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리스토텔레스부터 DNA까지 다윈의 '위험한 생각'을 추적하다



진화에 관한 짧은 설명
자연선택에 의한 진화가 일어나려면 생물이 번식하여 자신의 복사본을 만들어야 하는데, 이때 다음 세대의 복사본이 자신과 완벽하게 똑같이 복사되지 않고 다양한 변이가 나타나야 한다. 이렇게 다양한 변이가 나타났을 때 자식 세대 일부가 어떤 이유에서든 나머지보다 번식에 성공한다면 성공에 도움이 된 그 특질이 이후 세대로 퍼질 것이다. 즉 선택될 것이다.
그러나 이 선택에 참여하려면 번식할 수 있을 정도로 오래 살아야 하며, 오래 살면서 번식을 많이 할수록 좋다. 그러므로 다윈의 이론은 다음처럼 깔끔하게 한 문장으로 요약할 수 있다.
"죽은 동물은 산 동물보다 번식할 기회가 적다."
『스타트렉』에 나오는 벌컨인의 인사말로도 표현할 수 있다.
"장수와 번영을(Live Long and Prosper)!"
머리말
진화는 사실이다. 자연에서, 특히 찰스 다윈의 연구로 유명해진 갈라파고스 제도의 핀치새들에서, 지구의 생물이 남긴 화석 기록에서, 또 '슈퍼세균'이 항생제에 대한 내성을 키워 나가는 것에서 진화가 일어나고 있음이 관찰된다. 이 사실을 설명하기 위해 여러 이론이 제시됐다. 사물이 아래로 떨어지고 행성이 태양을 도는 궤도를 유지한다는 사실을 설명하기 위해 아이작 뉴턴과 알베르트 아인슈타인이 중력 이론을 제시한 것과 마찬가지다. 뉴턴의 이론이 여러 목적에서 상당히 좋기는 하지만, 오늘날 가장 좋은 중력 이론은 아인슈타인의 일반상대성이론이다. 관찰되는 사실을 잘 설명하고 있다는 뜻에서 그렇다. 관찰되는 사실을 잘 설명한다는 의미에서 오늘날 가장 좋은 진화 이론은 자연선택 이론이다. 그러나 뉴턴의 중력 이론이 그 분야의 최종판이 아니었듯 자연선택 이론 역시 이 분야의 최종판이 아닐 가능성이 있다. 하지만 아인슈타인이 뉴턴의 이론을 개량했다고 해서 사과가 나무에서 떨어지기를 멈추지 않은 것처럼, 누군가가 다윈의 이론을 개량한다고 해서 생물이 진화를 멈추지는 않는다. (11쪽)
제1부 고대
Ancient Times

초기 그리스도교회의 몇몇 중요 인물은 창세기에 나오는 창조 이야기를 문자 그대로 받아들여서는 안 된다는 것을 깨닫고, 설령 모든 것이 하느님의 인도라 할지라도 지구상의 생물은 더 원시적인 기원으로부터 발달했을 수밖에 없다는 것을 알아보았다. (26쪽)
그래서 공식 노선은 우리가 주위에서 보는 세계는 하느님이 설계한 그대로 고정불변하다는 것이었다. 생물에 관한 한 존재의 사슬 내지 사다리가 올바른 이미지였다. 각각의 종은 사슬의 한 고리 또는 사다리의 한 가로장을 차지하며, 이 사다리는 실제로 제일 꼭대기에 있는 하느님으로부터 천사, 대부분 죽을 운명이지만 영혼이 있는 인간, 동물, 식물, 광물까지 내려간다. 이 이미지는 토마스 이후의 지배자들에게 막강한 도구였는데, 이것을 확장하여 사회에서 모든 인간은 각기 존재의 사슬 안에서 하느님이 정해 둔 자리가 있다고 말할 수 있기 때문이었다. 소작농이든 귀족이든, 거지든 왕이든 하느님이 그렇게 정리해 놓았기 때문에 자신을 운명을 받아들여야 했다. 자신의 지위를 낮춰 비천한 동물처럼 행동하면 죄가 되겠지만, 분수를 넘어 자신보다 지위가 높은 사람처럼 생각하거나 행동하는 것도 똑같이 죄가 됐다. 그러므로 기득권층에게는 이 생각을 장려할 확실한 이유가 있었다.
