기억력이 나빠지는 등의 상태에 직면하게 될 것이다. 그 목록은 무한히 길어질 것이다. 진화는 실로 만사를 인간의 모든 시스템이 나빠지도록 하고 그래서 인간의 값어치만큼 수리에 투자하도록 만들어놓은 것 같다.

이 결론은 낙심천만이다. 만약 단일의 노화 원인이 있다면 그것만 고쳐 불로의 생을 만끽할 수 있다. ……

아서 코난 도일은 <기어오르는 남자>에서 그 시도를 주제로 삼았다. ……

셜록 홈즈는 그러한 생의 묘약이 발견되었더라면 어떻게 될지 걱정했을 것이다. "그것이 가능하다면, 인류는 심각한 위험에 처할 거야. 생각해보게, 왓슨 군. 물욕에 집착한 무리, 관능에 집착한 무리, 세속적인 무리, 그런 놈들까지 모두 하찮은 인생을 연장하려고 할 게 아닌가? 그러면 쓰레기 같은 인간이 살아남아 이 세상은 악의 소굴이 될지도 몰라."

홈즈는 아마도 그의 걱정이 현실로 나타나지 않을 것 같다는 이야기를 듣고 안심할 것이다. (206~211쪽)

 

우리가 어떻게 독특한 인간이 되었는가를 이해하는 데 있어서 언어의 기원은 가장 중요한 열쇠이다. 인간은 언어로 다른 어떤 동물보다 정확하게 의사를 전달할 수 있다. 언어 덕택에 우리는 협동해서 계획을 세우고 서로 가르치며 과거에 경험한 것을 배울 수 있다. 또 마음 속을 정확하게 표현할 수 있으며 다른 어떤 동물보다 효과적으로 정보를 처리할 수 있다. 언어가 없었다면 샤르트르 대성당의 건축도, V2 로켓을 만드는 것도 생각할 수 없었을 것이다. 따라서 나는 대약진이 가능했던 것은 오늘날 우리가 가지고 있는 것과 같은 음성언어의 출현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인간의 언어와 동물의 음성 사이에는 다리를 놓을 수 없을 만큼 넓은 강이 흐른다. 다윈 시대에 이미 밝혀졌듯이 인간의 의사를 표현하는 언어의 기원과 관련된 수수께끼는 진화의 문제이다. 결코, 이어질 수 없을듯한 그 강에 도대체 어떻게 다리가 놓였을까?

우리가 인간의 음성언어와 같은 표현수단을 갖지 못한 동물로부터 진화했다는 것을 인정한다면, 언어도 골반이나 두개골, 도구, 예술과 함께 출현해서 시간과 더불어 진화하고 완성된 게 틀림없다. 셰익스피어의 소네트와 원숭이의 끙끙거리는 음성을 연결하는 언어의 중간 단계가 예전에 한 번쯤은 있었던 것이 틀림없다. 다윈은 자기 자녀들의 언어능력 발달을 부지런히 기록하면서 '원시적'인 사람들의 언어에 대해 심사숙고하며 이 진화적 수수께끼를 해명하려고 했다. (219~220쪽)

옛날에는 동물의 의사소통 체계와 인간의 언어 사이에는 메울 수 없는 큰 차이로 멀리 떨어져 있다고 생각되었다. 그러나 오늘날 인간은 그 양쪽의 절벽에서 만들어지기 시작한 다리의 일부를 발견했을 뿐만 아니라, 군데군데 흩어져 있어 그 단절을 이어주는 섬이나 다리의 부분들도 발견했다.

우리는 인간과 동물을 구분하는 가장 중요한 특징과 동물과 다름없는 원시 선조로부터 인간이 어떻게 생겨났는가, 의문에 대한 큰 윤곽을 이해하기 시작한 것이다. (256쪽)

 

예술은 사람만이 갖고 있는 가장 고귀한 특질이다. 언어와 마찬가지로 동물과 인간을 구별해주는 것으로, 적어도 어떤 동물이 하는 행위와 기본적으로는 다르다고 생각되고 있다. 뿐만 아니라 예술은 언어보다 훨씬 고귀하다고까지 생각한다.……

인간의 예술도 동물에서 그 싹을 찾을 수 있다는 것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가장 가까운 인간의 친척인 침팬지로부터 인간이 분리된 것이 고작 700만 년 전이었다는 것을 상기해야 한다.

인간의 입장에서 700만 년은 긴 시간처럼 보이지만, 복잡 다양한 지구 생명체의 역사 입장에서 보면 1퍼센트에 지나지 않은 시간이다.

인간은 아직까지 DNA의 98퍼센트를 침팬지와 공유하고 있다. 그러므로 예술이나 그 외의 것이 사람만이 지닌 독특한 성질이라고 볼 수 있는 것은 불과 2퍼센트도 안 되는 미세한 유전자의 조화 때문이다. 진화적인 시간에서 보면 그런 것들은 불과 몇 분 전에 일어난 것이다.

최근 동물 행동에 관한 연구가 진행되면서, 동물과 구별되는 인간만의 고유한 특성 리스트가 점점 줄어들고 있다. (259~260쪽)

 

바우어새와 비교하면 우리가 우수한 유전자를 지닌 배우자를 판정하는 노력은 실로 비참한 수준이라고 말하지 않을 수 없다. 우리는 얼굴 특징과 귓볼의 길이와 같은 쓸데없는 외모나, 성적 매력과 포르쉐 소유 여부 등 유전자의 우열과는 전혀 상관없는 것에 얽매이고 있다.

성적인 매력이 있는 미인이나 포르쉐를 모는 잘생긴 남자가 그 밖의 질적인 면에서는 열등한 유전자밖에 없는 경우가 많다는 슬픈 현실 때문에 얼마나 많은 사람이 괴로운 지경에 빠져 있는가를 생각해보라. (269쪽)

 

우리는 모든 점에서 중세 사람보다 나은 삶을 누리고 있고, 중세 사람은 빙하기의 혈거인보다, 혈거인은 유인원보다 나은 삶을 살았던 것이다. 그렇지 않다고 생각한다면 우리의 우수한 점을 열거해보기 바란다. 우리는 누구보다도 풍부하고 다양한 종류의 음식을 먹고 도구나 재료도 최고의 것을 사용하며 인류 역사 이래 가장 오래 살고 건강하다. (277쪽)

 

빙하기 말엽에 이 지역에 살고 있었던 수렵·채집인의 키는 남성이 평균 178센티미터, 여성이 168센티미터였다. 농업을 채택함에 따라 사람들의 키는 작아져 B.C. 4000년경에는 남성이 160센티미터, 여성이 155센티미터로 줄어든다. 고전기인 그리스·로마 시대에 들어 키는 다시 서서히 증가했지만, 현대의 그리스인과 터키인의 키는 아직 그들의 선조인 수렵·채집인에 이르지 못하고 있다. (285쪽)

