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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문화

(책) 위험한 생각들

by 두우주 2024. 2. 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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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알라딘
 

원    제 : What Is Your Dangerous Idea? (2007년)

엮은이 : 존 브록만

옮긴이 : 이영기

출판사 : 갤리온

주    제 : 사회학 일반, 인문학

 

존 브록만 (John Brockman) (엮은이)

 '세계 지식의 지휘자'로 불리는 당대 최고의 문화 기획자로, 과학은 물론, 소프트웨어, 인터넷, 아방가르드 예술계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분야에서 기획자로서 경력을 쌓아왔다. 리처드 도킨스, 스티븐 핑커, 제레드 다이아몬드 등 현대 과학의 선구자들을 상아탑에서 끌어내 대중과 소통하는 베스트셀러 작가로 탄생시킨 편집자이자, 과학자들이 자신의 견해와 연구 성과를 대중과 공유하고 첨단과학의 쟁점을 토론하는 온라인 지식살롱 '엣지'(edge.org)의 설립자로서, 과학의 대중화와 학문의 통섭을 주도하고 있다. 그가 엣지를 통해 기획 편집한 책들로 《위험한 생각들》 《낙관적 생각들》 《마음의 과학》 《컬쳐 쇼크》 《생각의 해부》 《우주의 통찰》 《궁극의 생명》 《이것이 당신을 더 스마트하게 할 것이다》 《이것이 모든 것을 설명할 것이다》 등이 있다. 

 

이영기 (옮긴이)

 서울대 물리학과를 졸업하고 중앙일보 기자로 일했으며 현재 전문 번역가로 활동하고 있다. 저서로 <상식 밖의 과학사>가 있으며, <시간은 왜 흘러가는가> <과학의 탄생> <아인슈타인:철학적 견해와 상대성 이론> <위험한 생각들> <구글 이후의 세계> <물리캠프> <기하학 캠프> 등을 번역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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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알라딘

 
 

 어떤 생각이 위험한 것으로 변하는 이유는 대체로 밥그릇 싸움 때문이다. 사람들에게는 야비한 버릇이 있다. 끼리끼리 무리 지어서 어떤 믿음을 공유하는 것을 그 무리에 충성하는 표시로 삼고, 경쟁 집단의 견해는 무조건 옳지 않고 도덕적으로 타락했다고 규정하려 한다. 서로 다른 집단 사이에 논쟁이라도 붙게 되면 상황은 더욱 나빠진다. 상대편이 자신들의 통렬한 논박에 굴복하지 않으면 자신들의 논리가 허약하다는 것을 드러내는 것이라고 믿는다. 그들은 상대가 항복할 때까지 몰아붙인다. 바로 이런 부차적인 이유로, 진실을 규명하는데 가장 중요한 두 집단인 학계와 정부가 도덕으로 덧칠한 이데올로기에 눈이 머는 것을 심심찮게 목격하게 된다.

 

 우리는 어떤 생각들을 위험하다고 간주해야 하는가? 일단 사람들을 현혹시키는 프로파간다나, 악의적이고 선동적인 음모, 무자비한 파괴를 목적으로 한 테크놀로지는 배제해야 한다.

 

 한편 위험한 생각은 개인적으로만 간직해야 한다는 견해는 옳은가? 틀린 주장이다. 어떠한 생각을 애초부터 포기시켜야 한다는 생각은 자기 모순적이고, 지극히 오만한 태도다.

 

 또한 공적인 영역에서는, 설령 어떤 생각이 받아들이기에 불쾌하다고 해도, 그것을 무시하고 기만하기보다는 진실을 규명하려고 노력하는 것이 올바른 태도이다.

 

 하나의 생각은 다른 여러 생각들과 잇닿아 있기 때문에, 진실이 아닐 수도 있는 어떤 것을 믿거나 어떤 주제에 대해 무지(무시)의 벽을 높이 쌓는 것은 지적인 삶을 좀먹고 광범위하게 오류를 확산시키는 결과를 낳는다.

 

 "햇빛은 최고의 살균제이다." 사상과 표현의 자유에 관한, 미국 연방최고재판소 판사였던 루이스 브랜다이스 Lousis Brandeis의 유명한 격언이다. 어떤 생각을 공개적으로 따져보는 것이 그 생각의 잘잘못을 증명하는 가장 좋은 방법이라는 뜻이다. 그래야만 다른 사람에게도 그것이 잘못됐다는 점을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다.

