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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문화

(책) 신의기록

by 두우주 2023. 12. 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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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   제 | The Writing of the Gods (The Race to Decode the Rosetta Stone)

지은이 | 에드워드 돌닉

옮긴이 | 이재황

주   제 | 문명, 고고학, 언어학

출판사 | 책과함께

 

에드워드 돌닉 (Edward Dolnick)

《보스턴 글로브》에서 과학 수석 기자로 활동했으며 《애틀랜틱》, 《뉴욕 타임스 매거진》, 《워싱턴 포스트》 등에 기고했다. 지은 책으로 에드거상을 수상한 《사라진 명화들(The Rescue Artist)》을 비롯해 《뉴턴의 시계(The Clockwork Universe)》, 《러시(The Rush)》, 《위대한 미지의 세계로 내려가다(Down the Great Unknown)》, 《위조범의 주문(The Forger’s Spell)》, 《소파 위의 광기(Madness on the Couch)》 등이 있다. 

 

이재황

서울대 동양사학과에서 공부하고, 한국방송(KBS), 내외경제(현 헤럴드경제), 중앙일보 등에서 기자로 일했다. 역사와 언어, 문자 등에 관심을 가지고 《한자의 재발견》, 《기발한 한자사전》, 《가장 빨리 외워지는 한자책》 등을 썼으며, 조선왕조실록을 재편집하고 우리말로 옮겨 《태조·정종본기》, 《태종본기》(전 3권)를 펴냈고, 정인보의 《양명학연론》 교주본을 냈다. 《실크로드 세계사》로 제58회 한국출판문화상(번역 부문)을 수상했으며, 그 밖에 《미래로 가는 길, 실크로드》, 《중세인들》, 《지중해 세계사》, 《신의 기록》, 《책을 불태우다》, 《비잔티움 제국 최후의 날》 등의 영문서와 《맹자》, 《순자》 등 동양 고전을 우리말로 옮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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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알라딘

 

목차

프롤로그 · · · 6

1 | 3천 년 동안 존속한 나라의 문자 · · ·  2 | 로제타에서 발견된 돌 · · ·  3 | 미궁에 빠졌던 까닭 · · ·  4 | 기록이라는 것의 의미 · · ·  5 | 아주 가깝고도 아주 먼 · · ·  6 | 이집트로 간 나폴레옹 · · ·  7 | 프랑스군이 로제타석을 찾게 된 내막 · · ·  8 | 고대 이집트를 베끼고 그리다 · · ·  9 | 영국으로 간 로제타석 · · ·  10 | 전문가들의 첫 추측 · · ·  11 | 두 천재 경쟁자 · · ·  12 | 난생처음 좌절감을 맛본 토머스 영 · · ·  13 | 실마리를 찾아내다 · · ·  14 | 독보적인 선두 · · ·  15 | 해독자의 자질 · · ·  16 | 헛다리 짚기 · · ·  17 | 이집트에 대한 경외감 · · ·  18 | 두 번째 실마리 · · ·  19 | 샹폴리옹이 납신다 · · ·  20 | 필사의 어려움 · · ·  21 | 글쓰기의 탄생 · · ·  22 | 천천히, 그러다 갑자기 · · ·  23 | 아부심벨 신전· · ·  24 | 유레카! · · ·  25 | 첫 브리핑 · · ·  26 | 소리와 의미를 표현하는 방식 · · ·  27 | 3천 년 전의 소리를 듣기 위한 노력 · · ·  28 | 많이 나오는 단어를 찾아라 · · ·  29 | 결정적 발견 · · ·  30 | 성체자의 독특함 · · ·  31 | 두 경쟁자의 업적을 어떻게 봐야 할까 · · ·  32 | 이집트의 문을 열다

에필로그 · · ·  379

감사의 말 · · ·  387

옮긴이의 말 · · ·  389

주 · · ·  394

참고문헌 · · ·  419

도판 출처 · · ·  430

 

책소개

천 년 넘게 아무도 쓰지 않은 글자를 어떻게 읽어낼 수 있을까? 

천 년 넘게 누구도 읽을 수 없던 고대 이집트 그림문자(성체자聖體字, hieroglyphs). 1799년 발견된 로제타석에는 세 가지 문자가 새겨져 있었는데, 그중 하나가 성체자이고 다른 하나는 해독이 가능한 고대 그리스어였다. 