 

농업이 시작되면서 계급 차별이 나타났을 뿐만 아니라 남녀의 불평등도 더욱 확대되었다. 농업이 출현하면서 여성은 노동의 노예가 되었고, 빈번한 임신으로 힘을 빼앗겨 건강 상태가 나빠졌다. (288쪽)

 

농업의 기원을 연구하는 고고학자는 우리에게 인간이 역사상 가장 중요한 결단을 내렸을 때의 상황을 재현해준 것이다. 인구 억제와 식량 증산의 갈림길에서 인간은 후자를 선택했고, 그리하여 기근과 전쟁과 독재의 길을 걷게 되었다. 오늘날 인류 역시 똑같은 갈림길에 놓여 있다. 다만 그때와 차이가 있다면 오늘날의 인류는 과거에서 교훈을 얻을 수 있다는 점이다.……

인간의 역사가 한밤중에 시작되었다고 가정하면, 우리는 지금 거의 하루의 끝을 향해 다가가고 있다. 오늘의 인류는 새벽부터 해질 무렵까지 하루 종일 수렵·채집인으로 살아왔다. 오후 11시 54분쯤 됐을 때 드디어 농업을 시작했다.

돌이켜보면 그 결단은 불가피한 것이고, 이제는 더 이상 처음으로 되돌아갈 수 없다. 그러나 두 번째 날의 밤이 가까워질 무렵, 아프리카 농민들의 곤경이 점점 확대되어 우리를 덮치게 될 것인가? 아니면 그 화려한 얼굴 뒤에 있을 매력적인 축복을 얻게 될 것인가? 이제까지는 그 축복에 엇갈리는 희비를 모두 경험했다. 그러나 지금부터는 다시 한 번 진지하게 생각해봐야 할 문제이다. (291~292쪽)

 

알코올을 섭취한 남자는 무력해지거나 체력이 약해지기도 하고 잘못된 판단을 하기도 하며, 간경화 등 심각한 병에 걸리기도 쉽다. 셰익스피어의 《맥베스》에는 이런 명언이 나온다.

"알코올은 욕망은 높이지만 실행력은 떨어뜨린다." (297쪽)

 

자하비의 이론은 사람이 약물에 중독되는 이유도 설명할 수 있다. 청소년기부터 어른이 되기 시작할 무렵에 우리는 자신의 지위를 주장하기 위해 많은 에너지를 사용하는데, 그때가 마약중독에 빠질 수도 있는 가장 위험한 시기이다. 위험한 과시 행동을 하는 새처럼 사람도 똑같은 본능을 가지고 있다.

1만 년 전에는 우리도 사자나 적대하는 부족에게 '과시 행동'으로 도전했을 것이다. 현대에는 그것이 난폭한 운전이나 위험한 약물을 복용하는 등 다른 방법으로 나타날 뿐이다.

과시 행동이 갖는 메시지는 옛날이나 지금이나 바뀌지 않았다. 그것은 "나는 강하고 우수하다"라는 것이다. ……

그러나 불행하게도 새라면 그러한 것에 넘어갈 테지만 인간은 어림없다. 인간에게 있는 많은 동물적인 본능과 마찬가지로, 그것도 현대사회에서는 비적응적인 것이 되었다. 위스키를 한 병 마신 후에도 걸을 수 있으면 간장에 알코올 탈수소 효소를 많이 가지고 있는 것이지만, 그 외에는 어떠한 우월성도 나타내지 않는다. (303~304쪽)

 

별과 별 사이의 통신이 가능한 문명의 수를 추정하기 위한 '그린뱅크' 공식 중에서 남은 미지의 변수는 하나뿐이다. 바로 문명의 수명이라는 변수이다.

무선송수신기를 만드는 데 필요한 지능과 기술은 무선송수신기보다 훨씬 오래된 인류 특유의 성질이었다. 그것은 대량 살생과 환경 파괴를 위한 도구를 만드는 목적으로도 유효하다. 우리는 이 모두에 매우 능숙하여 스스로 놓은 덫에 빠지게 되었다.……

지금까지의 지구 역사를 돌이켜보면 다른 행성에 무선송수신기가 존재할 희망은 별로 없어 보인다. 만약 그런 문명이 있다 해도 그 수명은 짧을 것 같다. 어딘가 다른 곳에서 발생한 지적인 문명은 우리가 지금하려는 것처럼 하룻밤 사이에 자기들이 이룩한 진보를 뒤집어엎었을 것이기 때문이다.……

만약 지구 밖에 생물이 있어서, 그들이 인간을 발견한다면 어떻게 될까? 천문학자들은 암묵적으로 인류와 외계인이 마주 앉아 즐거운 대화를 나눌 것이라고 가정한다.

이쯤에서 인류가 지구에서 겪은 경험을 나침반으로 쓸 수 있다. 우리는 지능이 매우 뛰어나지만 기술적으로 우리보다 뒤떨어진 생물을 두 종 발견했다. 침팬지와 보노보이다. 과연 인간은 그들과 마주 앉아 대화하려고 했던가? 물론 아니다. 그 대신 인간은 그들을 총으로 쏘아 죽이고, 해부하며 손을 잘라 장식품으로 만들었다. 우리 안에 가두어 구경거리로 만들었으며, 에이즈 바이러스를 주사해 의학 실험에 사용하고, 서식지를 파괴하거나 빼앗았다. 그것은 예측할 수 있는 일이었다. 기술적으로 뒤떨어진 다른 인간을 만난 탐험가들은 그들을 총으로 쏘아 죽였고, 자기들이 옮긴 새로운 질병으로 그들을 대량으로 죽게 했으며, 서식지를 파괴하거나 빼앗았다.

어떤 고도의 우주 생물이라도 인간을 발견하면 인간이 다른 동물을 다룬 것처럼 그렇게 다룰 것이다. 아래시보에서 전파를 보내 지구가 어디에 있고, 어떤 주인이 살고 있는가를 알려주는 천문학자들의 행동을 다시 한 번 생각해보자. 어리석은 그 자살적 행위는, 황금에 미친 스페인 사람들이 부를 좇아서 왔을 때, 자기들의 재산과 보물을 보여주고 길을 안내한 잉카 최후의 황제 아타우알파의 어리석은 행동과 다를 바 없다.……

인간에게 다행스러운 일은 우주에서 신호가 전혀 없다는 점이다. 그렇다. 우주에는 수십억 개의 은하와 몇 십억이라는 별이 있다. 그중에는 송신기 한둘쯤은 있을지도 모르지만, 그렇게 많지도 않을 뿐더러 오래가지도 못할 것이다. 어쩌면 우리 은하계 중 지구에서 수백 광년 떨어진 범위 안에는 확실히 존재하지 않은 것이다.

