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 제 | THE GOSPEL OF EELS : Sons, Fathers, and the World's Most Mysterious Fish
지은이 | 패트릭 스벤손 Patrik Svensson
옮긴이 | 신승미
출판사 | 나무의철학
패트릭 스벤손은 1972년 스웨덴에서 태어났다. 스벤손의 아버지는 우리네 보통의 아버지처럼 말이 없었고, 매일 커피와 샌드위치로 배를 채우고 도로포장 노동자로 평생을 일하다가 암으로 돌아가셨다. 무뚝뚝한 아버지는 자신의 이야기는 가슴에 묻어 두고, 뱀장어 잡이를 함께 하는 아버지의 방식으로 어린 아들을 사랑했고 성장하게 했다.
〈삶, 죽음, 그리고 세상에서 가장 신비로운 물고기〉는 저자가 아버지와 함께 어린 시절 낚시를 하면서 경험한 것과 역사, 생물학, 해양학, 문학, 철학을 통해 얻은 앙귈라 앙귈라에 대한 폭넓은 지식을 바탕으로 써 내려간 에세이 회고록이다.
뱀장어를 관찰하면서 깨달은 인생의 태도와 질문들로 '인생을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를 조금은 다른 관점에서 고민해 보는 시간이 된다.
번역가 신승미는 조선대학교 국어국문학과를 졸업하고 잡지 기자로 일했다. 국문학에 대한 이해와 지식을 바탕으로 소설, 인문, 에세이 등 다양한 분야의 책을 우리말로 옮기며 전문 번역가로 활동하고 있다.
옮긴 책으로 『살인 플롯 짜는 노파』 『파친코』(전 2권) 『삶, 죽음, 그리고 세상에서 가장 신비로운 물고기』 『여보세요, 제가 지금 죽고 싶은데요』 『진홍빛 하늘 아래』 『인형의 집』 『몽키 마인드』 『나는 나부터 사랑하기로 했다』 『살며 사랑하며 글을 쓴다는 것』 『언브로큰』(전 2권) 등이 있으며, 올해 『파친코』로 2023년 제17회 유영번역상을 수상했다.
목차
1장 세상에서 가장 신비로운 어느 물고기에 대하여 _6
2장 개울가에서 _14
3장 아주 오래된 궁금증 _24
4장 물고기의 눈을 들여다보며 _42
5장 프로이트가 트리에스테에서 발견한 것 _50
6장 그곳은 꿈의 땅이었다 _70
7장 세상의 끝이면서 세상의 시작인 _76
8장 물살을 거슬러 헤엄쳤던 시절 _98
9장 머지않아 모든 것이 사라질 것이다 _106
10장 더 큰 무엇의 일부가 되고 싶은 마음 _122
11장 특별하고 기이하고 놀라운 _128
12장 어떤 동물을 죽이기란 대단히 어려운 일이다 _152
13장 으스대지 않는다, 유난 떨지 않는다 _164
14장 해류처럼 거대한 인생의 이동 _196
15장 집으로 돌아가는 기나긴 여정 _208
16장 무엇을 믿어야 할지 선택해야 하는 순간 _234
17장 세상은 여전히 여기에 _248
18장 자라고, 떠나고, 변하고, 달라진다 _280
참고문헌 _298
대충 훑기
뱀장어는 사르가소해(Sargasso Sea)라는 북서대서양 지역에서 탄생한다. 모든 면에서 뱀장어가 탄생하기에 적합한 장소다. 사실 사르가소해는 분명하게 정의된 해역이라기보다 바다 내의 바다다.
서쪽으로는 생명수인 멕시코 만류가 흐르고, 더 나아가 북쪽으로는 북대서양 해류가 흐른다. 동쪽으로는 카나리아 해류가 흐르고, 남쪽으로는 북적도 해류가 지나간다. 면적 518만 제곱킬로미터인 사르가소해는 이 해류들에 둘러싸여 느리고 따뜻한 회오리처럼 소용돌이친다. 사르가소해로 흘러들어 간 것이 빠져나오기란 그리 쉽지 않다.
물은 맑고 짙푸르며 최대 수심은 거의 7킬로 미터다. 수면은 사르가숨(Sargassum)이라는 끈적거리는 갈색 해조류로 뒤덮여 있다. 사르가소해라는 이름은 바로 이 사르가숨에서 따왔다. 수 킬로미터에 걸쳐 수면을 두텁게 뒤덮고 떠다니는 해조는 작은 무척추동물, 물고기, 해파리, 거북, 새우, 게 같은 수많은 생물에게 양분과 거처를 제공한다. 물속 깊은 곳에서는 다른 종류의 해조류와 식물이 무성하게 자란다. 야행성 숲처럼 어두운 바닷속에 온갖 생명이 우글우글 댄다.
