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활용 시스템의 모순과 불평등,
그리고 친환경이라는 거짓말
원 제 | Le mythe du recyclage (2021년)
지은이 | 미카엘라 르 뫼르
옮긴이 | 구영옥
출판사 | 풀빛
주 제 | 환경 생태
미카엘라 르 뫼르 (Mikaëla Le Meur)
인류학 박사로, 엑스-마르세유대학에서 사회학 및 정치학을 가르치고 있다. 2011년부터 폐기물, 플라스틱 재료, 재활용에 대해 연구 중이며, 이 주제로 2019년에 논문 「플라스틱시티: 베트남의 삶과 생태학적 변혁에 관한 연구(Plasti-cités: Enquêtes sur les déchets et les transformations écologiques au Viêt Nam)」를 썼다. 플라스틱 재료(특히 가방과 포장)의 생애주기를 추적하며 생태, 도시 및 정치의 중요성에 중심을 두고 있다. 학계 안팎의 다양한 집단에서 활동하며 시청각·사운드 다큐멘터리, 사진, 전시회, 대중 교육 워크숍에 참여하고 있다.
구영옥
이화여자대학교 통역번역대학원 번역학과를 졸업했다. 현재 번역 에이전시 엔터스코리아에서 번역가로 활동하고 있으며, 옮긴 책으로는 『당신의 쓰레기는 재활용되지 않았다』, 『파브르가 사랑한 곤충』, 『나무처럼 생각하기』, 『어린 왕자와 다시 만나다』, 『플라스틱 세상』, 『사용자를 유혹하는 UX의 기술』, 『달콤한 코바늘』 등이 있다.
목차
추천의 말
프롤로그 _당신이 '분리수거한' 플라스틱이 도착하는 곳, 민 카이 마을
'플라스틱' 블랙박스 _보이지 않는다고 해서 사라진 것은 아니다
쓰레기 패러독스 _다시 태어났는데 또 쓰레기?
재활용 마을에서 일어나는 일들 _누군가는 진화하고 누군가는 퇴화한다
돌고 돌아 다시 원점? _순환이라는 거짓말
에필로그 _우리가 믿고 싶어 하는 '재활용'이라는 신화
출처 및 참고 문헌
대충 훑기
추천의 말
내가 버린 쓰레기는 어디로 가서 어떻게 처리될까? 특히 애써서 종류별로 나누어 분리배출까지 한 재활용 쓰레기들은? 쓰레기를 버리면 일단 내 눈앞에서는 사라진다. 하지만 이는 쓰레기 문제의 끝이 아니다. 출발점일 뿐이다. '쓰레기의 길'은 무척이나 길고 복잡하다.
「당신의 쓰레기는 재활용되지 않았다 」는 재활용 쓰레기 처리 시스템과 흐름의 진실을 추적한 책이다. 저자는 재활용이라는 '신화'에 담긴 모순과 부조리, 그리고 거짓말을 폭로한다.
무대는 베트남 하노이 외곽의 민 카이 마을. 전 세계에서 실려온 플라스틱 쓰레기가 모이는 곳이다. 주민 대다수는 쓰레기들을 해체하고 분류하고 재가공하는 일에 종사한다. 생계를 잇기 위해서다. 작업의 명분은 재활용이다. 하지만 이 마을 뒤덮고 있는 것은 극심한 환경오염이다. 주민들의 건강이 온전할 리 없다. 쓰레기를 재활용한다는 마을에서 사람이 쓰레기로 전락하고 있다.
이뿐만이 아니다. 불평등이 깊어졌다. 민주주의가 망가졌다. 지역 공동체가 무너졌다. 한쪽에서는 다수의 '재활용 프롤레타리아'가 위험하고 불결한 환경 속에서 구슬땀을 흘린다. 그러나 다른 한쪽에서는 부패한 결탁으로 이루어진 소수의 '쓰레기 마피아'가 재활용 사업으로 부와 권력을 챙긴다. 이것이 '친환경'이라는 이미지로 덧씌워진 재활용 산업으로 먹고사는 이 마을의 민낯이다.