이렇게 그리스도교화한 플라톤/아리스토텔레스 세계에서는 어떤 종도 사슬의 한 고리에서 다른 고리로 옮겨 갈 수 없다. 비어 있는 고리도 없고 고리(사다리의 가로장)마다 차지하고 있는 종이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인접한 고리의 종은 서로 매우 닮았다. 이 관념은 그대로 18세기까지 생물학적 사고에서 중심을 차지한 원칙이었다. (32~33쪽)
과학 르네상스가 시작됐다고 볼 수 있는 편리한 시발점은 1543년이다. 이해에 니콜라우스 코페르니쿠스 Nicolaus Copernicus가 『천체 공전에 관하여』라는 책을 출간했는데 이 책에서는 지구가 태양을 돌고 있다고 했다. 같은 해에 안드레아스 베살리우스 Andreas Veslius도 그에 못지않게 중요하지만 덜 유명한 책 『인체구조에 관하여』를 출간했는데 이것은 해부를 바탕으로 인체를 정확하게 묘사한 최초의 책이다. 눈이 가려지지 않은 사람들이 볼 때 이제 지구는 하나의 행성에 불과하고 인간은 동물에 불과하다는 게 분명해졌다. 아쉽게도 그 뒤로 몇 세기 동안이나 수많은 사람의 눈이 가려진 채였으므로 자연에서 인간이 차지하는 위치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지는 못했지만, 시작은 한 셈이었다.
진화가 일어났다고 이해하게 된 첫걸음은 옛날에 살았던 생물이 고대의 바위 속에 보존된 화석을 조사하는 데서 시작됐다. 그러나 방금 그 단순한 한마디에는 많은 것이 압축되어 있다. 첫째, 화석이 생물의 유해라는 점을 인식해야 했다. 둘째, 바위가 고대의 것이라고 인식해야 했다. 17세기 초에는 이 두 가지 중 어느 것도 널리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34~35쪽)
훅은 지구의 역사가 매우 길고, 오늘날 우리가 대량멸종이라 부르는 일이 일어났으며, 그렇게 멸종한 뒤에는 새로운 종이 등장했다는 것을 이해했다. 그러나 이것은 새벽이라 할 수 없는 새벽이었다. 18세기 과학자들은 훅의 업적을 전혀 모른 채 독자적으로 진화를 이해하는 길로 나아갔다. (43쪽)
각 종에게는 낱말 두 개를 사용하여 각각 속과 종을 나타내는 고유한 이름을 부여했다. 예를 들면 늑대는 카니스 루푸스 Canis lupus였다. 그 뒤로 종의 목록은 여러 세기를 내려오면서 수정되고 확장됐지만, 생물학자가 하나의 종 이름을 카니스 루푸스 같은 식으로 언급할 때 다른 생물학자가 정확히 어떤 동물 또는 식물을 가리키는지 알 수 있게 된 것은 린네 덕분이다. 이 분류법은 위쪽으로 확장되어 종 種, 속屬, 과科, 목目, 강綱, 문門, 계界로 올라간다. 『자연의 체계』 제10권에서 린네는 또 포유류, 영장류, 호모 사피엔스를 비롯한 용어를 새로 도입하여 생물 세계에서 우리 인간이 차지하는 위치를 알 수 있게 했다. 오늘날에는 다음과 같이 이것을 아주 약간 바꾼 용어를 사용하고 있다.