이곳에서 유럽 뱀장어인 앙귈라 앙귈라(Anguilla anguilla)가 태어난다. 이곳이 다 자란 뱀장어가 봄에 번식하는 곳, 알을 낳고 수정하는 곳이다.
얇고 가벼운 버들잎 모양 유생은 즉시 여행을 시작한다. 멕시코 만류의 물결에 휩쓸려서 대서양을 가로질러 수천 킬로미터 떠내려가 유럽 해안으로 향한다. 길게는 3년까지 걸리는 여정이다. _p7~8
뱀장어는 하루에 48.2킬로미터까지 헤엄치며 때로는 수심이 914미터나 되는 깊은 바닷속을 지나간다. _ p12
흔히 아리스토텔레스는 "모든 것을 아는" 마지막 사람이었다고 말한다. 다르게 말하면, 그는 인간이 축적한 모든 지식을 가진 마지막 사람이었다. 그중에서도 자연을 관찰하고 서술하는 데 대해서라면 그는 시대를 앞서갔다.
그의 위대한 저서인 《동물의 역사(Historia Animalium)》는 칼 폰 린네(Carl Linnaeus)보다 2,000년이나 앞서 동물계를 체계적으로 분류한 첫 번째 시도였다. 현대 동물학은 《동물의 역사》에서 발전했다. 이 책은 적어도 17세기까지 줄곧 자연과학의 표준으로 남았다.
마케도니아 왕의 의사를 아버지로 둔 그는 특권층의 삶을 누렸다. 하지만 아리스토텔레스는 어린 나이에 고아가 되었다. 그가 열 살 무렵 아버지가 세상을 떠났고 어머니는 그전에 사망했다. 그는 친척의 손에 자랐으며 그 당시 가장 좋은 학교였던 플라톤 아카데미(Platonic Academy)에서 공부하기 위해 열일곱 살 때 아테네로 갔다. 낯선 도시에 홀로 떨어진 호기심 많고 탁월한 이 청년은 세상을 이해하고 싶은 열정으로 가득 차 있었다. 그런 세상에 대한 이해는 뿌리가 끊긴 사람만이 할 수 있는 것이다. _ p26~27
아리스토텔레스가 개발한 동물과 자연을 이해하기 위한 접근법은 사실상 단독으로 현대 생물학과 자연과학을 탄생시켰으며, 뱀장어를 이해하려는 이후의 모든 시도에도 영향을 끼쳤다. 그는 특히 경험을 바탕으로 접근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자연은 체계적인 관찰로 기술할 수 있으며 정확한 기술로만 이해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_ p29
뱀장어는 지그문트 프로이트를 교묘히 피했다. 뱀장어는 그가 마침내 순수 자연과학을 포기하고 보다 복잡하고 수량화할 수 없는 정신분석을 택한 이유 중 하나일 것이다. ····· 뱀장어는 성적 특성을 감췄다. 성과 성적 특성에 대한 20세기의 생각을 규정하게 되는 사람, 인간의 내면을 그 어떤 전임 과학자들보다 더 깊게 탐구하는 사람. 그 사람은 뱀장어에 관해서는 생식기가 어디에 있는지조차 알아내지 못했다. ····· 그는 물고기의 성적 특성을 이해하고 싶었지만 기껏해야 자신의 성적 특성만 발견했다.
남자아이는 자신의 욕구를 들키면 처벌받을지 모른다는 두려움을 위협으로 인지하지만, 수치심과 열등감도 동시에 느낀다. 그 결과 세상에서 자신의 무가치한 위치를 깨닫게 되고, 이러한 깨달음은 자아 개발로 이어진다. _ p64~65
뱀장어의 변태는 새로운 생활에 표면적으로 적응하는 것만은 아니다. 변태는 존재와 관련된다. 뱀장어는 적절한 시기가 되면 생존에 필요한 형태로 바뀐다. _ p68
파스퇴르는 음식을 박테리아와 미생물로부터 지키는 방법을 개발했다. 파스퇴르에게 경의를 표하려고 그의 이름을 따서 지은 저온 살균법, 즉 파스테리제이션(pasteurization)은 맥주 양조장들에게 대단히 중요해졌다.