 

 이처럼 생각(사상)이 드러나는 것을 두려워하기보다는 공개적으로 표현하고 토론하는 것이 훨씬 좋은 일이다. 지구가 태양계의 중심이 아니라는 사실이 드러났을 때도 도덕적 질서는 무너지지 않았다. 그리고 앞으로 과학이 세계에 대한 기존 상식과 다른 사실을 내놓을지라도 우리의 도덕적 질서는 그 진실에 맞춰 살아남을 것이다.

 

 이 책에는 우리의 사고를 지각하는, 놀라울 정도로 다양한 글들이 실려 있다. 어떤 글은 사색적이며, 어떤 글은 아직 인정되지 않은 위험을 다루고 있다. 인간은 실제로나 비유적으로나 우주의 중심에 있지 않다는, 코페르니쿠스의 독창적이고 위험한 생각과 비슷한 글도 여럿 있다. (p25~36)

 

 우리의 뇌가 어떻게 작동하는지를 더 많이 알아가면서, 자유의지에 관한 우리의 개념도 조만간 무너지게 될 것이다. 우리는 낡은 개념과 새로운 이해가 충돌하는 것을 지켜보면서, 그 시점에 무엇을 해야 할 것인지 결정해야 한다. 그때가 되면, 자유의지에 관한 우리의 오래된 개념이 더 이상 작동하지 않는 세계에서는 법적, 정치적, 경제적 시스템이 어떤 모습이어야 하는지를 고민해야 할 것이다. (p60)

 

 그러나 모든 인간들이 똑같은 수준의 자유의지를 행사하는 것은 아니다. 극단적인 경우, 자유의지를 전혀 행사하지 못하는 경우도 있다. 유전자적으로 결함이 있어서 그럴 수도 있지만, 문화 자체가 정신적인 자유(자유의지)를 제약하고, 그 제약을 부추기기도 한다.

 

 사회를 자기들 마음대로 개조하고자 하는 이들 - 독재자와 권위주의 정권들 - 은 사람들의 뇌를 자기들 입맛에 맞게 바꾸려고 시도할 것이 틀림없다. 우리가 자유의지를 고수하는 것은 그것을 교묘한 방식으로 무력화하려는 권력자들에게는 큰 위협이 된다. 자유의지를 빼앗긴다면, 인간은 미래에 가장 질 높은 슈퍼 로봇으로 전락할 수밖에 없다. 최악의 경우, 인간이 자연의 역사를 통해 이룩한 특별한 능력, 즉 유전자와 문화의 상호협력이 소수 엘리트만의 자유를 위해 봉사하게 될 수도 있다. (p81~82)

 

 태양계에 인류만 홀로 존재한다는 사실은 그다지 큰 충격은 아닐 것이다. 하지만 태양계보다 훨씬 더 넓은 은하계와, 심지어 우주 전체를 통해 인간만이 홀로 존재한다는 것을 알게 된다면, 아마도 우리는 절망감을 느낄 것이고, 마음의 위안을 찾으려고 종교로 후퇴하지는 않을까. (p128)

 

 우리 자신이 신이나 설계자 같은 외부의 힘에 기대지 않고 자신을 되돌아보고, 우리가 자신의 힘으로 의식할 수 있는 존재하는 점을 깨닫는 것, 우주 속에서 우리가 처한 상황의 고유함과 특별함이야말로 우리로 하여금 우리 자신이 가진 것들을 매우 감사하게 여기게 한다고 믿고 있다.

삶은 우리에게 단지 중요한 것이 아니라, 문자 그대로 우리가 가진 모든 것이다. 그래서 우리의 삶은 존재하는 모든 것 가운데 가장 가치 있는 것이다. 이 사실을 받아들인다면 우리는 삶에 의미를 부여하게 될 뿐 아니라 그 결과 강한 도덕률도 갖추게 될 것이다. 삶이란 존중해야 하고 경건하게 숭배해야 할 어떤 것이 된다. (p134)

 

 최근 내 머릿속에 떠오른 가장 위험한 생각은, 우리가 플루토늄을 이해하고 있다고 믿는 것이다.

플루토늄은 주기율표에서 가장 복잡한 원소이다. 플루토늄은 실내 온도와 녹는점 사이에서 무려 서로 다른 6개의 결정 모양을 가지고 있다. 플루토늄은 수증기로 둘러싸인 환경에서도 자연발생적으로 불이 붙는다. 그리고 사람이 아주 적은 양을 들이마시기라도 한다면, 폐암으로 사망할 수 있다.

