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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문화

(책) 죽은 등산가의 호텔

by 두우주 2024. 2.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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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   제 : Отель ≪У Погибшего Альпиниста≫ (The Dead Mountaineer's Inn)

지은이 : 아르카디 나타노비치 스트루가츠키, 보리스 나타노비치 스트루가츠키

옮긴이 : 이경아

출판사 : 현대문학

주    제 : 러시아문학, SF 과학소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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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알라딘

 

 

아르카디 나타노비치 스트루가츠키ㆍ보리스 나타노비치 스트루가츠키 (Arkady & Boris Strugatsky)

"사고하는 것은 여흥이 아니라 의무다!"

 20세기 러시아 SF의 개척과 발전에 지대한 영향을 끼친 형제 작가로, 러시아 문학의 비판적인 경향과 풍자문학의 전통을 SF에 결합시킨 독특한 반反소비에트적 디스토피아 작품을 남겼다. 그들의 작품 세계는 '정신의 모험'을 다루면서 실존의 본질에 천착한 실험적 공간이었다.

 

 초기 작품에서는 기술과 문명의 진보가 초래한 도덕성 및 인간성 상실, 역사 앞에서의 개인의 책임이라는 철학적 문제를 탐구했고 후기로 갈수록 소비에트 관료 제도 고발, 전체주의 사회에 대한 비판과 풍자에 더불어 통제와 감시로 고통받는 인간의 위기의식을 다양하게 제기했다.

 

 스트루가츠키 형제의 작품은 발표될 때마다 큰 반향을 일으켰다. 『노변의 피크닉』(1972)은 안드레이 타르콥스키에 의해 영화 <잠입자>(1979)로 만들어졌으며, 알렉산드르 소쿠로프는 『세상이 끝날 때까지 아직 10억 년』(1976)을 토대로 영화 <일식의 날>(1988)을 촬영했다. 그 외에도 여러 작품이 영화화되었고 형제의 작품은 33개국 42개 언어로 번역되어 있다.

 

이경아 (옮긴이)

 한국외국어대학교 러시아어과와 동 대학 통역번역대학원 한노과를 졸업하고 현재 전문 번역가로 활동 중이다. 조시 맬러먼의 《버드 박스》 《맬로리》, 메리 셸리의 《프랑켄슈타인》, 리사 주얼의 《다크 플레이스의 비밀》, 셰리 토머스의 《주홍색 여인에 관한 연구》 《벨그라비아의 음모》, 아서 코넌 도일의 《주홍색 연구》 《셜록 홈스의 회상록》 《셜록 홈스의 귀환》, 스트루가츠키 형제의 《죽은 등산가의 호텔》, 그 밖에 《오시리스의 눈》 《영국식 살인》 《붉은 머리 가문의 비극》 등 다수의 작품을 우리말로 옮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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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알라딘

 

 

목차

제1장 / 제2장 / 제3장 / 제4장 / 제5장 / 제6장 / 제7장 / 제8장 /

제9장 / 제10장 / 제11장 / 제12장 / 제13장 / 제14장 / 제15장

에필로그 / 보리스 스트루가츠키 후기 / 제프 밴더미어 해제 / 옮긴이의 말 / 스트루가츠키 형제 작품 목록

 

 

 "미지의 것은 상상력에 불을 지피고, 혈관을 따라 피가 더 빠르게 돌게 하고, 놀라운 환상을 낳고, 약속하고, 유혹합니다. 미지의 것은 한밤의 칠흑 같은 심연 속에서 반짝이는 작은 불꽃과 비슷하죠. 하지만 일단 아는 것이 되어 버리면 밋밋하고 단조로워지고 무미건조한 일상이라는 배경과 구별이 안 될 정도로 그 안으로 스며들어 버리죠." _p19

 

 