파스퇴르는 코펜하겐에 왔을 때 당연히 칼스버그의 초대를 받았다. 칼스버그의 사장이자 자부심 강한 J. C. 야콥센(J. C. Jacobsen)은 이 위대한 과학자에게 대단히 감명을 받아 수준 높은 사내 연구소에 투자하기로 결정했다. 칼스버그는 맥주 양조와 더불어 현대적인 선진 연구도 추진하기로 했다. ····· 이러한 결정은 명성이 걸린 문제이자 상업적 계산의 결과이다. _ p82
그(요하네스 슈미트)는 잉게보르크(칼스버그 사장인 J. C. 야콥센의 후임자 쇠렌 안톤 반 데 아 쿨레의 딸)와 결혼하면서 코펜하겐 자본가 계급 중에서도 상류층의 일원이 되었다. 그는 더 쉽고 편안한 삶을 선택할 수도 있었다. 재산, 신분, 번영과 같은 성공의 일반적인 척도로 보자면 분명히 그의 여정에는 얻는 것보다 잃는 것이 더 많았다. 그런데도 그는 버들잎 모양의 유생을 찾아 광대한 대서양을 떠다니면서 거의 20년이라는 세월을 보냈다. 이 여정의 유용성에 대해서는 어떠한 의문도 갖지 않았던 듯하다. ·····
나는 우리가 신비에 끌리는 이유는 그 신비의 어떤 면이 우리에게 익숙하기 때문이라고 믿고 싶다. 뱀장어의 근원과 기나긴 여정은 기이한 신비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공감하거나 인식할 수 있는 무엇이다. 고향을 떠나기 위해 해류를 떠다니는 길고 긴 표류, 그리고 더 길고 어려운 귀향길. 이는 우리가 고향을 돌아가기 위해 감수할 각오가 된 과정과 비슷하다._p93~94
각 표본이 잡힐 때마다 그보다 더 작은 유생을 잡는 것이 과업이 되었다. 그의 골대는 계속 움직였다. ·····
그리고 뱀장어로 말하자면, 그가 대서양을 가로지르는 동안 뱀장어는 늘 그의 발밑에 있었다. ····· 그 여정은 세계대전과 인간의 호기심 앞에서도 흔들리지 않았다. 요하네스 슈미트가 출항하기 훨씬 전부터, 아리스토텔레스가 난생처음 뱀장어를 보고 이것을 이해하려고 노력하기 훨씬 전부터, 최초의 인간이 지구에 발을 들여놓기 훨씬 전부터 뱀장어가 그랬던 것처럼 말이다. ·····
요하네스 슈미트는 <런던왕립학회 철학 회보>에 게재했으며 마침내 1923년에 출간한 상세 보고서에서 거의 20년에 걸친 연구를 설명했다. ·····
세상은 모순과 혼란으로 가득한 부조리한 곳이다. 목표를 가진 사람만이 마침내 의미를 찾을 수 있다. _ p95~96
결국 사람은 지속적인 뭔가의 일부가 되고 싶은 욕구, 자신이 태어나기 전부터 시작돼서 자신이 세상을 떠난 후에도 계속될 뭔가의 일부라고 느끼고 싶은 욕구를 가진다. 사람은 더 큰 뭔가의 일부가 되어야 한다. ·····
물론 지식이 더 큰 맥락이 될 수도 있다. ····· 그 지식은 모든 것의 중심에 있다. 당신이 인간의 경험에 대해 이야기할 때 단순히 개인의 경험에 대해 말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의 공동 경험에 대해 말하는 것이며, 이러한 공동 경험은 누군가에 의해 전달되고, 다시 이야기되고, 다시 경험된다. _ p125
1621년 11월, 도착한 지 1년 후이자 청교도 이주자들의 생존을 기념해 추수감사절이라고 부르며 경축한 날즈음에, ·····, 물론 "힘들이지 않고" 강에서 대량으로 꺼낸 뱀장어에 대해 하느님에게 감사했다.
이 정도면 뱀장어가 미국의 신화에서 중요한 존재가 돼야 마땅했을 것이다. ····· 하지만 그렇게 되지 않았다. 어쩌면 뱀장어의 본성이 종교적 상징성에 적합하지 않았기 때문일 것이다. 어쩌면 머지않아 뱀장어가 기념일보다는 가난한 사람들의 단순한 식단을 연상시켰기 때문일 것이다. 어쩌면 그 선물이 원주민이 준 것이었기 때문일 것이다.