앞서 언급한 바와 같이 딱따구리와 비행접시의 연관 관계가 우리에게 깨우쳐주는 교훈은, 인간이 외부 생명을 발견하는 일은 당분간 없을 것이라는 점이다. 이론이야 어떻든 인간은 수많은 별이 있는 광활한 우주 속에서 고아다. 그 얼마나 다행한 일인가! (324~326쪽)

 

당연한 일이지만 최근의 핵무기나 중장거리 미사일 같은 대량 살상 무기 개발로 인간이 외지인을 기피하는 현상은 침팬지보다 더욱 위험 상태이다.

제인 구달은 한 침팬지 집단의 수컷들이 차례차례로 이웃 집단의 개체를 살해하고 세력권을 강탈하는 사실을 밝힌 바 있다. 그렇다고 해도 그런 침팬지가 멀리 떨어진 집단의 침팬지를 죽이거나 그들 자신을 포함한 모든 침팬지를 절멸시키는 수단은 갖고 있지 않다. 외지인 기피로 인해 일어나는 살육은 동물계에도 많은 선례가 있으나, 유일하게 인간만이 종으로서 몰락을 초래할 수 있을 정도의 대량 살상 수단을 발전시켜 왔다. 인간 자신의 존재에 대한 위협은 이제는 예술과 언어와 더불어 인간의 중대한 특질이 되어버렸다. (333쪽)

 

인간은 여행을 좋아한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는데, 인류의 진화 과정을 들여다보면 그 반대였다. 인간 집단은 자신이 살고 있는 땅을 넘어선 세계와 인접한 땅 그리고 보다 먼 세계에 대해 전혀 알지 못했다.

수천 년이라는 짧은 기간 동안 일어난 정치 조직과 기술의 변화 덕분에 사람들은 비로소 먼 곳까지 여행을 나가 다른 사람들을 만나고 낯선 문화에 대해 배우게 되었다. 이 과정은 1492년 콜럼버스가 아메리카 대륙에 발을 디디면서 한층 빨라졌다. 오늘날 멀리 떨어진 외부인과 한 번도 마주치지 않은 부족은 뉴기니와 남아메리카에 극소수가 남아 있을 뿐이다.……

뉴기니에 가본 적이 없는 사람은 5만 명이나 되는 인간이 오랜 기간 동안 외부 세계에 알려지지 않은 채 살고 있었다는 것을 이해할 수 없을 것이다.

대협곡은 뉴기니 북쪽 해안이나 남쪽 해안에서 불과 185킬로미터밖에 떨어지지 않은 곳에 있다.

유럽인이 뉴기니를 발견한 것은 1526년, 네덜란드인 선교사가 살기 시작한 것이 1852년, 그리고 유럽 식민지 정부가 설립된 것이 1884년이다. 그런데 대협곡을 발견하기까지 왜 54년이나 걸렸을까? (336~337쪽)

 

1492년 유라시아 대륙의 인류 집단 대부분이 철기를 사용했고, 문화와 농경 기술을 가지고 있었다. 또 선박을 소유한 대규모의 중앙집권 국가였고 산업화를 목전에 두고 있었다.

반면 아메리카 대륙의 나라들은 농사를 지었으나 중앙집권 국가는 극소수에 불과했고, 대양을 항해하는 선박도 없어 기술적·정치적으로 유라시에 비해 2,000~3,000년이나 뒤져 있었다. 오스트레일리아 사람들은 유라시아에서 1만 년 전에 쓰던 석기를 사용하고 있었다.

유럽인이 다른 대륙으로 영토를 확장할 수 있었던 것은 이처럼 기술적·정치적인 차이가 있었기 때문이지, 동물 집단처럼 경쟁의 승패를 결정하는 생물학적 차이가 있었기 때문이 아니다.

19세기의 유럽인은 앞의 질문에 대해서 인종차별적인 대답을 했다. 그들이 문화적으로 앞섰던 것은 유전적으로 지능이 더 높았기 때문이고, '열등한' 민족을 정복하고 몰아내고 살해하는 것은 유럽인의 명백한 운명이라고 결론지었던 것이다. 이 대답은 아주 불쾌하고 오만할 뿐만 아니라 틀렸다.…

과거 500년 동안 기술력의 차이로 인한 몇 건의 큰 비극이 발생했고, 그 차이에서 비롯된 식민주의와 정복의 유산은 여전히 현대사회의 구성에 커다란 영향을 미치고 있다. 별다른 정확한 설명이 없다면, 인종차별적인 유전 이론이 진실일지도 모른다는 의문이 미래에도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높은 인구밀도는 중앙집권 국가의 전제 조건이다. 높은 인구밀도는 전염병의 발병도 촉진시켰는데, 전염병에 직면한 집단은 다른 집단에게는 없는 다양한 저항력을 갖게 되었다.

이런 여러 가지 요인이 맞물려 누가 누구를 식민지로 삼고 정복하는가를 결정했다. 유럽인이 아메리카 대륙과 오스트레일리아를 정복할 수 있었던 것은 그들이 가진 양질의 유전자 때문이 아니라, 그들의 세균(특히 천연두)과 발달된 기술(병기와 선박 포함), 문자에 의한 정보 축적과 정치 체제 때문이다. 그런 것들은 모두 대륙 간의 지리적 조건의 차이에서 파생된 것이다. (352~354쪽)

 

어떤 나라든 건국기념일은 국민들에게 축하할 만한 날로 여겨진다. 그러나 1988년 건국 200주년 기념행사가 열린 오스트레일리아에서는 항의 시위가 열렸다. ……

최초의 이주자는 백인이 아니었다. 5만 년 전에 오스트레일리아에 이주한 사람은 '오스트레일리아 원주민'으로, 오스트레일리아인 사이에서는 '흑인'으로 알려진 사람들의 조상이었다. 영국인의 이주 과정에서 원주민의 대부분은 이주자에 의해 살해되거나 다른 이유로 죽어갔다.

200주년을 축하하지 않고 항의 시위를 벌인 것은 그때 살아남은 생존자들의 후예였다. 이것을 계기로 '오스트레일리아가 어떻게 백인 국가가 되었는가' 하는 문제가 은연중에 세인의 관심거리로 떠올랐다.……

제노사이드는 워낙 끔찍한 사건이어서 우리는 제노사이드에 대한 생각을 꺼려하거나 그 같은 범죄는 나치나 저지르지 선량한 사람들과는 상관없다고 믿고 싶어 한다.