 자정이 다 되어 갈 무렵 우리는 뜨거운 포트와인 한 병을 끝장내고 어떻게 하면 나머지 손님들에게 그들이 산 채로 이곳에 갇혔다는 사실을 좀 더 효과적으로 알릴 수 있을지 의견을 나누었고 세계가 겪고 있는 몇 가지 문제들도 해결했다. 이를테면, 인류가 기아를 겪게 될 운명인가. (그렇다, 그럴 운명이다. 하지만 그때가 되면 우리는 이미 없을 것이다.) 자연계에는 인간의 의식으로 인지할 수 없는 존재가 있을까. (그렇다, 있다. 하지만 우리는 이 존재를 결코 인지하지 못한다.) _p131

 

 

 

 "페테르, 당신은 길을 잃고 헤매고 있어요. 당신은 가장 뻔한 길을 따라가고 있어요. 바로 그래서 정작 가야 할 길에서 아주 많이 벗어난 거죠. 당신은 알리바이를 조사하고, 단서를 모으고, 동기를 찾고 있죠. 이런 사건에서는 당신이 알고 있는 수사 기법 같은 평범한 개념은 의미가 없어요. 빛의 속도를 뛰어넘는 속도에서는 시간이 아무 의미가 없는 것과 같은 이치죠 ···" _p232

 

 "당신은 미숙한 경찰이 선량한 시민에게 얼마나 지독하고 불쾌한 경험을 당하게 할 수 있는지 상상도 못 할 거예요." _p235

 

 나는 그를 지그시 바라보았다. 영 마음이 편치 않았다. 나는 몹시 마음이 불편했다. 왜냐하면 그에게 공감하고 있기 때문이다. 나는 범죄자임에 틀림이 없는 자와 독대하며 그의 사연을 듣고 공감하는 중이었다. 이것이야말로 나를 현혹하는 상황이었다. 이 현혹에서 벗어나기 위해 나는 건조하게 말했다. _p342~343

 

 역시 그는 모든 질문에 대답이 준비되어 있다. 꼬투리를 잡을 게 없다. 그와 대화를 한 이후로 단 한 번도 꼬투리를 잡을 수 없었다. 모든 이야기가 한 치의 오차도 없이 논리적이다. 나는 그의 이야기가 보호복이며 접촉, 의사 근육 같은 주제로 흐르지만 않았다면 그의 주장에 완전히 납득했으리라는 점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어느새 마음이 움직여 그의 호소에 응하고 싶어졌다. 나는 선입견에서 벗어나기 시작했다.

그 말대로다. 내가 법적으로 책임을 물어야 할 사람은 모제스뿐이었다. 루아르비크는 공식적으로 결백했다. 물론 그도 공범일 수 있지만 ······ 진짜 범죄자는 결코 스스로 인질이 되겠다고 나서지 않는다. 모제스는 인질이 되겠다고 했다. ··· 그래, 모제스가 한 이야기는 전부 말이 되는 것 같다. 하지만 이것이 완전히 다른 상황을 그럴듯하게 재해석한 거라면 어쩌지? 단지 내가 한 치의 오류도 없는 이 해석을 깨트릴 만한 정답을 찾지 못한 것뿐이라면? ···

좀비니 흡혈귀니 의사 관절 같은 소리를 제외하면 그의 이야기는 평범하기 짝이 없는 협박에 관한 진부한 이야기였다. ··· 일단 사는 곳을 옮겨 보았다. 아무 도움도 되지 않았다. 추적자들을 겁주어 쫓아 보려고도 했다. 그래도 소용이 없었다. 이런 일이 언제나 그렇듯이 마침내 그에게 누군가가 접근해 와 구미가 당기는 계약을 제안했다 ··· 아마 그를 귀찮게 하는 것은 그 일이 처음이자 마지막일 것이라고 장담을 했을 것이다. 이런 일이 으레 그렇듯이 그는 당연히 거절했다. 이런 일이 으레 그렇듯이 그들은 계속 설득했다. 이런 일이 으레 그렇듯이 그는 결국 승낙했다. _p348~350