어떤 이유에서인지, 하느님이 초창기 청교도 이주자들에게 준 이 선물은 대서사시에서 거의 지워졌다. ·····
고대 이집트에서 뱀장어는 강력한 악마, 신과 동등한 존재, 금단의 음식으로 여겨졌다. _ p 32~133
물고기인 동시에 물고기와 다른 것. 뱀이나 지렁이나 스르르 나아가는 바다 괴물처럼 생긴 물고기. 뱀장어는 항상 특별했다. 물고기가 특히 중요한 상징이었던 기독교 전통에서 뱀장어는 따로 떨어진 존재로 간주되었다. _ p 135
하지만 새롭고 낯선 모든 것이 불쾌하지는 않다. 프로이트는 상황을 섬뜩하게 만들려면 다른 요소가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섬뜩하다는 것은 우리가 알거나 이해한다고 생각하는 것이 다른 것으로 드러날 때 경험하는 독특한 불안이다. 익숙한 것이 갑자기 낯설어진다. 우리가 처음 생각했던 것이 아닌 물건이나 생물이나 사람. _ p148
인간은 어떤 점에서 동물과 다를까? 내가 유일하게 아는 것이라고는, 분명 둘 사이에 차이가 있으며 그 차이는 돌이킬 수도 바꿀 수도 없다는 것이었다. 인간은 동물과 다른 존재다.
결국 나는 인간과 동물 사이에 차이가 있다는 사실에 더해서, 다른 종류의 동물들 사이에도 차이가 있다는 사실을 이해하게 되었다. 경계는 모호하고 불분명했다. 그 차이에는 동물의 본성보다는 동물에 대한 우리의 인식이 더 많이 작용하는 듯했다. ·····
아버지는 인간은 다른 생명체보다 우위를 차지하고 있으며 힘뿐만 아니라 책임도 있다고 믿으며 자랐다. 살릴 것인가, 아니면 죽일 것인가. 동물에 대한 존중, 생명에 대한 존중은 물론이고 우리 책임에 대한 존중이. _ p157~158
뱀장어는 반짝반짝 생기 넘치며 거칠게 돌진하고 대담하게 뛰어오르는 연어와 다르다. 뱀장어는 자신의 존재에 대해 유난을 떨지 않는다.
뱀장어는 보다 근본적인 면에서 연어와 반대된다. 둘 다 이동하는 물고기이고, 민물에서도 바닷물에서도 살며 변태를 거친다. _ p165
"동물들이 물가로 나와 육지 생활을 시작했을 때 몸에 바다의 일부를 지니고 있었다. 그것은 그들이 후손에게 물려줬고 심지어 오늘날까지도 육지 동물을 고대 바닷속 자신의 근원과 연결시키는 유산이다. 어류, 양서류, 파충류, 온혈 동물인 조류와 포유류, 나트륨과 칼륨과 칼슘 원소들이 바닷물과 거의 같은 비율로 혼합된 짭짤한 줄기가 모든 사람의 정맥에 흐른다. 이는 수백만 년 전 머나먼 조상이 단세포에서 다세포 단계로 진화한 때로부터, 체액이 그저 바닷물인 순환계를 처음 발전시킨 때부터 이어져 온 우리의 유산이다."
그래서 우리는 모두 바다에서 창조됐고, 우리는 모두 우리만의 신비로운 사르가소해에서 나온다. "최초의 생명체가 바다에서 생을 시작했듯이, 우리 하나하나가 바다의 축소판인 어머니의 자궁 속에서 동일한 삶을 시작한다." _ p171
그렇다면 뱀장어와 인간의 차이는 무엇일까? 인간의 특성에 대한 일반적인 정의는 우리가 자기 존재를 의식하며 이 의식과 더불어 존재에 영향을 미치고 싶은 욕구가 생긴다는 것이다. 적어도 그것이 인간과 동물의 차이에 대해 오랜 세월 동안 생각해 온 방식이었다.
