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 좋은 방법은 그날그날 일어난 일들을 써놓는 것이다. 실상을 명확히 보기 위해서다. 뉘앙스와 작은 사실들을, 그것들이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보일지라도, 놓치지 말 것. 이 탁자가, 거리가, 사람들이, 내 담뱃값이 어떻게 보이는지 말해야 한다. 왜냐하면 변한 것은 바로 그것이기 때문이다. 이 변화의 범위와 성격을 정확하게 규정해야 한다. (13쪽)
그 무언가가 내게 일어났다. 더 이상 의심의 여지가 없다. 이것은 어떤 통상적인 확신이라든지, 어떤 명백한 사실로서가 아닌, 어떤 병처럼 찾아왔다. 이것은 음험하게 조금씩 자리를 잡았고, 나는 조금 이상하고, 약간 거북한 기분을 느꼈을 뿐이다. (19쪽)
모든 친구들은 자신의 생각을 설명하고, 자기들이 모두 의견이 같다는 사실을 행복하게 확인하며 시간을 보낸다. 세상에, 모두가 같은 생각을 한다는 것이 그렇게도 중요하단 말인가! 자기 생각에만 파묻혀 있는 듯 보이고, 그들과는 결코 합의가 가능할 것 같지 않은, 물고기 같은 눈을 가진 사람들 중의 하나가 그들 가운데를 지나갈 때 그들이 어떤 표정을 짓는지 한번 보라. (29~30쪽)
이제 알겠다. 내가 언젠가 바닷가에서 그 돌멩이를 들고 있었을 때의 느낌이 분명히 생각난다. 그것은 일종의 달착지근한 욕지기였다. 얼마나 불쾌한 느낌이었던가! 그 느낌은 분명히 돌멩이로부터 왔다. 돌멩이에서 내 손으로 전해지고 있었다. 그래, 그거였다. 바로 그거였다. 손안에 느껴지는 일종의 구토증이었다. (34~35쪽)
미래가 보인다. 그것은 여기, 이 거리에 놓여 있고, 현재보다 더 흐릿하다고 할 수 없다. 그것이 왜 실현되어야 한단 말인가? 실현되어서 무슨 유익이 있단 말인가? 노파는 비척거리며 멀어져가다가 멈춰 서서는 스카프에서 빠져나온 회색 머리타래를 쓸어 올린다. 그녀는 걷고 있고, 저기에 있었는데, 지금은 여기에 있고 ······ 내가 어디에 있는지 더 이상 알 수 없다. 내가 그녀의 움직임을 보고 있는 걸까, 아니면 미리 보고 있는 걸까? 현재와 미래가 더 이상 구별이 안 되지만, 그것은 지속되고 있고, 조금씩 실현되고 있다. 노파는 인적 없는 거리를 나아가고 있다. 그 묵직한 남자 구두를 옮기며 가고 있다. 이게 바로 시간이다. 있는 그대로의 시간이다. 이것은 서서히 모습을 드러내고, 우리를 기다리게 하지만, 정작 나타나면 우리는 역겨워지는데, 그 까닭은 이것이 오래전부터 여기 있었다는 것을 깨닫기 때문이다. (80~81쪽)
나는 가장 평범한 사건이 하나의 모험이 되기 위해서는, 그것을 이야기하기 시작해야 하고, 또 그것만으로도 충분하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바로 이것이 사람들이 속고 있는 지점이다. 한 인간은 언제나 이야기꾼이며, 자신의 이야기와 타인의 이야기에 둘러싸여 살며, 그에게 일어나는 모든 일을 이야기를 통해 본다. 그리고 그는 자신의 삶을 마치 이야기하듯이 살려고 한다. (99쪽)
우리가 살 때에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 그저 배경이 계속 바뀌고, 사람들이 들어오고 나갈 뿐이다. 여기에 시작은 결코 없다. 날들이 아무 이유 없이 날들에 덧붙여지는데, 이것은 끝나지 않는 단조로운 덧셈이다. (100쪽)
변한 것은 아무것도 없지만, 모든 것이 다른 방식으로 존재한다. 이것을 정확히는 설명하지 못하겠다. 이것은 구토와도 같지만, 또 그와는 정반대되는 것이다. 드디어 모험의 순간이 찾아왔고, 이게 무엇인지를 생각해보니, 지금 나는 나고, 나는 여기에 있다. 밤을 쪼개버리는 것은 나고, 나는 소설의 주인공처럼 행복하다. (132쪽)