책을 읽으며 새삼 떠올리게 되고 강조하고 싶은 것은 두 가지다. 하나는 이른바 '그린 워싱(Green Washing)'에 대한 경각심이다. '녹색 분칠' 혹은 '위장 환경주의'라고도 한다. 실제로는 친환경적이지 않으면서도 친환경적인 것처럼 홍보하거나 속이는 걸 가리킨다.
다른 하나는 환경문제는 곧 정치문제라는 인식이다. '순수한' 환경문제란 없다. 환경문제에는 빈곤, 불평등, 민주주의, 정의 등의 문제가 깊숙이 새겨져 있다.
산업혁명 이후 인류는 흥청망청 생산하고 소비하고 버리면서 어마어마한 '쓰레기 제국'을 건설해 왔다. 그 결과 지구 생태계의 질서와 균형이 깨졌고, 급기야 인간의 지속 가능한 생존마저 위태로워지고 있다. 장성익(환경과생명연구소 소장, 작가) _ p4~6
프롤로그 : 당신이 '분리수거한' 플라스틱이 도착하는 곳, 민 카이 마을
'플라스틱시티'라는 표현은 내 흥미를 자극했던 플라스틱 재료들의 기본적인 특성과 더불어, 연구를 진행하면서 주 활동 지역이 된 몇몇 중소 도시들을 떠오르게 한다. 내가 사용하는 용어에 개인적인 취향이 있다는 점은 인정하지만, 재미와 형식을 떠나 이런 표현들은 사회과학에 토대를 둔 것이다. 적절한 용어와 형식은 정확하게 표현하고 분석하며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된다. 연구를 재현하려면 표현력이 있어야 한다. 환기하고 설명하며 접근하고 질문해야 한다. 모든 것이 언어를 통해 이뤄진다. _ p15~16
어찌 됐든 가난하지만 깨끗한 도시는 본 적이 없어요. 사람들이 불행해지면 그 불행은 보통 지속되죠. 파벌, 부패, 빈곤은 모두 함께 존재해요. _ p20
집집마다 철창살 문 앞이나 공터에 쓰레기 더미들이 쌓여 있는 이 플라스틱 마을에서 내가 '재활용이라는 신화'라고 부르는 것이 구체화되고 있다. 오래된 아이디어로 유명한 '그 로고(재활용을 뜻하는)'는 산업화 시대의 상징이 될 정도로 대대적으로 채택되고 있다. 1970년에 폐지를 채운 운송 상자 디자인을 뽑는 미국 컨테이너 조합 주최 공모전에서 미국 엔지니어인 게리 앤더슨이 만든 이 디자인이 선정되었고, 그 후 전 세계로 퍼졌다.
재활용은 인간이 자연 활동을 관찰하고 상호작용하는 과정에서 쭉 논의되어 왔다. 연금술사가 납을 금으로 바꾸려 했던 것처럼 버려진 물건과 재료는 거의 무한대로 가치 있는 물건, 심지어 은화로 가공할 수 있다는 원칙에 기반한다. _ p22
'플라스틱' 블랙박스 _보이지 않는다고 해서 사라진 것은 아니다
역으로 '원천적 쓰레기 분류'와 '환경을 위한 작은 실천'이라는 법령 속에서 개인의 사생활과 일상에 쓰레기 관리 문제가 정치적으로 끼어들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세계적으로 불평등한 무역이 이뤄진다는 명백한 사실과 더불어, 아일랜드에서 출발한 더러운 종이 상자를 분리하는 베트남 농민의 두 손을 통해 드러난 것은 바로 정치적 문제다. _ p45
세계 무대를 장악한 강대국들의 경제에 활력을 불어넣은 무력 충돌에는 잔인한 아이러니가 있다. 베트남에서 벌어진 미국 전쟁이 독특한 보급 방식을 낳았다는 점이다. 바로 컨테이너 수송이다. _ p48
일본에서 건조한 이 거대한 컨테이너선이 운송한 20,388 TEU 중에는 재활용이 될 폐기물이 실렸을 공산이 크다. 그러나 북반구 국가로 폐기물을 수출한 것은 베트남이 아니다. 베트남제 폐기물은 반대로 고상한 물건들(프로타 포르테, 상품, 가정용품 등)과 관련이 있다.