17세기 르네 데카르트는 인간을 제외한 모든 생명체를 '자동기계'로 생각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동물은 기계 반응에 불과한 행동을 하는 몸체다. 반면 인간은 동물에게 없는 것, 즉 영혼을 가졌다. 영혼은 생각할 수 있게 하며, 이 자체가 인식이 존재한다는 증거가 된다. ·····
인간은 인식의 도움으로 동물보다 우위를 차지했고, 시간의 흐름보다 우위를 차지하기도 했다. 영혼의 개념은 예나 지금이나 인간이 개체라는 발상과 연결돼 있다. 결국 개체라는 말은 인간이 나눠질 수 없는 것, 모든 것이 변해도 변하지 않는 통일된 독립 단위라는 의미다. _ p178~179
칼 린네가 끊임없이 개정한 《자연의 체계(Systema Naturae)》의 10판을 1758년에 출간했을 때, 이전 판에서 새로 수정한 부분이 논란을 일으켰다. 이 책에서 린네는 고래를 어류에서 포유류로, 박쥐를 조류에서 포유류로 다시 분류했다. 또한 그는 인간과 동물 사이의 경계를 일시적으로 지우기도 했다. 그는 이 특정 판에서 오랑우탄을 인간과 동일한 속(屬)인 호모로 분류했다. 오랑우탄이 인간이라는 의미였다. 결국 우리가 늘 생각한 것처럼 인간이 유일무이한 존재가 아니라는 뜻이었다.
이는 과학적으로 실수였고 빠르게 수정됐지만, 그래도 흥미로운 질문들을 제기했다. ·····
결국 찰스 다윈(Charles Darwin)이 등장했고 우리에게서 영원한 영혼을 완전히 빼앗았다. ····· 인간은 많은 동물들 중 하나의 동물이 되었다. 이윽고 현대 과학이 발전하면서 세상의 동물이 역으로 우리와 약간 비슷해졌다. 영혼은 아니지만, 인식이 동물에게 부여되었다. 오늘날 우리는 동물이 이전에 생각한 것보다 훨씬 복잡한 의식 상태를 가졌다는 것을 안다. 각종 연구는 어류를 포함한 대부분의 동물이 고통을 느낄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각종 징후는 동물이 두려움, 슬픔, 부모의 느낌, 수치, 후회, 감사, 우리가 사랑이라고 부르는 감정을 느낄 수 있다고 암시한다. ·····
사실 인간과 동물의 차이가 어느 정도는 지워졌다. 거울 앞에 놓인 까마귀는 자신을 바라보고 있다는 것을 알고, 이는 까마귀가 자신의 존재를 인식한다는 의미다. 자기 존재를 안다고 말할 수 있든 없든, 까마귀는 거울에 비친 새가 자신이라는 사실을 안다. _ p179~181
그녀는 먼 수평선을 바라보며 시간도 공간도 유한하지 않다고 느꼈다. "그때 그는, 육지에서와는 전혀 다르게, 그의 세상은 물의 세상, 대부분의 표면이 바다로 뒤덮인 행성이라는 진실을 안다. 그 세상에서 대륙은 온 표면을 둘러싼 바다의 수면을 일시적으로 침범한 땅일 뿐이다." ·····
우리가 지금까지 발견한 가장 오래된 생명체는 모두 바다에서 왔다. 이른바 바다 대합류 조개인 밍(Ming)은 2006년에 아이슬란드 해안에서 잡혔는데 알고 보니 적어도 500~700살인 것으로 드러났다. ·····
지구의 궤도와 일출과 일몰이 아무 의미 없는 바다 밑바닥에서 나이를 든다는 것은 다른 규칙을 따르는 듯하다. 정말로 영원한 혹은 거의 영원한 뭔가가 있다면 그것은 바다에서 발견될 것이다.
뱀장어가 영원히 살지는 않지만 영원이라 할 만큼 대단히 오래 살고 뱀장어를 약간 의인화해도 된다면, 우리는 뱀장어가 그렇게 많은 시간을 어떻게 감당하는지 필연적으로 자문해야 한다. ····· 지루함과 기다림은 견디기가 극도로 힘들고, 지루할 때처럼 시간이 뚜렷하고 길게 느껴지는 때는 없다. _ p193~194
통통한 은빛 뱀장어가 바다로 헤엄쳐서 사르가소해로 가는 마지막 여정을 시작한다. 뱀장어는 어떻게 길을 찾을까? ·····
우리는 진부한 질문을 환영해도 된다. 우리는 지식에 한계가 있다는 것을 반가워해야 한다. 이것은 방어기제가 아니라, 세상이 이해할 수 없는 곳이라는 사실을 우리에게 이해시키는 방법이다. 신비에 싸인 것에는 흥미로운 뭔가가 있다. _ p209
혹은 어쩌면 세상이 아주 잘 정리돼서 우리가 모든 것을 알게 될 때, 그래서 모든 호기심이 고갈될 때(그러니, 호기심이 영원하길), 그때 세상이 끝날 것이다. 그러나 우리가 어떻게, 무엇을, 어디에서, 언제든지 배울 수 있다 한들, 과연 왜를 알게 될까? 왜, 왜? _ p213
관념 운동 현상은 이를 설명할 수 없다 어쩌면 미세한 감각 인상(Sensory Impression)에 달려 있는지도 모른다. 우리의 잠재의식이 주변을 읽고 우리가 이해하지도 못하는 결론을 내리는 지도 모른다. 어느 쪽이든, 우리는 끊임없이 이런 무의식적인 결정을 내린다. 이건 결국, 그저 근육을 움직여야 할 때가 있다고 말해주는 것일지도 모른다. 지금이 머무를 때인지, 아니면 떠날 때인지 말이다. _ p238
기적의 의미를 믿기 위해 꼭 기적을 믿어야 하는 것은 아니다. 어리석은 자가 되는 방법은 많이 있다. 그리고 메시지의 핵심을 믿기 위해 문자 그대로 복음을 믿어야 하는 것은 아니다. 죽은 자는 어떤 형태로든 우리 곁에 머문다.