정말이지 이 모험의 느낌은 어떤 사건들로부터 오는 것이 아니다. 이것은 증명되었다. 그보다는 순간들이 서로 이어지는 방식이라고 할 수 있다. 자, 나는 다음과 같은 일이 일어난다고 생각한다. 우리는 시간이 흐르는 것을 갑자기 느낀다. 각 순간은 다른 순간으로 이어지고, 또 이 다른 순간은 또 다른 순간으로, 계속 이렇게 이어지면서 각 순간은 소멸되고, 그것을 붙들려고 애쓸 필요가 없다는 느낌이 갑자기 찾아오는 것이다. 그러고 나서 우리는 각 순간들 가운데에서 나타나는 사건들에 이 속성을 부여한다. 형태에 속한 것을 내용에도 부여한다. 요컨대 '시간의 흐름'이라는 이 유명한 현상은 사람들이 수없이 얘기하지만, 누구도 결코 볼 수 없는 것이다. 우리는 어떤 여자를 보고, 그녀가 장차 늙을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그녀가 늙는 것을 보지는 못한다. 하지만 가끔 그녀가 늙는 게 보이는 것 같이 느껴지고, 자신도 그녀와 함께 늙고 있다고 느껴질 때가 있는데, 이것이 바로 모험의 느낌이다. (137~138쪽)
그들은 나이가 마흔에 가까워지면 밖으로 내보낼 수 없는 경험으로 자신이 한껏 팽창하는 것을 느낀다. 다행히도 그들에겐 아이들이 있어서, 아이들로 하여금 그것을 즉석에서 소비하게 만든다. 그들은 사람들로 하여금 그들의 과거는 사라지지 않았으며, 그들의 추억들은 압축되어 부드럽고도 달콤한 '지혜'로 바뀌었다고 믿게 하고 싶을 것이다. 얼마나 편리한 과거인가! 문고판 책, 멋진 격언들이 가득한 금빛 장정의 소책자가 된 과거다. "이건 정말인데, 지금 난 경험에서 말하는 겁니다. 내가 아는 모든 것은 삶에서 얻은 거예요." 삶이 그들을 위해 생각하는 일을 떠맡기라도 했단 말인가? 그들은 옛것을 가지고 새것을 설명한다. (165~166쪽)
하지만 화가들의 붓은 그들의 얼굴에서 인간 얼굴의 신비스러운 약점을 제거해 버렸다. 그들의 얼굴은, 심지어는 가장 푸석푸석한 얼굴들까지도, 마치 도자기처럼 깨끗했다. (…) 하지만 자신을 후세에 넘겨야 할 때가 되자, 그들은 명성 높은 화가에게 자신을 맡겨, 자신의 얼굴에 준설작업과 굴착작업과 관개작업을 은밀히 행하게 했다. 그들 자신이 부빌 주변의 바다와 벌판을 완전히 바꾸어놓고자 시행했던 그 작업들을 말이다. 이렇게 그들은 르노다와 보르뒤랭의 협력하에 자연 전체를, 그들 외부의 자연과 그들 내부의 자연을 복속시킨 것이다. 이 어두운 그림들은 내 눈앞에 인간에 의해 다시 인식된 자연을 보여주었다. 그것의 유일한 장식물은 인간의 가장 멋진 정복물, 즉 '인간과 시민의 권리'라는 꽃다발이었다. (212쪽)
나는 보르뒤랭 르노다 전시실을 죽 가로질렀다. 그리고 몸을 돌렸다. 안녕, 그림들로 만든 작은 성소여, 당신들의 성소 안에 우아하게 자리 잡은 멋진 백합들이여, 안녕, 우리의 긍지이자, 우리의 존재 이유인 멋진 백합들이여, 안녕, 이 개자식들아. (222쪽)
나의 생각, 그것은 나다. 그래서 멈출 수가 없는 것이다. 나는 생각하기 때문에 존재한다 ······ 그러니 나는 생각하는 것을 그만둘 수가 없다. 바로 이 순간에도 내가 존재한다면, 그것은 내가 존재하는 게 끔찍하다고 생각하고 있기 때문이다. 내가 갈망하는 무無로부터 나를 끌어내고 있는 게 바로 나다. 존재하는 것에 대한 증오와 혐오감, 이것들이 나를 존재하게 하는, 나를 존재 가운데로 밀어 넣는 방식들이다. 생각들은 내 뒤에서 어떤 현기증처럼 피어난다. 난 그것들이 머리 뒤에서 피어나는 것을 느끼고 ······ 그냥 그대로 놔두면 그것들은 앞으로, 두 눈 사이로 나아올 것이다. 그리고 또 계속 그대로 놔두면 생각은 부풀고 부풀어, 엄청난 크기가 되어 나를 온통 채우고, 나의 존재를 새롭게 한다. (234~235쪽)