플루토늄은 핵무기를 폭발시킬 때 가장 필요하고 중요한 원소이다. 핵무기에 내장된 단지 안에서 플루토늄은 갈륨과 결합해 합금이 된다. 그러나 아무도 어떤 과정을 통해 갈륨과 결합해 합금이 되는지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 게다가 이 합금이 얼마나 안정적인지에 대해서는 그 누구도 확신을 못한다.

플루토늄이 들어 있는 수없이 많은 핵무기가 지구 곳곳에 분포한 지도 수십 년이 지났다. 핵무기 속의, 플루토늄이 들어 있는 '단지'가 수십 년간 안전한 상태를 유지해 왔고, 따라서 앞으로도 무한히 안전하게 저장될 것이라고 믿는 것, 그것이야말로 위험한 생각이다. (p140~141)

 

 우리는 사람들이 침묵을 깨고, 잡담을 하고, 어떤 의견에 동조했다는 이유만으로 참수당하고, 투옥되고, 강등되고 비난받는 세상에 살고 있다. 그런 지껄임이나 수다스러움이 우리를 슬프게 하고, 어리석음이나 소외감을 느끼게 할 수 있다. 불쾌하지만 어쩔 수 없다.

그것은 다양한 생각들이 거래되는 시장으로 입장하는 데 지불해야 하는 비용이다. 증오에 차 있고, 모욕적이고, 편견에 사로잡히고, 상스럽고, 무례하고, 무식한 의견들이야말로 자유로운 사회에서 흘러나오는 음악과 같은 것이다. 그리고 바보들의 끊임없는 주절거림은 우리가 서로 하나라는 걸 알게 해주기도 한다.

공적인 대화에서 사용하는 모든 말들이 공정하고, 선하고, 옳기만 하다면, 그때야말로 그 사회로부터 도망쳐 나와야 할 때이다. (p144~145)

 

 우리가 과학으로 어떤 일을 할 수 있는지를 생각해 보면 과학이 전혀 쓸모없는 것은 아니다. 어쨌든 현재의 과학은 무언가를 해내기 때문이다. 하지만 과학은 언젠가 한계에 부딪힐 것이다. 그렇다고 나쁘다고만은 볼 수 없다. 모든 것을 다 알지 못하면 어떤가. 그것 때문에 과학이 더 약해지지는 않는다. 다만 더 인간적이 될 뿐이다. (p254~255)

 

 우리가 인간을 더욱 정답고, 덜 두려워하게 하고, 우리가 우주에 출현한 사실에 경탄할 수 있는 확실한 방법을 찾아낼 때, 불화를 일으키는 종교적 신화는 필요 없을 것이다. 그러면 우리의 아이들을 기독교도, 유대인, 이슬람교도 또는 힌두교도로 키우는 것이 얼마나 우스꽝스러운지를 알게 될 것이다. 그때야 비로소 우리 앞에 놓인, 우리 세계에서 가장 깊고 가장 위험한 균열을 메울 가능성을 찾게 될 것이다. (p280)

 

 불평등이 인간 질병의 가장 중요한 원인이라는 것을 보여주는 수많은 증거들이 있다. (빈부격차가 적은) 가난한 나라의 부유한 사람들은, (빈부격차가 심한) 부유한 나라의 가난한 사람들에 비해 절대적인 재산의 양은 적을지 모른다. 그러나 건강이라는 측면에서는 부유한 나라의 가난한 사람들보다 건강하다. 빈부격차가 심한 나라에서는 상류층 사람들도 많은 질병에 시달리며, 더 높은 사망률을 보인다. 이 연구의 선구자는 영국의 유행병학자 마이클 마모트 Michael Marmot 와 리처드 윌킨슨 Richard Wilkinson이다.