2020년에 유럽 연합은 27,490,340톤의 쓰레기를 수출했다. 2004년 이후로 두 배나 증가한 양인데, 주로 플라스틱, 종이, 종이 상자, 금속 등이다. 우리가 버린 쓰레기가 해상 수송으로 두 배나 더 먼 곳으로 이동하면서, 그 존재와 그에 따른 문제들도 멀어졌다. _ p53
쓰레기 패러독스 _다시 태어났는데 또 쓰레기?
그리고 이런 혼란을 정리하는 것은 노동자의 몫이다. 이 혐오스러운 물질들은 유해하다고 여겨지는 떠돌이 개, 설치류 또는 바퀴벌레 등이 돌아다니는 컨테이너 안에서 뙤약볕과 창고의 습기 속에 발효된다. 몽펠리에의 하수도 청소부들을 조사했던 민족학자 아녜스 장장의 표현을 인용하면, 이 보람 없는 작업에는 '과도한 상징 부여(forte charge symbolique)'가 되어 있다. _ p64
환기가 안 돼서 이미 후텁지근하고 공기도 탁한 작업장에서 사출기는 가스 기포를 내뿜으며 덩어리 지고 김이 나는 걸쭉한 용암을 내보낸다. 노동자들은 매일같이 이런 공기를 마시는 것이다. _ p69
민 카이 마을에 있는 수공업 공장들의 재활용 라인을 한 단계 한 단계 훑으면 물질 부스러기는 광석으로 변한다. 인간과 기계의 힘이 작용한 여러 작업 단계를 거쳐 처음의 형태를 잃는다.
마치 산이 수많은 모래알로 침식되는 것처럼 고체와 액체 사이의 불분명한 이 재료의 성질은 향후 생산에 반드시 필요한 부분이다. '형태가 없어야 다시 형태를 만들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이런 변형이 소멸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이는 우리에게 관찰의 척도를 바꾸고 물질과 함께 지하세계로 뛰어들 것을 권한다. _ p71
그래서 민 카이에 있는 가족 회사의 라인에서 온 광석은 극도로 제한된 판로를 갖는다. 대부분이 사출이나 팽창 과정을 통해 다시 플라스틱 봉투를 만드는데 쓰인다. 그렇게 더러운 봉투가 깨끗한 봉지로 바뀌면서 돌고 돌아서 다시 원점인 것이다. _ p73
컨테이너에 실려 먼 길을 온 폴리머 쓰레기를 받기 위해 국경 문이 활짝 열렸다지만 여행객의 짐에 우연히 섞여 떠나지 않는 한, 민 카이에서 재활용된 플라스틱 봉투가 국경을 넘을 일은 거의 없다. 발송인에게 다시 돌아가는 일은 드물다는 뜻이다.
재활용된 광석처럼 품질이 낮고 안전하지 않은 제품에 대해서 선진국들은 매우 제한적인 수입 기준을 적용한다. 그래서 그 판로는 베트남 내 혹은 민 카이 지역 내 시장으로 국한된다. _p74~75
오염된 재료의 비중을 상쇄하기 위해서는 근원적 정화가 이뤄져야 한다. 보물로 둔갑하여 숨기려고 하는 것은 곧 '쇠퇴'라는 것을 잊지 말자. 형태만 바뀔 뿐 특성은 변하지 않는다. 플라스틱 가공을 할 때 색 배합에는 교훈이 숨어 있다. 근본을 숨기기 위해 변에 무엇을 섞어도 그 구린내는 사라지지 않는다는 점이다.
고밀도 폴리에틸렌인 합성 폴리머 알갱이들의 투명함이 마치 고결한 추출처럼 보이게 하는 점은 문제적이다. 이 알갱이들은 우리의 쓰레기통이 아닌 '세계의 가장 큰 산업화 도시'로 향한다. 목적지는 석유수출국기구(OECD)의 대표 도시 사우디아라비아의 주바일이다.