 

이 책은 암호나 퍼즐을 풀어나가듯 이 로제타석의 성체자를 함께 해독해 간다. 19세기의 두 천재 주인공들이 성체자를 해독해 가는 과정과 난관마다, 관련된 사례와 예시를 풍부하게 곁들여 그 의미를 풀어낸다. 오랜 세월 사용되지 않은 문자로 쓰인 기록을 우리는 어떻게 읽어낼 수 있을까? 이 책을 읽고 나면 우리를 둘러싼 수많은 문자와 기호가 달리 보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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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알라딘

 

 

1. 3천 년 동안 존속한 나라의 문자

 이집트의 연대표를 들여다보면 현기증이 일어난다. 이집트의 가장 유명한 유적인 기자 피라미드와 스핑크스는 영국 남부에 있는 스톤헨지보다 오래됐다. 이집트의 듀 유적은 서기전 2600년 무렵의 것이고, 스톤헨지는 아마도 서기전 2400년의 것으로 보인다. ··· 피라미드의 시대로부터 클레오파트라의 치세까지는 클레오파트라로부터 라이트 형제까지의 기간보다도 더 길다. 그리고 그 오랜 시간의 거의 대부분 동안 이집트는 세계의 정상에 있었다. -p13

 

 그 경외감은 성체자 聖體字, hieroglyphs로 이어졌다. 고대 이집트의 인상적인 쓰기 체계다. ··· 이집트의 유적들과 무덤들은 매혹적이고 화가 치밀도록 정교한 그림문자로 뒤덮여 있었지만 그 해독 방법은 아무도 몰랐다.  -p15

 

 그러나 성체자를 경멸적을 바라본 사람은 거의 없었다. 신전 벽과 오벨리스크에 새겨진 그것들은 깊숙한 곳에 있는 자연의 핵심을 슬쩍 비춰주는 것으로 환호를 받았다. 현대 사회에서 이에 해당하는 것은 상하이와 시카고의 물리학자들이 같은 방식으로 쓴 e=mc2 같은 진실들일 것이다. -p19

 

 성체자가 몰락하도록 쐐기를 박은 것은 기독교의 등장이었다. 서기 300년대 초 로마 황제 콘스탄티누스 1세가 기독교로 개종했다. 세계사에서 아주 중요한 진로 변경의 시작이었다. 이 4세기에 기독교는 로마의 공식 종교가 되었고, 그 세기 말이 되자 이 미미했던 신흥 종교는 경쟁 종교들을 불법화하기에 충분할 정도의 강한 세력으로 성장했다.

 391년, 로마 황제 테오도시우스 1세는 이집트의 모든 신전을 허물도록 명령했다. 기독교를 모독한다는 이유였다. 394년, 나일강을 한참 올라간 곳에 있는 섬 필라이의 신전 벽에 마지막 성체자 글이 새겨졌다.

 테오도시우스의 칙령은 새로운 것이었다. 전쟁과 박해는 인류의 역사만큼이나 오랜 것이었지만, 한쪽이 다른 신을 믿는다는 점이 문제된 경우는 별로 없었다. 다신교가 거의 일반적이었던 시대에 새로운 영토를 차지한 정복자들은 현지의 신들 역시 흡수하게 마련이었다. 이미 수십 명의 신들을 숭배하고 있다면 몇 명 더 넣을 자리를 만드는 것은 문제도 아니었다.

 그러나 일신교가 나타나고 진정한 하나의 신만 믿게 되자 모든 것이 바뀌었다. 이집트학자 바버러 머츠는 이렇게 말했다. "그리스인들과 로마인들은 옛날 신들을 섬겼다. ··· 그러나 일신교는 본질적으로 이미 관용적일 수 없었다."

 성체자는 사악한 옛 방식의 상징이었으므로 특히 비난의 대상이 되었다. 그것들은 금지되고, 곧 기억에서 사라졌다. 

 로마는 흥성했다가 쇠락했지만, 성체자는 여전히 그 비밀을 유지했다. -p20~21

 

2. 로제타에서 발견된 돌

 그것은 1799년 7월의 어느 무더운 날에 번성하지만 외진 이집트 소도시 라시드의 잡석 더미에서 튀어나왔다. 프랑스는 1798년에 이집트를 침공했다. 프랑스군의 선두에는 막 명성을 날리기 시작한 젊은 장군 나폴레옹 보나파르트가 있었다. -p23

 

3. 미궁에 빠졌던 까닭

 로제타석이 발견되던 시기에 프랑스와 영국은 지구 전역에 식민지를 가진 거대한 강국이었다. 그러나 로제타석이 쓰인 서기전 196년에 그 지역은 약탈 부족들이 살던 곳이었다. 그들이 벌인 활동은 대개 습격과 강탈이었다. -p31

 

 카이사르의 시대에 이집트의 절정기는 이미 먼 옛날의 일이었다. 그럼에도 카이사르의 로마는 이집트 기준으로 한참 미치치 못했다. 아테네나 당시의 다른 모든 도시들도 마찬가지였다.