 

 나는 우스꽝스러웠다. 나는 불쌍했다. 나는 나 자신이 미웠다. 즈구트와 그의 다정한 조언들이 미웠다. 이곳에 모여드는 범죄단이 미웠다. 믿느냐 마느냐 ······ 바로 그것이 문제였다. 제기랄, 나는 어느새 믿고 있었다. 나는 경찰 일을 한두 해 한 사람이 아니다. 사람들이 사실대로 털어놓으면 나는 알 수 있다. 그래, 사람! 내가 이 이야기를 믿는다면 그들은 내게 사람이 아니게 된다! 그렇다 나는 덮어놓고 믿을 권리가 없다. 믿는 것은 자살행위나 다름이 없다! 이것은 내가 아무런 권한도 없고, 절대로, 절대로, 절대로 원하지 않는 책임을 짊어지는 것을 의미한다 ······ 그 책임이 나를 빈대 누르듯 깔아뭉갤 것이다! _p354

 

이제 될 대로 되라는 심정이었다. 그리고 마음 가장 깊은 구석에서는 안도감이 희미하게 피어올랐다. 이 상황이 마침내 내 손에서 떠나갔구나. 책임은 다른 사람들에게 넘어갔다는 안도감이었다. _p359

 

에필로그

 지겨운 당직을 설 때나 혼자 산책을 할 때, 그저 쉽게 잠 못 이루는 밤이면 나는 수도 없이 그때 있었던 일을 빠짐없이 반추하며 딱 한 가지 질문을 내게 던졌다. 내가 한 행동은 과연 옳았을까? 공식적으로 나는 옳았다. 상부는 내 행동이 상황에 따른 결정이라 인정했다. 다만 경찰이 아닌 다른 부처의 책임자가 내가 그 가방을 빨리 내주지 않는 바람에 그곳에 있는 사람들을 불필요한 위험에 빠뜨렸다며 나를 가볍게 질책했다. ···

 나는 늘 양심이 개운하지 않은데, 그것이 바로 문제다. 그전에는 이런 적이 없었다. 올바르게 행동했고, 신과 법, 사람들 앞에 한 점 거짓도 없었지만, 양심은 늘 개운하지 않다. 가끔 이 양심의 문제가 견딜 수 없을 정도로 심해질 때면, 그들 중 누구라도 찾아내어 나를 용서해 달라고 간청하고 싶다. 그들 중 누군가가 내가 알아보지 못하는 인물로 위장한 채 사람들 사이를 돌아다닐지도 모른다는 생각, 바로 이 생각에 나는 평온을 누릴 수가 없다. _p368~371

 

후기 (보리스 스트루가츠키)

 우리는 그와 비슷한 작품이 필요했다. 역설적인 분위기가 느껴지면서 추리소설의 모든 법칙에 따라 추리 독자의 흥미가 뚝 떨어지는 결말 부분에서 예기치 않은 비극적인 반전이 가미된 소설말이다. _p374

 

 우리의 구상대로라면 독자는 소설 속 사건을 처음부터 평범한 '밀실 살인'으로 인식해야 한다. 그러다가 전통적인 추리소설에서 사건의 설명이 이루어지면서 자연스럽게 흥미의 저하를 유발하는 끝에 가서야 전혀 예상하지 못한 반전을 목격해야만 했다. 이 반전이란, 하나의 이야기 줄기가 뚝 끊어지고 완전히 새로운 줄기가 시작되는 것이다. 이 새 줄기는 그 자체로 흥미로우며 완전히 다른 주제와 다른 문제를 보여 주어야 한다. _p380

 

해제 (제프 밴더미어)

 내가 흠모하는 작품 - 러시아 문학이건 아니건 - 에서 거듭 이런 부조리가 등장하는 이유는 그런 부조리함이 우리의 삶에서 벌어지는 비논리적인 순간을 받아들이기 때문이다. 우리가 계속 억누르려고 하는 내적인 모순을 인정하기 때문이다. 내적 모순이 자꾸 쌓이다 보면 언젠가 희극이나 비극이 발생한다. 더불어 예측할 수 없는 상황도 벌어진다. 소설에서 내적 모순이 비현실적이거나 환상적인 것으로 흘러들면 밋밋한 일상의 감각 속에서 우리가 현실이라고 아는 것이 정신적으로 확장된다. 우리가 그것을 인정하건 아니건 상관없이 말이다.