쓰레기 더미에서 시작된 플라스틱은 마치 땅속 바위틈에서 추출한 석유처럼 유동적이고 파악하기 어려운 원천을 끊임없이 만들고 있다. _ p77~78
재활용 마을에서 일어나는 일들 _누군가는 진화하고 누군가는 퇴화한다
20세기 말에는 민 카이 마을의 변화가 두드러졌다. 주변 마을 사람들이 붙여 준 별명 '고구마(Khoai) 마을'에서 '무역 마을'로 바뀐 것이다. 하노이 주변에 있는 다른 마을들이 물품이나 재료와 관련된 협회를 구성하면서 오랜 시간 생산해 온 라탄 바구니, 도자기 화분 그리고 목공예로 유명해지는 동안, 인근에 있는 민 카이 마을은 각양각색의 플라스틱에 점령당했다. _ p85
부서진 쓰레기들이 햇빛에 썩어 가면서 뿜어내는 악취가 코끝을 자극하고, 귀에 들리는 소리라고는 끊임없이 돌아가는 모터와 기계의 소음뿐이다. 아마도 개구리는 여전히 거기 있을 것이다. 오염된 늪지에 숨어 있겠지만 소음이 점령한 이 풍경에서 개구리는 사라지고 없다.
재활용된 알갱이들을 생산하는 작업장에서는 플라스틱 입자가 둥둥 떠다니는 더러운 물을 흘려보낸다. 분쇄된 폴리머 쓰레기의 세척 수조에서 나오는 오수는 마을의 도랑이나 재활용 공장 주변의 공터로 흘러가 고여 있다. _ p87
인간에 대한 불신만 커진 것은 아니다. 항상 주위의 다른 것에는 오염물이나 독극물이 없는지 의심하게 되었다. 공동이 소유하고 공유하는 강은 일상생활의 전부이고, 지역의 특성을 나타내면서 공동체를 공들여 키워낸 존재이기도 하다.
일상의 경험과 풍경 속에서 우리 삶의 방식은 플라스틱 재활용의 발전과 그에 따른 영향에 타격을 받는다. 더구나 그 영향들은 처음에는 인지할 수 없지만 환경, 인간관계 그리고 사물과 존재의 관계에 깊이 주입되어 있다. _ p89
이 지역에 오염수를 풍요로움으로 바꿔 공급해 주는 것과 다름없는 재활용 마을이 도리어 다른 이들의 원성을 사는 것이다. _ p91
대기와 땅, 그리고 강은 훼손됐고 동시에 삶도 변질됐다. 인간은 개인, 공동체 등 몸통을 구성하는 '화학적 관계의 범위를 인식'하고 환경과 다른 관계를 형성할 필요가 있다. 역사학자 미셸 머피의 '또 다른 삶(alterlife)'처럼 말이다.
그러나 대체적인 전망은 분명하지 않다. 시간의 화살은 더 많은 자원 개발, 물질 축적, 에너지 남용을 촉진시키고, 이러한 퇴화를 상쇄시키는 경제적 번영은 재활용 성공 모델을 가진 소수의 기업만 웃게 만든다. _ p93
지역에 미치는 사회적이고 환경적인 해악은 제쳐 두고 손실은 분담하게 만들면서, 자신들의 영리 활동 이익은 독차지하는 소수의 모습을 보고 있자니 일부 주민들의 분노도 충분히 이해가 된다.
(오늘날 규모와 횟수가 감소한) 쓰레기 수거를 공공이 담당하기 이전에 일부 주민들은 습관처럼 지역 인민위원회 앞에 쓰레기를 버렸다. 익명으로 이뤄진 이런 관행은 그들의 불만을 표현할 수 있는 기발한 방식이었다. '쓰레기 마을'에 사는 이들에게 그들의 정책이 '쓰레기'에 불과하다는 것을 결정권자들에게 이해시킬 가장 공정한 방법은 이 방법 외에는 없는 것이다! _ p103~104
돌고 돌아 다시 원점? _순환이라는 거짓말
이 플라스틱은 산화 과정을 거치는 폴리머의 분자 사슬을 절단하는 중금속을 비롯한 위험한 첨가물 혼합제를 사용하여 생산된다. 환경오염에 대한 우려가 높아지자, 그들은 사용 기간이 끝나면(일부 기업에서는 심지어 이 사용 기간을 '통제'할 수 있다고 강력하게 주장하기도 한다) 이 비닐봉투가 자연 속에서 '사라질' 수 있다고 홍보했다.