제노사이드에 대하여 생각하기를 거부해온 탓에, 우리는 제2차세계대전 이후에 자행된 다양한 형태의 집단 학살을 제지하지 못했다. 따라서 다음에는 어디에서 그런 일이 일어날지에 대해서도 전혀 무방비한 상태이다.……

태즈메이니아는 오스트레일리아 남해안에서 240킬로미터 떨어져 있다. 면적은 아일랜드 크기에 산으로 이루어진 섬이다. 1642년 유럽 사람들이 태즈메이니아를 발견했을 때 섬에는 오스트레일리아 본토의 원주민과 가까운 수렵·채집인이 약 5,000명 살고 있었다. 그들은 가장 단순한 수준의 기술만을 갖췄었다. 오스트레일리아 원주민과 달리 그들은 부메랑, 개, 그물, 재봉 지식이 없었고 불을 피우는 방법도 몰랐다. 태즈메이니아인이 제작했던 것은 종류도 적고 모양도 단순한 석기와 나무로 만든 도구뿐이었다.

운반 수단이라고는 아주 짧은 거리만 항해할 수 있는 뗏목이 전부였으므로, 1만 년 전에 해수면이 상승하면서 태즈메이니아와 오스트레일리아가 분리된 뒤로는 외부인과 접촉하지 못하고 살아왔다.…… 오스트레일리아 백인이 이주하면서 마침내 태즈메이니아인들이 고립 상태에서 벗어났지만, 두 민족은 서로를 이해할 준비가 전혀 되어 있지 않았다.

영국인 물범 사냥꾼과 이주자들이 1800년경 이 섬에 도착하자마자 두 민족은 곧 전쟁으로 치달았다.……

태즈메이니아인은 소수였으나 그들이 오스트레일리아 역사에 미친 영향은 매우 컸다. 태즈메이니아는 원주민 문제를 해결해야 했던 오스트레일리아 최초의 식민지로서, 거의 완벽하게 해결되었기 때문이다. 원주민을 모두 제거하는 데 확실하게 성공함으로써 가능했던 일이다.……

영국인 작가 앤서니 트롤럽의 표현은 19세기에 대다수의 영국인이 품고 있던 오스트레일리아 원주민에 대한 태도를 잘 나타냈다. "오스트레일리아 흑인은 사라져야 한다. 불필요한 손해를 보지 않고 원주민의 씨를 말리는 것, 그것이 이 문제에 관심이 있는 모든 사람의 목표다."

20세기에 들어선 뒤에도 오스트레일리아에서는 그러한 책략이 한동안 계속됐다. ……

집단살해의 역사에 대하여 오늘날 백인 오스트레일리아인의 태도는 실로 다양하다. 백인 정부와 국민 대부분의 견해는 오스트레일리아 원주민에 대해 점점 동정적인 방향으로 기울어졌으나 일부는 제노사이드의 책임을 부정하는 사람도 있다. 오스트레일리아의 주요 시사 해설지 《더 블러틴》은 1982년, 백인 주민이 태즈메이니아인을 절멸시켰다는 것을 강력하게 부인하는 패트리샤 코번이라는 여성의 투서를 게재했다. 이 글에 코번 부인은 다음과 같이 적고 있다. "이주자들은 평화 애호가요, 매우 도덕적인 사람들이었다. 그러나 태즈메이니아인은 쉽게 배반하고, 살인을 즐기며, 싸움을 좋아하고, 불결했을 뿐만 아니라…… 학살은 오히려 태즈메이니아인이 이주자에게 자행한 것이지 그 반대의 경우는 없었다. 이주자들은 자기방어를 위해 무장했을 뿐이며, 총포 사용법에도 익숙하지 않았다. 따라서 한 번에 41명 이상의 태즈메이니아인을 살해한 일 따위는 결코 없었다."……

제노사이드의 어원은, 인종을 뜻하는 그리스어인 'genos'와 살인을 뜻하는 라틴어 'cide'가 합쳐져 '집단 학살'이라는 의미를 갖는다. (409~419쪽)

 

그러나 집단 살육을 저지르는 침팬지는 의도적이고 세련되지는 않지만 계획적인 행동을 보인다. 카하마 집단을 살육할 때 카사켈라 집단은 의도적으로 재빠르고 은밀하게 그리고 조심스럽게 전진해서 카하마의 세력에 침입한 뒤, 한 시간 가까이 나무 위에 앉아 귀를 기울인 끝에 카하마 침팬지를 발견하면 마침내 공격을 감행했던 것이다. 외부 세력을 확실히 구별하고 싫어한다는 점에서도 침팬지는 인간과 비슷하다.

단적으로 말하면 예술, 언어, 마약 등 인간의 모든 본성 중에서도 동물의 조상에게서 가장 직접적으로 물려받은 것이 제노사이드의 본성이다. ……

침팬지의 행동은 인간의 생존 방식이기도 한 집단생활이 왜 생겨났는가를 말해주는 주된 이유를 암시한다. 그것은 바로 다른 인간 집단의 공격으로부터 자체 집단을 방어하기 위한 조치라고 보아야 할 것이다. 특히 인간은 무기를 갖고 매복을 계획할 수 있을 만큼 뇌가 커졌기 때문에 집단 방어가 가능했을 것이다. 이 설명이 옳다면 인류학자가 전통적으로 강조한 인류 진화의 원동력으로 '인간=사냥꾼' 가설이 타당할지도 모른다. 다만 내 생각이 종래의 설과 다른 점은, 인간 자체가 포식자인 동시에 사냥의 대상이므로 할 수 없이 집단생활을 하게 됐다는 것이다. ……

 

초기 문자 문명을 살펴보면 제노사이드가 빈번했다는 증거가 여러 문서의 기록에서 증명되고 있다. 그리스와 트로이, 로마와 카르타고, 아시리아와 바빌로니아는 모두 전쟁이 끝나면 남녀를 불문하고 패자를 학살했으며, 남자는 죽이고 여자는 노예화하든가 둘 중 하나를 선택했다. 여호수아의 나팔 소리와 함께 여리고 성벽이 어떻게 무너졌는지 우리는 성경을 통해 잘 알고 있다. 다음 기록은 그 뒤에 어떤 일이 일어났는지를 말해준다.

여호수아는 여리고에서처럼 아이, 막케다, 리브나, 헤브론, 드빌 등 다른 많은 도시에서도 주민을 대학살하라는 여호와의 명령에 따랐다. 그것은 너무나 일상적인 일이라 여호수아서에는 그 내용이 일일이 기록되어 있지도 않다. 마치 "물론 그는 모든 주민을 죽였다. 그밖에 무엇을 기대하는가?"라는 뜻 같다. 여리고 성에서의 살육 양상이 자세히 묘사된 것은 오로지 여호수아가 그곳에서 비범한 일을 했기 때문이다. 그곳에서 그는 전령을 도와주었다는 이유로 어떤 일가족의 목숨을 구했던 것이다.