계 : 동물계 Animalia - 문 : 척 삭 동물문 Chordata - 아문 : 척추동물아 문 Vertebrata - 강 : 포유강 Mammlia - 목 : 영장목 Primates - 과 : 사람과 Hominidae - 속 : 사람 속 Homo - 종 : 사람 Sapiens
결국 린네는 신학자들의 분노를 피하기 위해 과학적 규칙을 어기고 우리 인간 종을 호모 Homo라는 별도의 속에 넣는 방향으로 타협했다. 현대기에 들어와 인간 말고도 (멸종한) 다른 호모 종들이 같은 속을 분류됐으나 현대적 DNA 연구를 통해 외형상의 증거가 확인된다. 합리적인 어떤 체계로 분류해도 우리 인간은 침팬지와 함께 판 pan 속으로 분류되어야 마땅하며 고릴라와도 거의 똑같이 가까운 관계에 있다. (49~51쪽)
태어나고 나면 부모의 행동이나 환경적 영향이 개체의 발달에 영향을 줄 수 있겠지만 개체의 기본 모습은 전적으로 하느님이 설계한 것이었다. 이는 진딧물에만 적용되는 것이 아니라 모든 종에게 적용됐고, 수컷의 역할은 어미 안에 들어 있는 그 다음 개체의 성장을 자극하는 일종의 방아쇠로만 보았다. 보네가 1762년 저서 조직체에 관한 생각에서 '진화(evolution)'라는 용어를 도입한 것은 바로 이 맥락에서였다. 이 낱말은 펼친다는 뜻의 라틴어 '에볼루치오넴(evolutionem)'에서 왔다. 이미 내용이 적여 있는 두루마리를 펼친다는 뜻으로써, 이 경우에는 하느님이 적어 둔 두루마리이다. 이것은 오늘날 진화의 의미와는 정반대이며, 잘 알려져 있는 대로 찰스 다윈이 이 용어를 사용하기를 꺼린 것도 바로 이 때문이었다. 이 낱말은 『종의 기원』에서는 전혀 나오지 않는다. 그는 '변형되어 상속된다'는 표현을 선호했다. …… 일찍이 1745년에 피에르루이 모로 드 모페르튀이 Pierre-Lous Moreau de Maupertuis(1698~1759)는 저서 『형이하학적 비너스 Venus physique 』에서 태아는 작디작은 어른으로 출발하여 그대로 커지는 게 아니라 각각의 특징이 하나씩 모습을 드러내는 후성 과정에 의해 발달한다는 증거를 내놓은 바 있었다. …… 그는 또 '최소작용의 원리'라는 관념을 내놓았는데, 확실한 수학적 근거를 제시하지는 않았지만 본질적으로 말하면 자연은 가장 싸게 먹히는 길을 따른다는 것이다. 빛이 직선으로 움직인다는 사실도 그 한 예다. …… 『형이하하적 비너스』는 또 모페르튀이와 같은 시대 사람인 드니 디드로 Denis Diderot에게 큰 영향을 미쳤다. 프랑스의 자유사상가이자 계몽운동의 주용 인물인 디드로는 …… 기득권층을 공격하는 글 때문에 여섯 달 동안(1749년 7~12월) 투옥되기까지 한다. 그의 인생 역작은 백과사전으로, 긴 시일을 두고 여러 권으로 나왔다. 사전에서 그는 사람들에게 지식을 전하면서 스스로 생각하도록 격려했다. 제1권은 1751년에 나왔는데, 거의 나오자마자 당국에서는 그의 작업을 선동적이라고 보았고 대중에게 미칠 영향을 두려워했다. …… 그의 통찰력은 백과사전의 한 문장에서 알아볼 수 있다. "자연은 종종 눈치챌 수 없을 만큼 미묘한 정도로 진보한다." 그는 다양한 괴물이 만들어져 그 가운데 적절한 개체가 선택되는 게 아니라, 진화가 작디작은 단계를 거쳐 진행된다는 것을 알아보았다. 이것은 18세기 후반에 있었던 커다란 진일보였다. …… 일반적으로 '몬보도 Monoddo'라 불리는 그는 (제임스 버넷 James Burnett) 아메리카 원주민과 타히티인, 북유럽, 중동 사람들 등 서로 아주 동떨어진 세계 곳곳의 언어를 연구했다. 그는 언어는 진화했다는 생각을 하게 됐고, 이에 따라 인간은 한곳에서 생겨나 지구 전체로 퍼졌다는 의견을 내놓았다. …… 그는 인간은 영장류와 친척 관계임을 알아보았고 대로는 유인원을 우리 '형제들'이라고 표현했다. …… 몬보도의 생각은 그 이후 세대에 크게 영향을 주지는 못했으나 이래즈머스 다윈 Erasmus Darwin 같은 진화 사상가에게 알려졌다. 나아가 더 넓은 독자층에게까지 전달됐다. 찰스 디킨스 Charles Dickens의 소설 『마틴 처즐위트 Martin Chuzzlewit 』에는 "인류가 한때 원숭이였을 확률을 다루는 몬보도의 학설"이라는 구절이 나온다. 이것이 책으로 인쇄된 것은 1843년으로, 『종의 기원』이 출간되기 16년 전이고 몬보도가 죽은 지 44년 뒤였다. (53~61쪽)