 카이사르와 클레오파트라의 시대에 이집트 수도 알렉산드리아는 세계에서 가장 크고 가장 웅장한 도시였다. 조각상들이 줄을 짓고, 공원이 도시를 수놓으며, 상인들과 관광객들로 북적거렸다. 로마는 파리 같은 곳에나 대고 우쭐대야 했다. 

 클레오파트라는 이집트 파라오 계보의 최종 주자였다. 파라오 투탕카멘으로부터 1300년이 지난 뒤였고, 이집트 문학의 황금기로부터 2천 년이 지난 뒤였으며, 기자 대피라미드가 건설된 지 2600년이 지난 뒤였다. -p32~33

 

4. 기록이라는 것의 의미

 언어와 해독의 수수께끼는 살아 있는 신비다. 오늘날까지 아무도 해독하지 못한 낯선 문자로 쓰인 글들이 있다. 고대 이탈리아로부터 내려온 것이 그 하나고, 또 하나는 라파누이섬에서 나온 것이다.

 말하기와 쓰기는 동전의 양면처럼 보이지만, 쓰기가 근본적으로 더 어렵다. 모든 아기는 자연스럽게 말하기를 배운다. 주위에 있는 모든 사람들의 말소리에 푹 파묻혀서다. 그러나 읽기와 쓰기를 자동적으로 배우는 아기는 없다. 주위에 인쇄된 단어들이 온통 널려 있어도 말이다. -p39

 

 결정적인 점은 말하기는 자연발생적이지만 쓰기는 고안돼야 했다는 점이다. 말은 기어가기나 걷기처럼 우리의 생물학적 유산 가운데 하나다. 쓰기는 전화기나 비행기처럼 인간 창의력의 산물이다.

 쓰기의 고안은 흔히 모든 지적 도약 가운데 가장 큰 도약의 반열에 오르곤 한다. 인류학자 로런 아이슬리는 이렇게 쓴 바 있다.

 

「쓰기가 없었다면 과거에 대한 이야기는 급속하게 어설픈 신화와 우화 수준으로 떨어졌을 것이다. ··· 글을 모르는 우리 조상들이 사라지면서, 시대를 불문하고 가장 위대한 그들의 이야기도 불과 몇 세대 지나지 않아 사라졌다.」 -p40~41

 

5. 아주 가깝고도 아주 먼

 분묘 도굴 역시 이집트 역사의 가장 이른 시기로 거슬러 올라간다. ··· 더욱이 고약한 것은 내세 준비가 더욱 정교해지고 풍성해지면서 도둑들이 보물에 대한 소문을 듣고 그것을 빼낼 준비를 미리 했다는 것이다. 역사가이자 소설가인 메리 레놀트는 이렇게 한탄했다. "명이 다한 자가 믿었던 것과 같은 것을 믿은 자들이, 그의 영생은 아랑곳없이 그 부적들을 훔칠 준비를 했다. 인간 본성의 우울한 면을 보여주는 일이다." -p64

 

6. 이집트로 간 나폴레옹

 우리 이야기에 매우 중요한 것은 나폴레옹의 이집트에 관한 계획이 새로운 영토를 정복하는 일을 넘어서고 있었다는 점이다. 그는 매우 뛰어난 학자와 예술가 160명 정도를 함께 데리고 갔다. -p74

 

8. 고대 이집트를 베끼고 그리다

 「보나파르트는 이집트로부터 의기양양하게 돌아왔고,

그의 군대가 그와 함께 돌아오지 않은 이유에 대해 묻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이집트에 남겨진 병사들은 그저 투덜거릴 수밖에 없었다. ··· 이제 클레베르는 "저 코르시카 꼬마"의 비겁함을 보고 화가 나 나폴레옹에 대한 경멸을 대놓고 드러냈다.