십자군, 태평양의 여러 섬 주민,기타 민족 집단의 전쟁 기록에도 비슷한 에피소드가 있다. 물론 전쟁에서 패배하면 남녀를 불문하고 무조건 학살당했다고 단언하는것은 아니다. 그러나 남녀를 모두 죽이든, 남자만 죽이고 여자는 노예로 삼든, 대규모 살육은 자주 발생했다.……

제노사이드가 수백만 년에 걸친 인류 유산의 일부였다는 사실은 분명하다. ……

더욱 중대한 논의의 초점은 콘라트 로렌츠가 지적한 것처럼, 오늘날 과학기술이 발전하면서 제노사이드의 심리적 부담이 줄었는가는 더 까다로운 문제다.

인간은 유인원 단계부터 진화하면서 먹을 것을 얻기 위해 점점 많은 동물을 죽이게 되었다. 반면 사람의 수가 점점 증가하면서 위는 서로간의 협력에 대한 의존도가 커졌다. 이런 사회에서는 같은 무리에 속한 인간을 죽이지 못하도록 강력히 제어하지 않으면 사회 그 자체가 유지될 수 없었다.

인간의 진화 역사를 볼 때, 무기는 대체로 가까운 거리에서만 쓰였기 때문에 상대를 잘 보고 주의하면 충분히 적을 죽일 수가 있었다. 그러나 단추만 누르면 되는 근대 병기는 사람을 가려서 살상하는 억제력은 커녕 얼굴을 보지 않고도 상대를 죽일 수 있게 되었다.

이러한 과학기술은 아우슈비츠, 트레블링카, 히로시마, 드레스덴에서 살펴볼 수 있듯이 제노사이드를 행해도 심리적으로 감당하기가 훨씬 수월해졌다는 것이다.

이런 심리적 이유가 오늘날 제노사이드가 쉽게 발생하는 데 크게 영향을 끼치고 있는가에 대해서는 확신할 수가 없다. 희생자 수는 비교도 안 되지만 적어도 과거 제노사이드 발생 빈도는 오늘날과 비슷할 정도로 빈번했던 것으로 보인다. 제노사이드를 더 깊이 이해하기 위해선 우선 살인의 윤리를 살펴보기로 하자.

살인 충동이 윤리적 규범에 의해 그동안 억압된 것은 자명한 사실이다. 그것을 해방시킨 것은 무엇일까?

오늘날 사람들을 '우리'와 '그들' 두 카테고리로 분류한다. '그들'의 언어, 외모, 습관만 해도 수천 가지의 유형이 있다. 우리는 책과 텔레비젼 그리고 여행을 통해서 그 사실을 알고 있다.

13장에서 이미 밝힌 바와 같이 기나긴 인류 역사 속에서 어느 한때를 지배했던 정신적 틀로 되돌아가는 것은 불가능하다. 침팬지, 고릴라, 사자와 늑대 같은 사회적 육식동물이나 초기 인류는 집단 세력의 범위 내에서 살아왔다. 오랜 옛날 인류가 알고 있는 세계는 오늘날보다 훨씬 작고 단순했으며 알고 있는 '그들'의 종류도 극소수에 불과했다.……

고대 그리스에서도 부족 간의 텃세가 만연했다. 그들이 알고 있는 세계는 이전보다 훨씬 더 넓고 다양했으나 '우리' 그리스인은 '그들' 야만족과는 여전히 구별되어 있었다.

'야만족barbarian'이라는 말은 단순히 비(非)그리스인, 외국인을 의미하는 그리스어 '바르바로이barbarioi'에서 유래되었다.

이집트인과 페르시아인은 그리스와 비슷한 문명 수준을 가지고 있었지만, 그리스인의 눈에는 '바르바로이'일 뿐이었다. 모든 인간을 동등하게 다루지 않고, 친구에게는 보답하고 적은 혼내주는 것이 그들이 생각하는 이상적인 행동이었다.……

세월이 지나면서 옛날 그대로의 이분법을 윤리 규범으로 받아들이기가 점점 어려워졌다. 대신 세계 공통의 규범을 만들려는 경향이 생겨서 어떤 사람을 대하든 비슷한 규칙을 적용하는 쪽으로 바뀌었다. 제노사이드는 세계 공통의 규범과 정면으로 충돌한다. 이러한 윤리적인 모순에도 수치심을 못 느끼는 근대 '집단 살인마'들은 자신들의 행동을 자랑스럽게 여겨왔다.……

현대의 집단 살인마들은 그들의 행위와 공통 윤리 규범과의 모순을 어떻게 극복할까? 그들은 세 가지 형태의 합리화 중 하나에 호소할 것인데, 어느 것이든 '그렇게 죽음을 당한 건 놈들의 자업자득일 뿐이야'라는 단순한 심리적 주제의 변형에 불과하다. (433~441쪽)

 

그것은 나치의 유대인 학살과 그보다는 약하지만 터키의 아르메니아인 학살이다. 이 두 가지 예는 다른 제노사이드와 세 가지 면에서 다르다. 희생자가 다른 백인이 인정하는 백인이라는 점, 가해자(특히 나치)가 증오의 대상으로 죄악시되어온 전쟁 적국이라는 점, 그때의 생존자들이 우리에게 그것을 기억시키려고 무던히도 노력하고 있다는 점 등에서 차이가 있다. 이처럼 제3자가 제노사이드에 주목하기 위해서는 여러 조건이 집약되어야 한다.……

제3자의 무반응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희생자로서 살아남은 사람들의 반응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아우슈비츠 생존자와 같은 제노사이드 목격자들을 연구해온 정신분석가는 그들에게는 '심리적 마비'현상이 나타난다고 밝혔다.

대부분의 사람에게 있어 사랑하는 친구나 가족의 자연사나 행방불명은 충격이고, 쉽게 잊히지 않는 고통스러운 경험이다. 그러나 자신의 눈앞에서 사랑하는 많은 친구와 가족이 잔혹한 방법으로 죽임을 당하는 모습을 보아야 했을 때 엄습하는 고통은 상상을 넘어서는 것이다.