할머니는 하느님을 믿었지만, 아버지는 믿지 않았다. 세월이 흘러 할머니가 돌아가실 때 나는 할머니 옆에 앉아 있었고 할머니는 울면서 말했다. "나는 항상 네 곁에 있을 거야."
나는 분명히 할머니를 믿었다. 내가 그 말을 믿기 위해 신을 믿을 필요까지는 없었지만. _ p246
적절한 출발점은 뱀장어의 멸종을 더 큰 맥락에서 보는 것이다. 생은 바뀔 수 있다. 그것이 진화의 첫 번째 규칙이다. 생은 일시적이다. 이것이 생의 첫 번째 규칙이다. 하지만 다른 많은 종과 마찬가지로, 지금 뱀장어에게 벌어지고 있는 일을 규모라는 측면에서 본다면 진화와 생의 정상적인 진행 범위를 훨씬 넘어선다.
레이첼 카슨은 이 점을 가장 먼저 깨달은 사람이다. 그녀를 사람들의 기억에 남게 한 책은 레이첼 카슨의 마지막 저서인 《침묵의 봄》이다. 이 책은 1962년에 출간됐으며 사랑이라는 명목으로 자연을 파괴하는 인간의 폐해에 대해 쓴 책들 중에서 가장 영향력이 있다. 《침묵의 봄》은 자연을 엄청나게 파괴하는 DDT와 여러 살충제를 다룬다. 들판과 숲에 경솔하게 뿌리는 살충제가 어떻게 곤충뿐 아니라 조류, 어류, 포유류, 결국 인간에 이르는 모든 종을 죽이는지 잘 드러낸다. ·····
레이첼 카슨은 우리가 지각하는 세상에서 생명체가 사라졌기 때문에, 완전히 소멸했기 때문에, 우리 주변에서 생명체를 볼 수도 들을 수도 없는 시대가 올 것임을 예견했다. ····· "인간이 자연의 정복이라는 목표를 향해 나아가는 동안, 인간이 살고 있는 지구는 물론이고 인간과 함께 지구를 공유하는 생명체가 파괴되는 시간을 기록했다." ·····
그리고 그녀는 적어도 파괴적인 살충제를 금지시키는 데는 성공했다. 《침묵의 봄》의 막대한 영향 덕분에 1972년 미국에서는 DDT를 농약으로 사용하는 것이 금지되었다. ·····
이제는 이 관심사가 널리 알려졌지만, 이 문제의 심각성을 조기에 발견하고 사람들이 관심을 갖게 한 것은 그녀의 유산으로 남을 것이다.
지구에 생명체가 존재해 온 30억 년이 넘는 세월 동안, 지금까지도 영향을 미치고 있으며 극단적인 사람이라면 일종의 변태에 버금간다고 말했을 변화가 몇 차례 일어났다. 각 변화는 지구에 존재하는 생명체의 구성을 바꾸었다. 이 다섯 차례의 변화는 워낙 광범위하게 걸쳐 있어서 하나의 독립된 범주가 생겼다. 이 다섯 기간을 일반적으로 5대 대멸종 사건이라고 부른다.
첫 번째 대멸종 사건은 오르도비스기의 끝자락인 약 4억 5,000만 년 전에 시작되었다. 여전히 생명체가 거의 바다에 국한되어 살던 때였다. 대륙 이동의 결과, 급격하게 차가워진 기후 때문에 1,000만여 년 동안 전체 종의 약 60~70퍼센트가 멸종했다.