 

「저 빌어먹을 자가 바지에 똥을 가득 싸놓고 우리를 버렸다. 유럽으로 돌아가면 그걸로 얼굴을 문질러주겠다.」

 

 나폴레옹은 저명한 학자 세 사람을 데리고 파리로 돌아왔다. 군대와 나머지 연구자들은 모두 여전히 이집트에 있었다. 병사들에게 이집트는 유배를 의미했다. 연구자들에게는 도망갈 구멍이 있는 유배였다. 그들이 버려졌다는 것은 부정할 수 없었다. -p94~95

 

9. 영국으로 간 로제타석

 1801년 9월 2일, 지휘권을 넘겨받은 지 막 1년이 지났을 때 메누는 영국에 항복했다. ···

영국은 승자로서 프랑스가 이집트에서 수집한 모든 노획물을 가질 권리가 있다고 주장했다. -p104

 

 로제타석은 "방비가 없는 주민들에게서 약탈한 것이 아니라 전쟁의 승리로 명예롭게 습득한 영국 군인의 자랑스러운 전리품"이라고 그는 선언했다.

 이렇게 로제타석은 지금 루브르 박물관이 아니라 영국박물관에 자랑스럽게 소장되어 있다. ···

 오늘날 로제타석을 찬찬히 들여다보면 옆면에 쓰인 대문자들을 분명하게 알아볼 수 있다. 왼쪽에는 "1801년 이집트에서 영국 육군이 노획", 오른쪽에는 "국왕 조지 3세 증정"이라고 씌어 있다. -p107

 

13. 실마리를 찾아내다

 평생 공직에 있었던 배로는 평범하고 특색이 없어 보였다. ··· 그러나 실제로 그는 지략이 있고 혁신적인 해결사였다. ···

 바테를로 전투 이후 영국이 나폴레옹을 안전하게 치워둘 장소에 대해 고민하고 있을 때 그를 지구상 최고의 오지인 세이트헬레나섬으로 보내자는 아이디어를 낸 사람이 존 배로였다. -p153

 

 라이프니츠세계 공통어를 만들어야 한다는 오랜 집착이 있었다. 그 시대의 많은 사상가들도 마찬가지였는데, 그들 모두는 과학혁명의 성공에 자극을 받은 것이었다. 중국에서 하늘을 향해 쏜 화살은 영국에서 쏜 것과 같은 곡선을 그렸다. 그것은 새로운 소식이 아니었다. 놀라웠던 것은 중국 수학자와 영국 수학자가 그 곡선을 같은 방정식으로, 같은 수학 기호를 사용해 묘사할 수 있었다는 것이다. 그리고 새로 고안된 수학적 언어가 자연 세계의 무수한 경이를 묘사할 수 있다면 이 세련된 회화적 언어가 바벨탑 사건 이래 세계를 괴롭혀온 불협화음을 대체할 수 있을 것이었다. -p161

 

14. 독보적인 선두

 그러니 이집트인들이 왕을 '큰 집', 즉 '페르아아'(바로 '파라오'다)로 불렀다는 것도 알 수 없었다. 우리가 "백악관이 발표했다"라는 말로 "미국 대통령이 발표했다"라는 의미를 전하는 것과 비슷한 방식이다. -p165

 

20. 필사의 어려움

 예컨대 기독교 성경의 가장 유명한 구절은 필사의 잘못으로 탄생했을 것이다. 예수는 사도들에게 이렇게 말했다.

「내가 너희들에게 말하건대, 부자가 하느님 나라에 들어가는 것보다

낙타가 바늘귀를 빠져나가는 것이 더 쉬울 것이다.」

 

 기독교 초기 이래 학자들은 이 이상한 이미지에 고개를 갸우뚱했다. 낙타라니? 서기 5세기에 알렉산드리아의 키릴로스가 처음 주장하고 현대의 여러 작가들이 지지한 한 이론은 현실적인 설명을 제시한다. 키릴로스는 고대 그리스어에서 '낙타'와 '밧줄'에 해당하는 말이 거의 흡사했다고 지적했다. '낙타'는 kamilos, '밧줄'은 kamelos였다. 아마도 전승 과정에서 어느 땐가 피곤한 필사공이 '밧줄'을 '낙타'로 잘못 썼고 그 이후 여러 세대의 성경학자들을 거치면서 잘못이 유지됐을 거라는 얘기다. ···

 옛날에 필사하는 것은 어렵고, 고통스러울 정도로 속도가 느렸다. -p233~234

 