다윈은 다양한 생물 세계뿐 아니라 종이 멸종하고 다른 종으로 대체되고 있다는 화석 증거를 직접 목격하고 있던 바로 그때 한 가지 진화 사상을 알게 된 것이다. 그러나 자신이 생각하고 있는 내용을 발표하는 데에는 조심스러웠다. 특히나 생물과학에서는 아무 이름도 없는 지질학자가 그런 의견을 내놓아 봤자 강한 반발만 일어날 것이 분명했다. (107쪽)
태양과 별의 진짜 나이에 대한 이해가 발전하는 것과 나란하게, 20세기에 방사능의 발견이 있은 뒤로 물리학자는 지구의 나이를 점점 더 정확하게 알아낼 수 있었다. (112~113쪽)
제2부 중세
The Middle Ages
라마르크는 진화를 현실로 받아들였지만 멸종이 있었다고는 믿지 않았다. 퀴비에는 멸종의 증거는 받아들였지만 진화는 믿지 않았다. (133쪽)
매튜가 찰스 다윈과 앨프리드 러셀 월리스보다 한발 앞서 이루어 낸 커다란 지적 도약은 자연선택에 의해 새로운 종이 만들어질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달은 것이었다. 다만 그는 이것이 너무나 자명하여 크게 떠들어 댈 거리가 되지 않는다고 생각한 것으로 보인다. 게다가 그는 여러 곳에서 '자연적 선택 과정', '선택 원칙', '자연법칙에 의한 선택' 등을 언급하면서 '자연선택'이라는 용어를 거의 만들어 내기 직전까지 갔다. (149쪽)
맬서스는 인구는 기회가 허락되면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난다는 점을 강조했다. 이것은 인구가 일정한 기간에 두 배가 되고 같은 기간이 지나면 다시 두 배가 되는 식으로 늘어난다는 뜻이다. 이는 인간의 인구뿐 아니라 다른 종에도 적용된다. …… 그러나 중요한 것은 '모두 살아남아 부모가 된다면' 부분이다. '과잉'(맬서스의 용어) 인구가 번식하기 전에 죽어 없어지면 인구는 어느 정도 안정된 수준에서 유지된다. (151쪽)
『창조 자연사의 흔적』은 1844년에 출간됐다. 제목은 "시작이 있다는 흔적도, 끝이 있다는 전망도 없다"고 말한 허턴에 대한 경의 표시였다. 로버트 체임버스는 시작이 있었으며 지구와 지구상의 생명이 언제나 오늘날 우리가 보는 것에 가까운 상태로 존재하지는 않았다고 보았다. 그는 별에서부터 인류에 이르기까지 모든 것의 기원과 진화에 관한 추측성 모델을 내놓으며 인간을 그 과정의 정점에 놓았다. 이것은 인간은 유일하게 특별히 창조된 존재가 아니라 '하등' 동물로부터 발달, 즉 진화했다는 뜻이었다. (156~157쪽)
『창조 자연사의 흔적』은 19세기 말까지 다윈의 『종의 기원』보다 많이 팔렸다. 여기에는 『창조 자연사의 흔적』에 대한 반응에 놀란 다윈이 자신의 걸작을 1589년까지도 출판하지 않고 그냥 가지고 있었던 탓도 있다. (160~161쪽)
찰스 로버트 다윈과 앨프리드 러셀 월리스는 각기 독자적으로 똑같은 어마어마한 생각을 ㅡ 진화라는 바로 그 어마어마한 생각을 ㅡ 거의 똑같은 시기에 해냈다. 자연선택이라는 이 생각을 논할 때 영예의 자리는 대개 다윈이 차지하지만, 월리스의 이야기는 『창조 자연사의 흔적』의 출판과 직접 연결되고 있고 고대인으로부터 다윈까지 이어지는 사슬의 마지막 연결 고리가 된다. (162쪽)