두 번째 대멸종 사건도 파괴적인 지구 한랭화로 약 3억 6,400만 년 전에 일어났다. 살아 있는 모든 종의 70퍼센트가 멸종했다.
세 번째 대멸종 사건이 가장 치명적이었다. 이 사건은 페름기에서 트라이아스기로 넘어가는 시기인 약 2억 5,000만 년 전에 발생했으며 모든 종의 95퍼센트 이상이 사망했다. 원인에 대해서는 의견이 분분하지만 가장 가능성 있는 답은 극심한 기후변화를 초래한 여러 사건들의 합작품 때문이라는 주장이다.
네 번째 대멸종 사건은 약 2억만 년 전, 트라이아스기와 쥐라기 사이의 비교적 긴 기간 동안 일어났으며 모든 종의 최대 75퍼센트가 멸종했다.
다섯 번째 대멸종 사건이 가장 유명하다. 6,500만 년 전 유성이 유카탄 반도에 떨어진 것으로 추정된다. 이 충격은 적어도 공룡을 멸종시킨 요인이 되었으며 더불어 세상에 존재하던 모든 종의 75퍼센트를 멸종시켰다.
지구의 수많은 동식물은 이 외에도 많은 변화를 거쳐왔으며 일부는 거의 대멸종에 버금가도록 광범위했지만, 그래도 생명의 긴 역사에 비하면 대멸종은 아주 드문 현상이다. 여러 종이 죽고 여러 동식물이 탄생했다가 사라지지만 일반적으로 이 기간이 아주 길어서 자연의 질서를 근본적으로 교란시키지는 않는다. 이것은 평범한 삶의 방식이다. 대참사가 아니 가끔의 작별이다.
많은 연구자들은 우리가 지금 경험하고 있는 상황이 평범한 환경이 아니며, 사실상 우리가 여섯 번째 대멸종 시대에 살고 있다는 것을 기정사실로 받아들이고 있다. ·····
산호의 약 33퍼센트가 멸종 위기에 처했다 상어의 33퍼센트, 모든 포유류의 25퍼센트, 모든 파충류의 20퍼센트, 모든 조류의 16퍼센트도 마찬가지다. ····· 만약 계속 이런 식으로 흘러가면, 지구의 많은 종이 고작 백 년 후에 절반으로 줄어들 것이다.
이 속도는 이례적으로 빠르다. 이전의 대멸종은 수백만 년에 걸쳐서 진행되었지만 이제는 수 세기에 걸쳐 일어나고 있다. 하지만 현재 진행 중인 멸종의 독특한 점은 역사상 처음으로 살아 있는 가해자가 있다는 것이다. 천체, 혹은 대륙 이동이나 화산 폭발이 범인이 아니다. 범인은 생명체다. 지구에 살고 있는 많은 종 중 하나가 지구를 정복했고, 그 과정에서 다른 모든 종들의 서식지를 엄청나게 파괴했다. 이 종은 지표면뿐 아니라 대기까지 변화시켰다. 어떤 종도 다른 형태의 생물에게, 지구상의 모든 생물에게 이러한 영향을 행사한 적이 없었다. _ p249~255
국제자연보호연합(Inter-national Union for Conservation of Nature. IUCN)이 하는 여러 활동 중 하나는 이른바 적색 목록(Red List)을 만드는 것이다. ·····
적색 목록에서 각 종은 정해진 기준에 따라 평가되고 가장 희망적인 단계인 '관심 대상'부터 '준 위협', '취약', '위기', '위급', '야생멸종'을 거쳐 마지막이자 돌이킬 수 없는 선언인 '멸종'까지 일곱 개 등급으로 분류된다. ·····
적색 목록에 따르면, 인간은 잘 살고 있다. 가장 최근에 실시된 2008년 국제자연보호연합의 호모 사피엔스에 대한 평가는 이렇다. ····· "인간은 모든 육생 포유류 중에서 가장 널리 분포하며, (남극 대륙에는 영구 정착지가 없지만) 지구상의 모든 대륙에서 살고 있다. 소집단의 인간은 우주에 갔으며 국제 우주 정거장에서 산다."