 글렙스키가 자신이 '공무 수행'을 해야 한다고 화를 낸다면, 그것은 그의 평범한 업무 시간에 만나는 비논리성과 부조리가 휴가를 가면 중지되리라고 기대한 탓도 어는 정도 있을 것이다. 세상은 그렇게 돌아가지 않는다 - 현실은 구멍이 숭숭 뚫려 있으며 기이하다. 그래서 우리는 그곳에서 좀처럼 도망칠 수 없다.

『죽은 등산가의 호텔』에서는 실마리가 모이지 않고, 사람들이 비이성적으로 행동하고, 말도 안 되는 도플갱어가 늘어나는데도 형사는 자신이 안다고 생각하는 것보다 아는 게 별로 없을 때, 바로 그때 가장 빼어난 순간이 등장한다. 설명을 글로 쓰기는 어렵다. 하지만 이 세상에서 진실로 받아들여질 납득할 만한 미스터리를 만들어 내기란 더욱 어렵다. _p387~388

 

 밀실 미스터리가 아니었던 밀실 미스터리. 뭔가 다른 것이 되어 버리는 후더닛. 나중에 그들이 어떤 의구심을 품었든 두 사람은 『죽은 등산가의 호텔』을 쓰는 작업이 '몹시 즐겁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리고 그 즐거움은 오늘의 독자에게로 전해진다.

···

 지금 당신은 죽은 등산가의 호텔에 막 발을 들여놓으려 한다.

 당신은 당신이 말한 그대로의 사람인가?

 당신은 당신이 말한 그대로의 무엇인가? _p394~396

 

옮긴이의 말 (이경아)

 『죽은 등산가의 호텔』은 이런 요소들을 훌륭하게 갖추고 있다. 어느 모로 보나 추리소설이다. 그것도 트릭이 핵심인 고전 추리소설이다. 고전 추리소설에서 동기는 어차피 거기서 거기다. 인간의 탐욕 아니면 사람에게 해를 가하고 쾌락을 느끼는 마음의 병. 그리고 사건에 따라 범행 동기는 수도 없이 가지를 뻗어 가며 구체적인 형태를 갖추게 된다. 이 장르는 트릭이 중요하다. 트릭은 풀어야 제맛이다. 범인은 어떻게든 잡히지 않기 위해 알리바이 공작을 하고, 온갖 기술로 밀실을 만들고, 자신의 흔적을 지우려 한다. 의도적으로 만들어진 트릭도 있고 어쩌다 보니 트릭처럼 보이게 된 상황도 있다. 어쨌든 엉킨 실타래를 탐정 역할을 하는 인물은 풀어야 하고 사건 관계자(와 독자)의 속이 후련하도록 그 결과를 보여 줘야 한다. 고전 추리소설을 좋아하는 나는 이 부분에서 카타르시스를 느낀다. 이 부분에서 흥미가 떨어지다니 당치도 않다. 고전 추리소설의 팬이라면 탐정이 구구절절 틀려주는 사건의 전말에 전율하고 트릭을 꿰뚫어 보지 못한 스스로의 아둔함에 웃음을 터트린다. 적어도 나는 그런 재미를 위해 추리소설을 읽는다.··· 책을 덮은 후로도 한동안 여운은 사라지지 않았다. _p401~402

 

 

미스터리한 인물들과 희한한 사건들로
의외의 재미를 선사하고, 긴 여운을 남기는 1970년에 출간된 SF 소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