생존자들에게선 그러한 잔학 행위는 금지된 것이라는 암묵적인 신념 체계가 무너져버린 지 오래다. 그러한 잔인한 기억을 갖도록 선택될 만큼 무가치한 인간이라는 오욕의 감정과 동료는 죽었는데 자신은 살아 있다는 죄책감이 주는 고통은 이루 말할 수 없다.……

살인자의 반응은 어떤가. '우리'와 '그들'을 차별하는 윤리 규범을 갖고 있는 살인자라면 자긍심을 느낄 수도 있겠지만, 세계 공통의 윤리 규범에 따르며 자란 사람이라면 범행에 대한 죄책감이 쌓여 결국은 희생자나 다름없는 마비가 올 것이다.……

그들의 죄의식과 희생자들 전체에 찍은 낙인은 제노사이드라는 한 사건이 빚어낸 정반대의 결과인 것이다. 그러한 죄의식을 덜기 위해 자손들은 역사를 자주 고친다. 오늘날 미국인이나 코번 여사를 비롯한 현대 오스트레일리아인의 반응이 그 예이다. ……

그날 밤 이후 그 일을 생각할 때마다 나는 전율을 느끼곤 한다. 새벽의 학살을 이야기할 때의 카리니가의 눈빛, 부족의 적들에게 창을 쏘았을 때의 강렬한 만족감, 부친의 적을 놓친 분노와 좌절의 눈물, 그날 밤 적어도 나는 한 선한 사람이 어떻게 하면 살인을 저지르는가를 깨달았다.

카리니가로 하여금 치닫게 한 제노사이드의 환경은 잠재적으로 우리 모두의 내부에 존재하고 있다. 인구 증가와 함께 다른 사회끼리, 또는 사회 내부의 대립이 첨예화되면서 인간은 점점 살육의 충동이 강해졌다. 그리고 살육 충동을 실행에 옮기기 위해 더욱더 효과적인 무기를 소유하려 할 것이다. 제노사이드에 대해 직접 겪은 경험자의 말에 귀를 기울이는 것은 견디기 어려울 만큼 고통스러운 일이다. 그러나 계속 회피하고 이해하려고 노력하지 않는다면, 우리 자신이 살인자나 희생자가 될 날이 언제 올지 모를 일이다. (450~457쪽)

 

모든 사람이 자원의 고갈을 인식할 무렵이면, 그 종과 서식지를 구제하기에는 이미 늦은 때이다. 따라서 자신들의 자원을 유지해갈 수 없었던 산업화 이전의 사회는, 윤리적인 죄를 범한 것이 아니라 무지의 탓으로 매우 어려운 생태학적 문제를 해결하는 일에 실패했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이 같은 실패는 생활양식 전체를 붕괴시켜 버리기 때문에, 만약 처음부터 그 결과를 알고 있었다면 윤리적으로 죄가 될 것이다.

바로 이 점에서 우리와 11세기의 아나사지 원주민 사이에 두 가지 큰 차이점이 있다. 그것은 과학 지식과 문자의 유무이다. 우리는 유지 가능한 자원 개체군의 규모와 자원을 이용하는 속도를 함수 그래프로 표시할 수 있지만, 과거의 그들은 그럴 만한 능력이 없었다. 또 우리는 과거에 어떤 생태학적 파국이 있었는지를 읽을 수 있지만 그들은 읽을 수 없었다.

그런데도 우리 세대는 마치 모아새를 잡거나 소나무와 향나무 숲을 베어버린 적이 전혀 없었던 것처럼, 고래를 잡고 열대우림을 베어 쓰러 뜨리고 있다. 옛날은 '무지한 황금시대'였지만, 현대는 알면서도 모르는 척 시치미를 떼는 '철의 시대'인 것이다.

이런 관점에서 현대사회에서 더 많은 사람이 더욱 파괴적인 도구로 과거의 생태학적 자살 행위를 되풀이하는 것은 매우 이해하기 어렵다. 마치 지금까지 인류 역사 속에서 특별한 일을 한 번도 겪은 적이 없어서 그 필연적인 귀결을 전혀 모르는 사람들 같다. (497~498쪽)

 

유럽인이 신세계를 '발견'한 극적인 사건을 기념하기 위해 미국은 콜럼버스의 날과 추수감사절을 국경일로 정해 놓았다. 그러나 그것보다 아득한 옛날에 원주민이 대륙을 발견한 것을 기념하는 경축일은 없다.

고고학 발굴에 따르면 원주민이 대륙을 발견한 과정은, 크리스토퍼 콜럼버스나 에이플라워호를 탄 청교도들의 모험을 하찮게 만들 만큼 극적이었다. 북극의 빙상을 통과해서 현재의 캐나다와 미국의 국경을 넘는 통로를 발견한 지 불과 1,000년도 안돼서 원주민은 파타고니아(남아메리카)의 최남단까지 이르렀고, 생산성이 풍부한 미개척지인 두 대륙에 살기 시작했다. 원주민의 남쪽으로의 전진은 호모사피엔스 역사상 최대의 영토 확대였다. 이 정도의 사건은 지구에서 전무후무한 일이었다.

남쪽으로 확산하는 과정에는 극적인 사건이 한 가지 더 있었다. 원주민 사냥꾼이 도착한 아메리카는 대형 포유류로 득실거리는 땅이었다. 이미 멸종된 이들 포유류로는 코끼리와 비슷한 메어드와 마스토돈, 무게가 3톤이나 되는 땅늘보, 아르마딜로와 비슷한 1톤 무게의 글립토돈트, 곰만큼 큰 비버, 아메리카사자, 치타, 낙타, 말 등이 있었다.

만약 지금도 이 짐승들이 살아 있었더라면, 옐로스톤 국립공원을 방문하는 관광객들은 곰과 들소뿐만 아니라 메머드나 사자도 볼 수 있었을 것이다. 수렵민과 야생동물이 만났을 때 무슨 일이 일어났었는지에 대해서는 고고학자나 고생물학자들 사이에서 격렬한 논쟁이 끊이지 않고 있다. 가장 설득력 있는 설명에 따르면, 그 결말은 순식간에ㅡ어떤 지역에서도 10년을 넘기지는 않았을 것이다ㅡ야생동물을 멸종시켜버린 '전격전'이었다는 것이다.

만약 이 견해가 옳다면 6,500만 년 전 소행성의 충돌로 공룡이 멸종한 이래 대규모의 대형 동물들이 집중적으로 절멸한 사건이다. 또 그것은 '평화로웠던 지구의 황금시대'라는 가설을 무색케 하는 일련의 전격전 중 최초였을 것이다.