21. 글쓰기의 탄생

 핵폐기물은 1만 년 뒤에도 여전히 치명적일 것이다. 우리 후손들은 그것이 묻혀 있는 장소를 가까이하지 않아야 함을 알 필요가 있다. 오랜 시간 뒤에 지금 쓰는 언어가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변할 것이 거의 분명하지만 말이다. 국제원자력기구의 이 경고 그림이 서기 12007년에 "위험! 치명적인 것이 있음! 접근 금지!" 같은 메시지를 전달할 수 있을까? -p242

 

 그런데 쓰기의 한 가지 중요한 새 역할이 이야기 전달보다 훨씬 먼저 나타났고, 그것은 결코 사라지지 않았다. 바로 선전으로서의 쓰기였다. 지배자들은 이 새로운 도구를 일찌감치 손에 넣었고, 기회만 있으면 자기네의 힘을 선포하고 자기네의 성스러운 임무를 기렸다. 왕의 자랑은 돌에 새기면 영원히 전해질 터였다. 

 이집트의 역사 내내 파라오들은 과장된 자랑과 말의 허세에 탐닉했다. -p248

 

 고대 이집트에서 점잖음은 미덕이 아니었고, 파라오만 큰소리치란 법은 없었다. 서기전 2100년 무렵에 한 지역 통치자는 자신의 선행을 자기 무덤 벽에 기록했다.

「나는 인류의 시작이자 끝이다. 나와 같은 사람은 이전에 존재하지도 않았고 앞으로도 존재하지 않을 것이다. ··· 나는 조상들의 위업을 능가했고, 미래 세대는 앞으로 수백만 년 동안 나의 위업에 맞먹는 일을 이룰 수 없을 것이다.」

 이 비문의 결론은 이러하다.

 「나는 비견될 자 없는 주인공이다.」 -p249

 

22. 천천히, 그러다 갑자기

 「이집트 고대 신 가운데 하나인 자, 따오기를 자신의 신성한 새로 정한 자, 자신의 이름을 토트라 지은 자.」

 

그리스인들은 토트를 자기네 신들의 무리에 흡수했고(헤르메스라는 이름으로 재탄생했다) 그에게 여러 가지 현란한 재능을 부여했다.  -p278~279

 

 우리가 외국어를 말해보려 할 때 그것은 일종의 사투리가 될 수밖에 없다. 우리가 쓰던 말의 음운 구분이 외국어의 음운이나 성조나 박자와 맞지 않기 때문이다. 어떤 언어의 화자는 다른 언어에서 흔히 나오는 일부 음을 내지 못할 수 있다. ···

 때로 이 어려움은 삶과 죽음을 가르기도 한다. 2차 세계대전 때 네덜란드인들은 네덜란드 안에서 독일 간첩을 찾아낼 때 스헤페닝언scheveningen이라는 도시 이름을 발음해 보라고 요구했다. -p281

 

26. 소리와 의미를 표현하는 방식

 세계 문학의 가장 잘 알려진 구절 가운데 하나는 동음이의어를 바탕으로 만들어졌다. 하와가 아담에게 사과를 권하고 모든 문제가 그로부터 생겨났다는 이야기는 누구나 알고 있다. 그러나 사과는 나중에 이야기에 추가된 것이다. 기독교 성경은 '선과 악을 알게 하는 나무'에서 정확히 어떤 종류의 과일이 열리는지 특정한 적이 없다. <창세기>는 총칭으로써의 과일만을 언급하고 있을 뿐이다.

 사과는 히에로니무스 성인이 기독교 성경의 새로운 라틴어 번역본을 만든 서기 400년 무렵까지는 나오지 않는다. 히에로니무스는 라틴어 단어 '말룸 malum'이 '사과'와 '악'이라는 두 가지 의미를 지닌 데 착안해, 서방 세계 창세 신화 한가운데에 동음이의어를 집어넣는다는 기발한 생각을 한 것이다. -p301

 

 필사공들은 대신에 동음이의어를 이용했다. '천'에 해당하는 단어의 발음은 '연꽃'에 해당하는 단어의 발음과 같았다. 따라서 연꽃을 그리면 '천'이라는 의미였다. 마찬가지로 '만'을 표시하기 위해 발음이 같은 '손가락'을 그렸다. 고대 문서에 소머리 하나 뒤에 손가락 세 개, 연꽃 두 개가 나오는 것이 있다. 응, 소 3만 2천 마리구나. -p303

 

 이것이 바로 카르투슈 안에서 일어난 일들이다. 고대의 필사공들은 개별 성체자의 소리뿐 아니라 단어의 발음을 이용해 이름을 나타낼 수 있었다. 중요한 점은, 카르투슈 바깥에서도 그랬다는 것이다.