"많은 동물 특히 곤충은 주로 서식하는 흙이나 나뭇잎, 줄기와 매우 닮은 색을 띠는데 이것은 같은 원칙으로 설명된다. 오랜 세월 동안 수많은 다양한 색깔이 나타났겠지만, 적으로부터 숨기에 가장 적합한 색을 띤 종족들이 필연적으로 가장 오래 살아남을 것이다." (200쪽)
진화가 일어나는 원인은 생존투쟁이며 그것도 다른 종과의 경쟁이 아니라 같은 종 내 구성원 간의 경쟁이라는 것을 깨닫게 된 계기는 바로 맬서스의 에세이였다. 사자는 먹이가 되는 동물과 경쟁하는 게 아니라 먹이를 잡을 능력을 두고 다른 사자와 경쟁한다. 먹이가 되는 동물은 사자와 경쟁하는 게 아니라 사자로부터 달아나기 위해 자기 종 안의 다른 구성원들과 경쟁한다. (203~204쪽)
『종의 기원』 자체는 다윈의 50번째 생일 직후 1859년 3월 19일 완성됐다. 분량은 지금 여러분이 읽고 있는 이 책의 두 배인 155,000 낱말 정도였다. (213쪽)
1868년에는 『종의 기원』을 쓰면서 남겨 두었던 자료를 많이 포함시킨 『길들인 동식물의 변이』를, 그리고 1871년에는 우리의 이야기에서 가장 중요한 책 『인간의 유래와 성 선택』을 출간했다. …… 어떤 종이든 시간이 충분하다면 수많은 작디작은 단계를 거쳐 다른 어떤 종으로도 바뀔 수 있다. 그러나 시간이 충분한가 하는 문제는 20세기에 물리학 혁명이 일어나기 전까지는 명확해지지 않았다. (222~223쪽)
다윈이 죽은 뒤로 월리스는 ㅡ 그전에도 마찬가지였겠지만 ㅡ 자연선택에 의한 진화론을 지지하고 대변하는 데 앞장섰다. 그는 언제나 그 이론을 '다윈주의'라 불렀다. (229쪽)
제3부 현대
Modern Times
진화를 이해하는 핵심은 다윈과 월리스가 깨달은 것처럼 '그 부모에 그 자식이지만 완전히 똑같지는 않다'는 것이다. 암수 고양이의 자식은 언제나 고양이이며 카나리아도 대구도 수양버들도 아니다. 여기에는 '괴물 기대주'가 없다. 그러나 두 고양이의 자식은 부모 어느 쪽의 정확한 사본도 아니다. 이렇게 불완전한 복제가 일어나기 위한 상속 메커니즘은 다윈이 1860년대와 1870년대에 여러 차례 그 수수께끼를 풀고자 했지만 실패로 끝났다. (232~233쪽)
생물학적 맥락에서 '세포(cell)'라는 이름을 처음 사용한 사람은 로버트 훅이었다. 얇게 썰어 낸 코르크를 현미경으로 연구할 때 그 구조를 설명하기 위해서였다. 코르크를 현미경으로 보았을 때 그는 수도사들이 차지하고 있는 작디작은 독방을 떠올렸다. …… 1850년대 말 또 다른 독일인 루돌프 피르호 Rudolf Virchow(1821~1902)는 로베르트 레마크 Robert Remak(1815~1865)의 연구를 바탕으로 어떠한 세포도 저절로 존재하게 되지는 않는다는 것을 보여 주었다. 그는 다윈-월리스의 공동 논문이 발표된 해인 1858년 세포가 하나 있으면 반드시 그 이전 세포가 있다는 것을 지적했다. 동물에게 언제나 부모가 있고 식물이 다른 식물의 씨앗에서만 생겨나는 것처럼 세포 역시 다른 세포의 분열로서만 만들어진다. 오늘날 지구상에서 생명은 절대로 저절로 생겨나지 않는다. 모든 살아 있는 세포는 아득한 지질학적 과거의 어떤 머나먼 조상(들)으로부터 중도에 끊기는 일 없이 이어 내려왔다. 피르호는 오늘날 지구상 모든 생물의 조상은 문자 그대로 한 개의 세포였다고까지 말하지는 않지만, 지금은 이것이 지구상 모든 생물이 분자 차원에서 비슷한 가장 그럴 법한 설명이라고 널리 받아들여지고 있다. 최초 세포가 어디서 왔는지는 여전히 수수께끼였지만, 피르호의 연구 이후로 오늘날 동식물 속 생명이 어디서 왔는지는 더 이상 수수께끼가 아니게 되었다. …… 이 모든 것이 완전히 이해되자 생명에 관한 연구는 세포에 관한 연구가 됐다. 모든 세포는 기본 구조가 똑같다. 