원주민 사냥꾼과 대형 포유류의 극적인 대면은 모든 대륙을 점령한 인류의 장편 서사시의 대단원을 장식하는 것이었다. 인류의 아프리카 조상은 약 100만 년 전에 아시아와 유럽으로 진출했고, 5만 년 전에는 아시아에서 오스트레일리아로 영토를 확장하였다. (500~501쪽)

 

우리는 근대의 유럽인 사냥꾼들이 들소, 고래, 물범 등 대부분의 대형 동물을 멸종시킨 전격전에 대해서는 잘 알고 있다. 최근 수많은 대양의 섬에서 이루어진 고고학적 발견으로, 순진한 동물이 사는 땅에 최초의 사냥꾼이 도착했을 때는 언제나 전격전이 일어났었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그들의 앞에는 대평원이 지평선까지 펼쳐져 있었다. 탐색을 시작하자마자 그들은 크리스토퍼 콜럼버스나 플리머스의 순례자와는 달리 자신들이 비옥한 토지에 찾아온 최초의 인간이라는 것을 금방 깨달았을 것이다. 에드먼턴의 순례자들 역시 추수감사절을 경축해야 할 충분한 이유가 있었던 것이다.

우리 세대 전까지는 다음 세대의 인간들이 살아남을 수 있을지, 과연 이 행성 위에서 가치 있는 생활을 즐길 수 있을지 고민할 이유가 없었다.

이런 의문에 직면한 것은 우리 세대가 처음이다. 우리는 아이들에게 자기 자신을 돌보고 다른 사람과 어울려 살아가는 방법을 가르치는 데 많은 시간을 들였다. 그러나 날이 갈수록 우리는 이런 노력이 완전히 쓸데없는 것은 아닌지 자문하게 되었다. (512~513쪽)

 

지금까지 추정한 것은 종의 과학적 분류가 시작된 1600년 이후의 멸종에 대한 것이었다. 이런 멸종은 인구가 증가하면서 과거에는 살지 않았던 지역에 인간들이 진출하고 무서운 기세로 파괴적인 기술을 발명해왔기 때문에 일어났다. 이런 요인은 수백만 년이라는 인류사를 흘려보내고 1600년에 갑자기 튀어나온 것일까? 1600년 전에는 멸종이란 게 전혀 없었을까?

물론 아니다. 5만 년 전까지 인류는 아프리카와 유럽, 아시아의 온난화 지역에서만 살고 있었다. 그때부터 1600년 사이에 인간은 대대적으로 영토를 확대했다. 그리하여 5만 년 전쯤에는 오스트레일리아 대륙과 뉴기니, 뒤이어 시베리아와 남북아메리카의 거의 모든 지역으로 퍼져나가 기원전 2000년경에 이미 대양의 동떨어진 섬까지 확산되었다.……

고생물학자들이 연구했던 세계 모든 지역과 과거 5만 년 동안 인간이 도착한 모든 곳에서 인간의 도래와 때를 같이하여 대형 동물의 멸종이 일어났다. 마다가스카르, 뉴질랜드, 폴리네시아, 오스트레일리아, 서인도제도, 남북아메리카, 지중해의 섬들에 대해서는 17장, 18장에서 서술했다.

이 사실을 알게 된 과학자들 사이에서는 멸종의 원인이 인간인지, 아니면 기후변화로 종들이 이미 멸종하고 있었는데 우연히 시기가 일치한 것인지를 놓고 논쟁을 벌였다.……

앞 장에서 설명한 아메리카 대륙에서의 멸종은 폴리네시아나 마다가스카르 이외의 땅에서도 인간이 종의 멸종에 한몫을 했다는 증거이다. 세계 어디에서나 인간이 이주한 곳은 멸종으로 이어지곤 했기 때문이다. 인간이 이주하기 전에 기후변화가 일어났어도 동물들은 멸종되지 않았다. 따라서 기후변화가 멸종의 원인은 아니다. (522~523쪽)

 

인구가 늘면 네 가지 방식으로 종이 멸종에 내몰린다. 그것은 남획, 도입종, 서식지 파괴, 파급 효과이다. ……

서식지 파괴에 대한 최악의 사태는 지금부터 일어날 것이다. 인간이 세계에서 서식하는 종이 가장 많은 열대우림을 파괴하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열대우림은 생물학적으로 너무나 풍요로운 곳이다. 파나마의 열대우림에서 자라는 어떤 종의 나무에는 1,500종이나 되는 갑충류가 살고 있다.

열대우림은 지구 표면의 단 6퍼센트만을 덮고 있지만 지구상에 존재하는 종의 반쯤이 그곳에 살고 있다. 각각의 열대우림 지역에는 그 지역에만 사는 고유한 종이 수없이 많다. ……

모든 종의 식량이나 서식지는 다른 종과 겹치게 마련이다. 즉 모든 종은 제비뽑기나 도미노처럼 연결되어 있다. 하나의 도미노를 쓰러뜨리면 다른 도미노들이 연속적으로 쓰러지듯이, 어떤 한 종의 멸종이 다른 종에게 손실을 가져오면 그 종마저 위기에 처할 수 있다. 그것을 파급 효과라고 하는데, 멸종의 네 번째 원인이다.……

남획, 도입종, 서식지 파괴, 파급 효과라는 네 가지 구조는 현존하는 종의 거의 반을 멸종시키든지 멸종 위기에 처하게 만들 것이다. 나도 다른 아버지들처럼 내 쌍둥이 아들 형제에게 내가 태어나고 자란 세계를 보여주고 싶다. 그러나 아이들은 내가 본 세상을 못 볼 수도 있다. ……

소행성의 충돌에서도 포유류나 식물, 그 밖의 많은 종이 대부분 상처 없이 계속 살아남았다. 하지만 이제부터 일어날 멸종은 거머리도 백합도 사자도 모두 똑같이 공격할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멸종의 위기는 과장된 악몽도, 먼 훗날에 일어날 일도 아니다. 그것은 5만 년 동안 가속되어 왔다.……

인간 역시 다른 종과 마찬가지로 존재하기 위해 여러 측면에서 많은 종에 의지하며 살아간다. 우리가 호흡하는 산소의 생산, 내뿜는 이산화탄소의 흡수, 배출하는 쓰레기의 분해, 식량, 토양의 생산성 유지, 수목이나 종이의 생산은 다른 종으로부터 얻는 혜택이다.

그렇다면 인간에게 필요한 종만을 보호하고 다른 종은 멸종시켜도 상관없지 않을까? 물론 그것은 잘못된 생각이다. 인간에게 필요한 종 역시 다른 종에게 의존해서 살고 있기 때문이다. …… 그처럼 생태학적 연쇄관계는 매우 복잡하여 필요 없는 도미노가 어떤 것인지 우리로서는 알 수 없다.……

누군가가 당신에게 100만 달러를 주고 당신 신체의 중요한 살 50그램을 고통 없이 잘라가겠다는 제안을 했다고 가정하자. 당신은 어쩌면 50그램의 살은 체중의 1,000분의 1밖에 안되며, 아직 1,000분의 999나 되는 살이 남아 있기 때문에 괜찮다고 생각할지 모른다. 그 50그램이 당신 몸에 불필요한 피하지방이고 유능한 외과의사가 자르는 것이라면 문제는 없다.