 그것이 '미세'에서 얻은 통찰이 중요한 이유다. 샹폴리옹에게 성체자가 어디서 나오든 그것을 읽을 수 있다는 발견은 시청각 장애를 가졌던 헬런 켈러의 손에 물을 틀어주며 그 단어의 철자를 가르쳤던 순간과 같은 것이었다. 헬런 켈러는 깨달음의 한순간에 "언어의 신비가 내게 모습을 드러냈다"라고 나중에 썼다. 샹폴리옹 역시 세계가 이전과 이후로 나뉘는 정확한 순간을 콕 집어낼 수 있었다. -p304

 

 이집트어를 지배하는 규칙을 알아내는 일은 미쳐버릴 정도로 어려웠다. 다른 언어도 마찬가지지만 이집트어가 중앙 설계자의 도움 없이 성장하고 진화한 것이기 때문이다. 그것이 깔끔한 건축 설계도와 다른, 살아 있는 나무가 되는 대로 가지를 치는 패턴의 복잡성을 만들어낸다. -p305

 

27. 3천 년 전의 소리를 듣기 위한 노력

 미지의 언어를 귀만 가지고 해독하는 것이 얼마나 어려웠을지는 우리 자신의 언어도 잘못 듣는 경우가 많다는 사실만 가지고도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 학생들은 미국의 <충성 맹세>를 망가뜨리고, 젊은 교인들은 목소리를 높여 이상한 노래를 부른다.

「I led the pigeons to the flag.(나는 비둘기들을 국기로 인도했습니다.)

Glady, the cross-eyed bear (사팔뜨기 곰 글래디)」

원래는 이렇다.

 「I pledge allegiance to the flag. (나는 국기에 대해 충성을 맹세합니다.)

Gladly the cross I'd bear. (기꺼이 십자가를 지겠습니다.)」

 

어른들도 아이들과 같은 잘못을 저지르기 십상이다. 1990년대에 영화 <알라딘>에 이상한 이야기가 나온다는 말이 너무 많아서 디즈니사가 대응에 나서지 않을 수 없었다. 걱정에 싸인 부모들은 알라딘이 이렇게 속삭인다고 서로 경고했다.

「Good teenagers, take off your clothes. (착한 십대들아, 옷을 벗어라.)」

디즈니사가 밝힌 실제 대사는 이랬다.

「Scat, good tiger, take off and go. (저리 가! 호랑아, 착하지, 여기서 떠나 다른 데로 가.)」 

 

 알게 되겠지만 말을 이해한다는 것은 적당히 빈칸을 채우는 것이다. 우리는 많은 말들을 놓친다. 아무리 청각이 좋아도 마찬가지다. 그러나 그것을 거의 의식하지 못하는 것은 우리가 끊임없이, 그리고 자동적으로 가능성을 추측하기 때문이다. 맥락이 핵심이다. 그리고 우리는 어떤 범위의 가능한 의미 가운데서 선택을 한다. 그렇게 하고 있음을 인식하지 못한 채로 말이다. -p315~316

 

 많은 언어는 거의 매 문장마다 비슷한 실수를 할 가능성을 내포한다. 아마존 우림의 한 작은 지역에서 사용되는 언어는 '친구'와 '적'을 나타내는 단어가 동일하다. 다만 한 음절의 성조만 다르다. -p318

 

 고대 언어의 소리는 결코 제대로 알 수 없을 것이다. ··· 물론 우리가 결코 제대로 알 수 없는 것은 고대 이집트의 소리만은 아니다. 1850년에서 한참 지난 뒤에도 모든 인간 목소리의 음은 그 사람의 죽음과 함께 영원히 사라졌다. 최초의 녹음은 1877년 토머스 에디슨이 스스로 동요 부르는 것을 녹음한 때인 것으로 오랫동안 생각되어 왔다. ··· 그러나 쇠로 만든 진동판 앞의 속삭임을 처음 포착한 것은 에디슨이 아님이 밝혀졌다. 1860년에 신원을 알 수 없는 여자가 프랑스 민요 <달빛 속에서 Au Clair de la Lune> 한 소절을 불렀고, 그 녹음이 남아 있다. 그것은 불과 10초 분량이지만 지금도 들을 수 있다.