크기는 지름 10에서 100마이크로미터이며, 두께가 1백분의 1마이크로미터가 되지 않는 매우 얇은 세포막 또는 세포벽 안에 물 같은 젤리가 들어 있는 형태를 띤다. ……1866년 에른스트 헤켈 Ernst Haeckel (1834~1919)은 상속 가능한 특질을 전달하는 인자는 세포의 핵에 들어 있다는 가설을 세웠다. 그 무렵 단백질이 신체에서 가장 중요한 조직 구조 물질이라는 것도 알려져 있었다. 이 사실은 '첫째'라는 뜻인 단백질(protein)이라는 이름에도 반영되어 있다. …… 미셔는 생명 작용의 핵심인 세포 내 화학작용에 관여하는 단백질을 찾아내고자 했다. …… 생명의 기본단위로서 세포의 중요성이 일단 인정되자 '개개의 세포가 어떻게 분열하고 번식하는가'하는 문제가 풀어야 하는 수수께끼가 됐다. 세포학자들은 염료를 사용하여 세포에 색을 입힌 다음 세포 안의 구조를 살펴보았다. 1879년 독일 생물학자 발터 플레밍 Walther Flemming(1843~1905)이 세포 안에 있는 실 같이 생긴 구조체가 염료를 잘 받아들여 세포분열 과정에서 뚜렷하게 보인다는 것을 알아냈다. 쉽게 색을 입힐 수 있었으므로 이 실 같은 구조체에는 '염색체'라는 이름이 붙었고 세포 안에 있는 다른 갖가지 조각에도 '염색분체'라든가 '유색체' 같은 이름이 붙었다. (238~243쪽)
유전에서 염색체의 역할을 발견하고 멘델의 유전법칙을 재발견한 뒤 몇 년 동안 핵산 분석이 이루어졌고 핵산에는 DNA와 RNA 두 가지가 있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246쪽)
이들 연구에서는 돌연변이로 인해 기존 대립유전자로부터 새로운 대립유전자가 만들어졌을 때 그 대립유전자를 지니고 있는 동물이 나머지 동물에 비해 딱 1퍼센트 더 유리하다면 이 새 대립유전자는 이후 100세대가 지나는 동안 그 동물 집단 전체에 퍼진다는 것을 보여 주었다. (254쪽)
엑스선은 1895년 발견됐다. 그러나 처음에는 그 성격이 어딘가 불가사의했다. 전자 같은 입자의 흐름인지, 빛과 같지만 파장은 훨씬 짧은 전자기파인지 누구도 확신하지 못했다. (255쪽)
여러 사람의 수많은 연구 덕분에 결국 분명해진 것은 생명 분자의 복잡한 구조다. 사슬을 따라 이어지는 아미노산의 배열은 단백질의 일차 구조에 지나지 않는다. 이 사슬이 이리저리 비틀려 나선 같은 이차 구조를 만들 수 있다. 그리고 나선을 비롯하여 이차 구조가 비틀려 일종의 삼차원 매듭을 만들면 삼차 구조가 된다. 이 매듭의 화학적 조성만이 아니라 구체적 모양이 생명 과정에서 그 단백질의 역할을 결정한다. (263쪽)
이 발견 결과는 1944년 출간되어 변형 원인 물질은 다름 아닌 DNA라는 사실을 의심의 여지없이 확증했다. (266쪽)
DNA의 이해로 나아가는 노정의 여러 단계에서 있었던 실험에서는 갈수록 더 작고 더 빨리 번식하는 생물체를 사용했다. 그레고어 멘델은 완두를 가지고 실험했다. 토머스 헌트 모건은 초파리를 가지고 실험했고, 에이버리의 연구진은 박테리아를 가지고 했다. 마지막 단계에서는 유전물질을 가지고 있는 가장 작은 것을 사용했다. 그것은 바로 바이러스였다. 생물체가 작으면 작을수록 거기 딸린 상부 구조의 양이 적고 유전물질이 상대적으로 더 많다. 바이러스는 그 최고봉이다. (272쪽)
이 결과는 1952년에 출간되어 의심의 여지를 완전히 없애 버렸다. 유전정보를 가지고 있는 것은 DNA이며, 생명의 건축 재료는 단백질이다. …… 이제 박테리오파지에서 단백질이 구조 물질을 담당하고 DNA는 유전정보를 가지고 있다는 것이 분명해졌다. 이 뒤로 유전물질이 DNA가 아닌 다른 것일 수 있다고 믿은 생물학자는 거의 없었고 이제 무대는 DNA 자체의 구조를 밝혀내는 쪽으로 옮겨 갔다. (274~275쪽)