반면 뱀장어, 특히 앙귈라 앙귈라는 곤경에 처해 있다. 뱀장어가 가까운 미래에 정말로 사라질 수 있다. 우리의 시야와 지식의 영역에서뿐만 아니라 지구상에서 완전히 사라질 수 있다. _ p256~259
우리는 뱀장어가 특히 공해에 민감하다는 사실도 안다. 뱀장어는 오랫동안 살고 먹이사슬의 최상위에 있기 때문에, 특히 산업용과 농업용 독성 물질의 영향을 받는다. _ p262
1681년 여름, 선원 벤저민 해리는 모리셔스에서 도도를 봤다고 일기를 썼다. 이것이 살아 있는 도도를 목격했다는 마지막 기록이다. 이것이 믿을 수 있는 이야기라면, 그가 본 도도는 인류의 마지막 도도일 것이다. 도도는 죽었고 멸종했으며 남은 것은 희미해지는 기억뿐이다.
한동안 도도는 잊혀졌거나, 혹은 진짜 동물이 아니라 어렴풋한 신화적 생명체로 표현되었다. 어떤 사람은 도도가 진짜로 존재했는지 의심했다. _ p267
하지만 이윽고 우리는 도도에 대해 훨씬 많이 알게 될 터였다. 첫 번째 화석이 1865년에 발견됐고 과학은 한 시절을 살았던 특이한 새로서가 아니라 인류가 지구상의 모든 생명체에게 미치는 무한하고 돌이킬 수 없는 영향의 사례로 도도의 독특한 운명에 많은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다. 19세기말 이후로, 도도에 관한 수많은 책이 나왔다. 루이스 캐럴(Lewis Carroll)의 《이상한 나라의 엘리스》는 도도를 유명하게 만들었다. 도도는 의심할 여지없이 오늘날 가장 널리 알려진 멸종된 종이다. 더구나 도도는 인류의 무분별한 냉소주의를 경고하는 사례이자 시대에 뒤떨어지고 쓸모없어진 것을 비유하는 대표적인 상징이 되었다. 이제 도도는 새로운 시대에 적응하지 못하는 어리석고 어설픈 사람, 거부당하고 잊히고 주류와 무관해진 사람을 부르는 말이다. _ p268~269
뱀장어가 없는 세상을 상상할 수 있을까? 적어도 4,000만 년 동안 존재해 온 생물을, 빙하기에 살아남았고 대륙 이동을 목격한 생물을, 인간보다 수백만 년 앞서 지구에 등장한 생물을, 수많은 전통과 축하와 신화와 이야기의 대상인 생물을 지울 수 있을까?
'아니다'가 본능적인 대답이다. 세상은 그렇게 돌아가지 않는다. 존재하는 것은 존재하고, 존재하지 않는 것은 어떤 식으로든 상상할 수 없다. _ p277
어쩌면 아버지는 우리가 원하든 원하지 않든 인간의 근원이 삶에 영향을 미치고 근원을 모르는 사람은 항상 상실감을 느낀다는 것을 그때 깨달았던 것 같다. 어디에서 왔는지 알지 못하면 어디로 가는지도 알 수 없다. 집을 떠나는 여정과 집으로 돌아가는 여정은 기본적으로 같다. _ p287
스웨덴에서 법으로 인정하는 죽음은 심장 박동이나 호흡과 아무 상관이 없다. 스웨덴 법에 따르면, 뇌가 어떤 형태로든 활동을 하는 한 그는 살아 있는 사람이다. _293
미국의 중환자실 의사인 라크미르 차올라(Lakhmir Chawla)가 실시한 또 다른 연구에서도 죽음의 순간에 고조된 뇌 활동이 기록되었다. ····· 그가 발견한 결과에 의문의 여지는 있을지언정 이것은 흔히 임사체험이라고 말하는 개념에 어느 정도 신빙성을 더해주는 것 같다. 어쩌면 우리가 모르는 정신 상태가 있을 수 있고, 누군가 저승에서 말해줄 때까지 우리는 이런 정신 상태를 결코 완전히 이해하지 못할 것이다. _ p294
물고기가 되지 못했던 물고기, 아리스토텔레스부터 프로이트까지 지대한 관심을 받으며 연구되었지만 여전히 미스터리로 남았고, 이집트와 기독교 등에서 종교적으로 악마화되고 금단시 됐던 뱀장어.
뱀장어를 탐구한 재밌는 역사와 함께 버들잎 모양 유생으로 떠나 민물과 바다에서 4번의 변태를 거쳐 '은빛 뱀장어'가 되어 고향을 찾아가는 존재의 신비로움과 멸종의 위험을 초래하고 있는 인간의 삶과 영향력을 빗대어 본다.
개체로서의 유한한 삶과 영원한 공존,
우리가 떠나온 것들과 다시 돌아가야 할 곳에 대한 오래된 질문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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