 이를 만든 발명가는 에두아르레옹 스콧 드 마르탱빌이라는 식자공 겸 땜장이였는데, 그는 어떤 여자가 낸 소리를 자신이 포착한 줄 몰랐다. 그의 목표는 소리를 페이지에 새겨진 패턴으로 변환시킬 수 있는 기계를 만드는 것이었다.

 그는 자신이 하려던 일에 성공했고, 그가 보존한 알 수 없는 물건은 잊힌 보관소의 그을린 페이지에 100년 이상 조용히 남아 있었다. 이 기록물은 21세기가 되어서야 재발견됐다. 그 뒤 곧 미국의 과학자 팀이 전사된 고저를 소리로 변환해 공중에 띄우는 방법을 발견했다. 150년 동안 침묵하고 있던 목소리가 이로써 다시 한 번 노래를 부르게 됐다. -p319~320

 

30. 성체자의 독특함

 그들은 쓰기의 이점을 직접 목격했고, 성체자를 바탕으로 한 자모를 만들었다. ···

이것은 엄청난 성과였다. 과거에 고안된 가장 강력한 도구 가운데 하나를 상류층의 손에서 빼앗아다 보통 사람들에게 나누어주는 셈이었다. ···

 천여 년 뒤에 이집트는 다시 한 번 자모 실험을 했다. ··· 이집트의 필사공들은 그리스의 사례에 따라 그들의 성체자를 거의 모두 치워두고 단음에 상응하는 것들만 유지했다. 그러나 이 개혁 역시 오래가지 못했다.

이것은 단순히 고집의 문제만은 아니었다. ··· 자모는 "가독성을 희생시켜 단순성을" 택했다. 새 체계는 배우기는 쉬웠지만 읽기는 어려웠다.

 어떻게 그럴 수가 있을까? 성체자 해독을 어렵게 만든 바로 그 특성(예컨대 여러 부호가 같은 음을 나타낸다거나, 같은 부호가 서로 다른 상황에서 다른 의미를 지니는 것)이 결국 읽기를 더 쉽게 만들었기 때문이다. -p346~348

 

 아름다움에 대한 고려는 이집트의 쓰기 체계와 관련되는 더 광범위한 문제에도 핵심적이었다. 예컨대 '대체 성체자가 왜 그렇게 많았을까?' 같은 질문들이다. 여기서도 역시 답은 미학이었다. 성체자는 눈길을 끌기 위해 다채로움의 유혹이 필요했다. ···

 성체자 체계의 복잡성이 이집트 사용자들의 마음속에서 문제시되지 않았던 가장 결정적인 이유는 편안함이 결코 요점이 아니었다는 것이다. 읽기와 쓰기는 고대 이집트에서 전문화된 기술이었고, 그 기술을 익힌 사람들은 사다리를 내려주어 다른 사람들이 같은 높이로 올라올 수 있게 할 필요를 느끼지 못했다. 성체자의 어려움은 특성일 뿐 오류가 아니었다.

 고대 세계에서 문해력은 희귀하고 소중한 기술이었다. 중세 시기까지 경험 많은 학자들 외에는 간단한 글조차도 이해하기 어려워했고, 글자들 범벅 속에서 알아볼 수 있는 것을 찾기 위해 소리를 내어 웅얼거렸다. -p353

 

 자모순 같은 매우 간단한 구상조차도 자리를 잡는 데 엄청난 시간이 걸렸다. ···

 18세기 후반까지 하버드대학과 예일대학은 학생들의 이름을 자모순이 아니라 그들의 사회적 지위와 재산에 따라 나열했다. 이런 사회 분위기에서 모든 단어를 대등한 지위에 놓는다는 자모순의 커다란 미덕은 심각한 결점으로 생각됐다. commoner(평민)를 king(왕) 앞에 둔다니!