DNA 암호 해독 이야기는 사실 생물학자가 아니라 어느 물리학자가 쓴 책으로 시작한다. 양자물리학을 개척한 에르빈 슈뢰딩거 Erwin Schrodinger(1887~1961)는 생명암호를 가지고 있는 분자에 변화가 유발될 때, 즉 돌연변이가 일어날 때 양자 차원에서 일어나는 과정이 중요할 수도 있다는 생각에 크게 흥미를 느꼈다. (286쪽)
진화라는 시간 척도에서 볼 때 유전자가 염색체 사이에서 재배치되는 일은 수시로 일어나며, 이로써 자연선택이 작용하기 위한 변이가 늘어나면서 진화를 일으키는 요인의 하나가 된다. 이것은 진화의 성격을 들여다볼 수 있는 두 가지 새로운 깨달음으로 이어졌다. 둘 중 어는 것도 다윈과 월리스의 업적을 훼손하거나 신뢰도를 떨어뜨리지 않는다. 자연선택은 두 사람이 발견한 바로 그 방식으로 변이를 바탕으로 작동한다. (299쪽)
우리 몸에 있는 각 세포는 DNA 가닥을 따라 붙어 있는 염기쌍을 60억 쌍 정도씩 가지고 있다. 그 DNA 전체 중 1억2천만 개 정도의 염기쌍만 단백질을 만드는 암호를 가지고 있다. 이것은 전체의 2퍼센트 정도에 지나지 않는다. 우리 세포 속 DNA의 98퍼센트 정도가 단백질의 암호를 직접 가지고 있지 않는데, 이 때문에 이들을 때로는 '비암호화 DNA'라 부르기도 한다. …… 세포 안에서조차 자원을 두고 경쟁이 벌어지며 진화가 작용하고 있다. …… 그러나 복잡한 생물체가 가지고 있는 '비암호화 DNA'의 상대적 비율은 그보다 더 높다. 박테리아의 경우 단백질 암호 지정에 관여하지 않는 DNA의 비율은 10퍼센트 정도 된다. 초파리의 경우에는 82퍼센트이다. 그러나 우리 인간의 경우에는 방금 언급한 것처럼 98퍼센트이다. 생물체가 복잡할수록 세포 안에 가지고 있는 '쓸모없는' DNA의 비율이 높은 것이다. (303~304쪽)
우리의 관점에서 볼 때 여기서 받아들일 부분은 진화의 과학적 이해는 21세기의 20년대에 들어가고 있는 지금도 여전히 진화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다윈과 월리스는 자연선택의 역할을 정확하게 이해했지만, 복잡한 생물체들은 단백질의 표현 방식을 후성유전적으로 제어하는 유연성 덕분에 재난에 대처할 여지를 얻는 셈이다. 환경이 변화하면 생물체는 유용한 돌연변이가 나타나기를 기다리지 않고도 변화할 여지가 있다. 그리고 이 여지 적분에 종이 충분히 오래 살아남는다면, 새로운 변종이 그냥 힘겹게 버텨 나가는 정도가 아니라 유익한 돌연변이가 생겨나 번성하여 조상 형태를 대체까지 할 수 있는 시간이 있을 것이다. ……
"그렇지만 우리는 세포가 위험을 감지하고 그에 대해 종종 진정으로 훌륭한 대응책을 내놓는 것을 보면서도 어떻게 그렇게 되는지에 대해서는 아무것도 모릅니다."
진화 이야기는 막 시작됐을 뿐인 것 같다. (311~312쪽)
원제 : On the Origin of Evolution
지은이 : 존 그리빈, 메리 그리빈
옮긴이 : 권루시안
주제 : 과학, 기초과학, 생명과학출판 : 진선북스

존 그리빈 케임브리지 대학교에서 천문학 박사 학위를 받고 『네이처』와 『뉴사이언티스트』지에서 저널리스트로 활동했다. 과학자라기보다 소설처럼 읽을 수 있는 과학 도서 작가이자 과학을 바탕으로 하는 소설 작가라고 자신을 소개하는 그는 『다중우주를 찾아서』와 『우주』 등 수많은 베스트셀러를 썼다.
메리 그리빈 영국에서 활동 중인 교육자이자 아동청소년 과학 도서 작가로, 『쉬』, 『코스모폴리탄』, 『가디언』 등 여러 신문 잡지에 기고했다.
권루시안 편집자이자 번역가로서 다양한 분야의 책을 아름답고 정확한 번역으로 소개하려 노력하고 있다. 옮긴 책으로는 『참 쉬운 진화 이야기』, 『이스트 웨스트 미메시스』, 『아인슈타인의 꿈』, 『언어의 죽음』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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