내가 지금 마음이 가벼워졌다거나 기쁘다고는 말할 수 없다. 오히려 숨이 막힌다. 다만 나는 목적을 이뤘다. 알고 싶었던 것을 이제 알게 되었고, 1월부터 내게 일어난 모든 것의 의미를 이해한 것이다. 구토는 나를 떠나지 않았고, 나를 빨리 떠날 것 같지도 않다. 하지만 난 더 이상 그것에 휘둘리지 않는다. 그것은 어떤 병이나, 일시적인 발작이 아니라, 바로 나 자신이기 때문이다. (295쪽)
핵심은 우연성이다. 그러니까 내 말은, 정의상 존재는 필연이 아니라는 뜻이다. 존재한다는 것, 그것은 간단히 말해서 여기 있는 것이다. 존재하는 것들은 나타나고, 누군가와 마주치게 되지만, 결코 연역될 수 없다. (306쪽)
그리고 나도 그저 순수한 존재이고 싶었다. 심지어는 그것만을 원했고, 그것이 내 삶의 밑바닥에 깔려 있는 비밀이었다. 일견 무질서해 보이는 내 삶이 이제 명확히 들여다 보인다. 서로 관계가 없어 보였던 그 모든 시도들의 저변에서 동일한 바람을 발견하니, 그것은 존재를 내 밖으로 쫓아버리고 싶은 바람, 각 순간에서 기름기를 빼내고 싶은 바람, 각 순간을 빨래 짜듯 짜서 말리고 싶은 바람, 나를 순수하고 단단하게 만들고 싶은 바람, 그리하여 결국 색소폰의 음처럼 분명하고 정확한 소리를 만들고 싶은 바람이다. 이런 나의 이야기로 교훈적인 우화를 한 편 지을 수도 있으리라. (403쪽)
'구토 nausée'는 '배'를 뜻하는 라틴어 'nausea'에서 유래한 단어로 항해 도중에 생기는 뱃멀미를 의미하지만, 《구토》 출간 후에 이 단어는 "실존적 불안"이라는 새로운 의미를 갖게 되었다.
원제 | La nausée (1938년)
지은이 | 장 폴 사르트르
옮긴이 | 임호경
출판사 | 문예출판사
주제 | 프랑스 소설, 서양현대고전
장 폴 사르트르 (Jean-Paul Sartre, 1905~1980) 파리에서 태어나 이듬해 아버지를 잃고 외조부 밑에서 자랐다. 1928년 철학교수자격시험에 떨어졌으나 다음 해에 수석합격했고, 당시 차석합격자이자 평생의 연인이 될 시몬 드 보부아르를 만난다. 1931년 군복무를 마치고 《구토》의 무대가 되는 르아브르의 고등학교 철학교사로 부임했다. 1939년 제2차 세계대전에 징집되어 1940년 포로가 되었다가 1년 만에 석방된다. 알베르 카뮈와 함께 참여하는 지식인의 상징이 된 대표적인 사상가로, 개인의 자유와 인간의 존엄성을 옹호하며 사회적 책임과 윤리적 메시지를 전하는 소설과 희곡을 발표한다. 1980년 폐수종으로 75세로 사망했다.
임호경 (옮긴이, 1961~) 서울대학교 불어교육과를 졸업하고 파리 제8대학에서 문학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현재 전문번역가로 활동 중이며, 요나스 요나손의 《창문 넘어 도망친 100세 노인》, 피에르 르메트르의 《오르부아르》,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신》, 조르주 심농의 《갈레 씨, 홀로 죽다》, 기욤 뮈소의 《7년 후》, 파울로 코엘료의 《승자는 혼자다》 등을 번역했다.
'교육문화' 카테고리의 다른 글
(책) 무례한 시대를 품위 있게 건너는 법 (2) | 2024.06.12 |
---|---|
(책) 시간은 흐르지 않는다 (1) | 2024.06.12 |
종합형 시민안전체험시설 '마곡안전체험관' 개관 (1) | 2024.04.18 |
4월 11일,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 105주년 기념일 (0) | 2024.04.11 |
서울시교육청, 아침 운동과 연계한 학생 조식 지원 사업 (3) | 2024.04.0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