 이 모든 변화에 왜 시간이 그렇게 오래 걸렸을까? 한 가지 이유는, 새로운 도전은 대개 그것이 아주 당연하다고 생각되기까지는 인식조차 되지 못할 만큼 어렵게 여겨지기 때문이다. -p354

 

31. 두 경쟁자의 업적을 어떻게 봐야 할까

 과학의 한 징표는 위대한 혁신가가 자신의 성과를 전유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뉴턴의 법칙은 공유 재산이다. 그 지식들은 뉴턴의 통제를 받지 않는다. 달이 해를 언제 가릴지, 포탄을 성벽 어디에 맞힐지 누구나 뉴턴이 찾아낸 지식을 바탕으로 계산할 수 있다. ···

 노하우가 공유되어야 한다는 생각은 새로운 것이다. -p365

 

32.  이집트의 문을 열다

 1829년 6월, 샹폴리옹은 고고학의 역사에서 가장 이례적인 축에 속하는 발견을 했다. ···

 「더욱 놀라웠던 것은 비문을 읽으면서 그들이 통상적인 파라오의 옷을 입은 이 수염 난 왕을 언급할 때마다

명사와 동사가 여성형이었다는 것이다. 여왕을 이야기하고 있는 것처럼 말이다.」 -p370

 

 이 수수께끼는 샹폴리옹이 죽고 100년이 지나서야 풀리게 된다. 그는 이집트 역사에서 완전히 가려져 있던 것의 첫 증거를 발굴했다. 어느 시점에 이집트는 20년 가까이 여성 파라오가 지배했다. 그저 파라오의 아내나 어머니로서가 아니라 독자적인 통치를 한 여성 파라오였다. 후대의 지배자들은 그 존재를 역사에서 지우고자 했다. 이 사람은 핫셉수트다. 이집트학자 제임스 브레스티드에 따르면 "우리가 알고 있는 역사 속에서 등장한 첫 위대한 여성"이다. ···

그러나 샹폴리옹은 핫셉수트 신전에서 '왕'에 해당하는 단어 뒤에 여성 표지인 빵 조각 성체자(T 음을 나타낸다)가 있는 것을 보았다. 그 작은 변화로 '왕'과는 다른 '여왕'을 표현했고, 그것이 샹폴리옹을 놀라게 했다. -p371~372

 

 이 숨이 멎을 듯한 조각상은 3500여 년 전에, 현재의 위치에서 거의 1만 킬로미터 떨어진 곳에서 만들어졌다. 그 사정의 상당 부분은 알 수 없는 영역에 남아 있다. 그러나 그나마 우리가 알고 있는 것들은 작은 글자 하나('T'에 해당하는)가 있을 자리가 아닌 곳에 있음을 샹폴리옹이 우연히 보게 된 덕분이다. -p378

 

에필로그

 이집트는 이른 시기부터 '불사不死'에 집착했다. 끊임없이 반복되는 메시지는 죽음이 극복될 수 있고 생명이 다시 솟아날 수 있다는 것이었다. 파라오들을 보호하기 위해 돌덩이로 높게 쌓은 산들, 복잡한 미라 만들기 의례, 백과사전과도 같은 마법 책, 모든 것이 죽음은 끝이 아니라는 믿음을 바탕으로 하고 있다.

···

 샹폴리옹 같은 불신자에게 그런 의례는 오래된 미신 이외에 아무것도 아니었다. 그는 이집트에 열렬하게 몰두했지만 혁명의 나라 프랑스의 진정한 아들로 남았다. 사후의 삶이라는 생각은 아무런 설득력이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샹폴리옹은 이집트인의 믿음을 영광스럽게 했다. 그의 작업은 깊숙하면서도 얽히고설킨 진실을 입증해 냈다. 불멸해야만 모든 걸 이룰 수 있는 건 아니다. 너무도 짧은 생애 동안에 장프랑수아 샹폴리옹은 죽은 언어와 파묻힌 문화를 되살려냈다. -p385~386

 

옮긴이의 말

 결정자 이야기에서 '가르치다'와 '때리다'가 같은 결정자를 썼다는 재미있는 이야기도 나오는데, 이는 한자에서 '가르치다'인 敎(교)가 '때리다'인 攴=攵(복)을 의미 부호로 썼던 것과 일치한다. 이것은 문자의 문제 이전에 문화의 문제겠지만 말이다.

 이 책은 로제타석 해독의 두 주인공인 토머스 영과 장프랑수아 샹폴리옹의 지적인 경쟁이 뼈대를 이루지만, 지은이도 앞부분에서 이야기하듯이 이집트의 문화나 로제타석 발견 전후의 정치적 맥락과 학계 상황 등 수많은 이야기를 살로 붙여 흥미를 끌 요소가 많다. (이재황) -p393

우리말에 완벽한 글을 창제한 세종대왕의 천재성과 애민사상에 새삼 감사드리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