그러나 그 외과의사가 어디든 적당한 부위에서 50그램을 마구 잘라낸다면, 또는 그가 본질적으로 어디가 중요한 곳인지조차 모르는 외과의사라면 어떻게 될까? (526~532쪽)

 

에필로그 :

10만 년 전이 되자 적어도 유럽과 서아시아의 네안데르탈인은 일상적으로 불을 사용하기 시작했지만, 불의 사용만 제외하면 인간은 대형 표유류의 한 종에 지나지 않았다.……

행동상의 대약진은 약 6만 년 전에 갑자기 유럽에 나타났는데, 이것은 해부학적 현생 인류인 호모사피엔스가 아프리카에서 유럽으로 발을 디딘 시기와 일치한다.

그 시점에서 예술이 등장했고 다양한 쓰임새에 알맞은 도구를 만드는 기술이 발전했으며, 사는 장소와 시간에 따라 문화적 차이가 나타나기 시작했다.

이러한 행동의 약진은 의심할 여지없이 유럽 이외의 땅에서 발전했지만, 막상 발전이라고 할 만한 것은 아주 급격히 일어났음에 틀림없다. 그 까닭은 10만 년 전에 남아프리카에 살았던 해부학적인 의미에서의 현대인이 동굴에 남긴 유류품을 보면 그들은 그때까지도 훌륭한 침팬지에 지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대약진을 일으킨 요인은 인간이 가진 유전자 중 아주 일부 때문이었을 것이다. 인간과 침팬지의 유전자는 오늘날까지도 1.6퍼센트밖에 차이가 나지 않는다. 대약진은 인간의 언어 능력이 완성됨으로써 가능했다고 생각된다.……

만약 고도 문명의 발생이 늘 자멸의 씨앗과 함께 자란다는 것이 다른 태양계에서도 적용된다면, 외계에서 비행접시가 왜 지구를 찾아오지 않는지 쉽게 이해할 수 있다.……

환경 파괴는 점점 많은 사회의 기반을 무너뜨렸다. 폴리네시아와 마다가스카르에 최초로 정착한 사람들은 대량으로 생물을 멸종시킨 장본인이었다. 읽고 쓸 줄 아는 유럽인이 1492년부터 전 세계에 확산되면서 인류의 흥망성쇠가 속속들이 기록되어 있다.……

역사의 종말이 찾아올 것 같은 징조는 없다고 반론하는 사람이 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잘 생각해보면 세계의 종말이 다가오고 있음을 나타내는 조짐이 분명히 있다. 기아, 오염, 파괴적인 기술은 날로 증가하고 있다. 이용 가능한 농지, 바다의 식량 자원 그리고 폐기물을 흡수하는 자연의 능력은 점점 감소하고 있다. 인구수는 증가하는데 자원은 더욱 부족해져, 자원을 놓고 정력적으로 싸우면 큰 희생을 감수해야 한다는 건 자명한 이치다.

그러면 도대체 어떤 일이 일어날까?

비관적일 수밖에 없는 이유는 얼마든지 있다. 오늘 살아있는 사람이 내일 모두 죽는다 해도, 인간이 지금까지 저질러온 환경 파괴의 영향은 앞으로 몇 십 년 동안 계속될 것이다. 수많은 종이 아직 멸종하지 않았지만 종의 유지 가능성을 상실할 정도로 개체 수가 줄어들어 이미 '살아있는 시체'나 다름없다.

인간은 자신이 저지른 자기 파괴적인 행동을 보고 충분히 교훈을 얻었을 법도 하건만, 아직도 인구를 억제하거나 환경 착취를 중단할 이유가 없다고 주장하는 사람이 많다.

그런가 하면 자기의 이익이나 무지 때문에 환경 파괴를 돕고 있는 사람도 있다. 살아가는 데 급급해서 자신의 활동이 가져올 종말에 관심을 기울일 만한 여유가 없는 것이다. 이런 파멸의 파도가 이미 막을 수 없는 여세로 밀어닥치고 있으며, 인간 역시 '살아있는 시체' 중의 하나여서 나머지 두 침팬지처럼 우리의 미래도 어둡다.……

하지만 나는 인류의 미래에 대해 낙관할 수 없는 모든 부정적인 근거에도 불구하고 희망이 있다고 믿는다. 인류의 흥망을 좌우하는 문제를 일으킨 것은 인간이기 때문에 그 해결도 인간의 손에 달려 있다고 생각한다.

언어·예술·농업이 인간만의 독특한 특징은 아니지만, 우리는 지리적·역사적으로 멀리 떨어진 우리 종의 구성원이 겪은 경험에서 교훈을 얻을 수 있는 유일한 동물이다.

인류의 멸망을 막는 희망의 길은 있다. (535~539쪽)

 

인간은 생존을 둘러싼 매우 어려운 문제에 봉착해 있고 해결 전망도 불확실하다. 그러나 나는 조심스럽게 인류의 미래를 낙관적으로 보고 있다. ……

몇 십 년 동안 유럽 정치의 중심에 있었던 예리한 지성의 소유자인 비스마르크는 어리석은 행동이 반복되는 역사를 보아왔을 것이다. 그럼에도 비스마르크는 역사로부터 교훈을 얻을 수 있다고 믿고, 자신의 자손에게 헌정하는 회고록을 남겼다. 그는 회고록에 '이 책이 나의 아이들과 손자들이 과거를 이해하고 미래로 나아가는 데 지침이 되기를 바란다'고 썼다.

나도 같은 마음으로 이 책을 두 아들과 그들 세대에게 바친다. 만약 우리가 이 책에서 더듬어 온 인류의 과거로부터 교훈을 얻는다면, 우리의 미래는 나머지 두 침팬지보다 밝을 것이다. (541~542쪽)

 

 

원제 : The Third Chimpanzee: The Evolution and Future of the Human Animal
지은이 : 재레드 다이아몬드
옮긴이 : 김정흠
출판사 : 문학사상사
주제 : 인류학, 고고학, 생명과학, 진화론

 

 

재레드 다이아몬드 (Jared Diamond) 1937년 미국 보스턴에서 출생했다. 하버드대학교 생물물리학 연구실을 거쳐 UCLA 생리학 교수로 재직했다. 1964년 뉴기니에서 조류를 관찰하며 진화생물학 연구를 시작한 후 지리학, 생물지리학, 생태계와 인간의 상호작용을 연구하는 환경사, 문화인류학 등으로 영역을 확장했다. 현재 UCLA에서 지리학을 가르치고 있다.

 

김정흠(옮긴이) 서울대 문리대, 동 대학원 물리학과를 졸업했고 고려대 물리학과 교수와 한국과학저술인 협회장을 역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