빈곤은 질병의 확산과 생태계의 붕괴 및 사회 폭력과 범죄의 만연을 의미한다. 이것은 부유한 사람들에게도 나쁘다. 불평등은 모든 사람에게 스트레스로 작용한다. (p353)

 

 정부는 아주 위험한 장난감이다. 그것은 전쟁을 벌이고, 이데올로기를 강요하고, 지배자들을 부유하게 하는 데 사용된다. 물론 오늘날 우리의 지도자들이 자기 배를 불리지 않는다는 것은 맞는 말이다(적어도 태양왕의 수준으로는 착복하지 않는다). 하지만 그들은 자신들의 의뢰인들을 부유하게 만든다. 즉 그들은 파킨슨의 법칙에 따라 그 수가 계속 늘어나기만 하는 거대하고 탐욕스러운 관료들을 거느리는 것이다. 그리고 이 관료들이란 무역업자와 발명가처럼 부의 진정한 창조자들에게 기생하면서 살아가는 집단이다. (p384)

 

 우리가 더 나은 정치 시스템을 만들어낼 수 있을까? 아마도 그럴지 모른다. 그러나 "민주주의보다 더 나은 정치시스템이 있을 수 있다"고 자유롭게 말할 수 없는 한, 더 나은 정치시스템이 저절로 생겨나지는 않을 것이다.

정치적으로 올바른 말을 해야 한다는 강박증이 지배하는 작금의 분위기에서는 그런 말을 대놓고 꺼내기가 쉽지 않다. 이런 표현을 제대로 하지 못하게 되면, 결국 전체주의적인 통치형태로 회귀하게 된다. 물론 이것은 과거의 황제나, 식민주의 통치, 봉건 영주의 지배 형태와는 다르겠지만, 그것들보다 더 공정하다고 할 수도 없을 것이다. (p408)

 

 인류는 위험한 생각들 덕분에 앞으로 나아갈 수 있었다. 하지만 익숙하고 친밀한 것에 기대어 살아가도, 변화에 대한 두려움에 젖어 있는 대다수 사람들에게는 이 생각들이 애초에는 충격적으로 다가오게 마련이다.

 

 다행스럽게도 현대 사회에서는 기존 사회에서 받아들일 수 없는 생각을 말했다고 해서 그 사상가의 생명이 위태롭게 되는 경우는 드물다. 갈릴레오는 신체적인 형벌을 받을 수 있다는 두려움 때문에, 자신의 위험한 생각들을 책으로 펴낼 수 없었다. 다윈은 갈릴레오보다는 좀 더 운이 좋은 편이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기 아내와, 아내가 속한 사회를 혼란에 빠뜨릴 수 있다는 두려움으로 인한 자기 검열로 거의 20년간 자신의 위험한 생각을 공표하지 못했다.

 

 이 책에서 거론되지 않은 위험한 생각들의 또 다른 하나는, 인간만이 모든 생명 가운데 유일무이하게 도덕적 감정이 있다는 가정에 대해 아무런 언급이 없다는 점이다. 호모 사피엔스(현생 인류)만이 독특하면서도 독점적으로 도덕적 감정을 가진다는 것을 증명하는 것은 많은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처럼 그렇게 쉬운 일이 아니다. "생명을 옹호한다"라고 할 때는 왜 항상 "인간의 생명을 옹호하는 것"으로만 받아들이는가? 세포 8개로 이루어진 인간 배아세포를 죽이는 것에는 그토록 분노하는 사람들이, 성숙하고 지각 있고, 그리고 도축되는 과정에서 아마도 극심한 두려움에 떨었을 소를 죽여서 만든 스테이크는 기꺼운 마음으로 먹을 수 있는 것일까? 노예를 대하던 우리 조상들의 태도와, 인간이 아닌 다른 생명을 대하는 오늘날 우리의 태도 사이에 도덕적으로 차이가 있다고 할 수 있는가?

 

 진화론적으로 볼 때 우리 인간은 공통의 조상을 통해 다른 종들과 연속적으로 연결돼 있다. 멸종이라는 역사적인 사건만 없었더라면, 우리 인간은 이종교배라는 연쇄사슬을 통해 침팬지와 결합되었을 것이다. ······

살아 있는 종들을 그런 식의 연쇄 사슬로 결합시키는 것은 원칙적으로 가능한 일이라는 것을 우리는 알고 있다. 왜냐하면 이종교배를 통해 태어난 모든 종들이 살아남았기 때문이다. ······ 그리고 연쇄 사슬이 다시 구축된다면 거기에 맞는 올바른 도덕적 태도가 다시 만들어져야만 할 것이다. 그리고 이것은 '의무'의 범주에 넣어야 할 것이다. 이런 프로젝트로 인해 설사 우리의 도덕에 결함과 틈이 생길지라도, 적어도 우리를 괴롭혀온 절대주의자와 본질주의자들의 사고방식으로부터 인류가 완전히 벗어나는 계기가 될 것이다. (p421~4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