(훗날 하노이에서 만난 프랑스 기업인이 일축한 것처럼) '엉터리 가루'로 만든 첨가제가 함유된 플라스틱에 대한 논쟁이 일면서 유럽연합은 2021년에 불안정한 이 폴리머의 시장 진입을 금지했다(유럽이사회와 유렵의회의 일회용 플라스틱에 관한 지침, 2019년 6월 5일). 실제로 이들의 화학적 분쇄 방식은 생분해와 아무런 관련이 없고 오히려 플라스틱 미세 입자와 오염 물질을 분산시켜 생태계를 위험에 빠뜨릴 수 있다. 그럼에도 산화해체성 플라스틱은 전 세계에 퍼져 있다. 특히 베트남에서는 이 봉투가 '친환경' 라벨을 붙이고 대형 마트의 계산대까지 배포되었다.
크게 비난받을 수 있는 이 기술을 소개하는 두 부스를 보고 나니 호기심이 발동했다. 재활용 산업에 쓰일 설비 회사 소속의 이탈리아 대표와 꽤 호의적으로 긴 대화를 나누던 중, 그는 '쓰레기 마피아'가 있다면서 흘깃 곁눈질로 어떤 부스를 가리켰다.
그 부스는 컨테이너 운송을 위해 압축되고 성형된 플라스틱 알갱이들 사진으로 뒤덮인 패널로 장식되어 있었다. 그때까지 재활용 공장 근처에 있는 민 카이 마을에서만 볼 수 있던 '2차 원료'(라기보다는 플라스틱 쓰레기)를 그 자리에서 보게 된 것이다. 이런 사진들을 붙여 놓은 유일한 출품 회사 제이플라스는 영국의 재활용 전문 업체이자 '천연' 재료를 전 세계에 수출하는 업체다. _ p112~113
회사 소개 책자에는 원형으로 돌아가는 화살표에 앵글로색슨 군도의 실루엣이 겹친 제이플라스의 로고와 함께, 재활용 기업들이 '순환 경제'라고 부르는 이 분야의 통상적인 슬로건이 쓰여 있었다. 'Closing the loop in UK(영국에서 순환 고리 닫기).' 미덕으로 오해하게 만드는 이 슬로건 아래에 실린 또 다른 광고에는 아이러니가 가득했다.
'Shaping the future of UK plastics and recycling(영국의 플라스틱과 재활용의 미래를 만든다)'. 여기서 두 글자만 바꿔서 'Shipping the future of UK plastics and recycling(영국 플라스틱과 재활용의 미래를 해치우자)'로 변형해도 어색하지 않을 것 같았다. 그처럼 베트남의 문제적 기업들과 영국 왕실의 이익을 수호하는 밀사를 대표하는 이 왕관은 쓰레기 컨테이너 수출을 통해 전 세계 해상에서 존재감을 유지하고 있다.
영국이 세계 각지로 폐플라스틱과 알갱이 재료들을 수출하는 유일한 선진국은 아니다. 2008년에 프랑스는 아시아 여러 국가뿐만 아니라 유럽 인근의 재활용 천국 터기에 45만 톤의 플라스틱 쓰레기를 수출했고, 불가리아와 루마니아는 이탈리아산 쓰레기에 점령당했다. 서유럽부터 태평양까지 이어지는 쓰레기의 여정은 동서양의 무역 관계를 다시 그린다.
2017년에서 2018년으로 넘어갈 무렵, 중국은 더 이상 세계의 쓰레기통이 되기 싫다며 종이, 종이 상자, 플라스틱, 금속, 섬유 등 24종의 유해 물질 수입을 중단한다고 선언했다. 최근 수십 년 동안 중국은 실제로 미국, 일본, 호주, 뉴질랜드, 그리고 유럽에서 오는 폐기물 거래의 중심 고리였다.
2017년 1월에 개봉하여 같은 해에 여러 상을 거머쥔 다큐멘터리 《플라스틱 차이나(Plastic China)》를 만든 왕 지우리앙 감독은 베트남처럼 소기업 경영자들이 품은 현대성과 자본 소비 열망에 기대고 있는 재활용 경제와 개인의 운명을 조명하며 예리하고 비판적인 자화상을 그려냈다. 그중 한 장면에서 이들의 사회적 구출에 대한 욕구를 구체적으로 담고 있다.
상영 몇 달 후에 내려진 중국 정부의 일부 쓰레기에 대한 수입 금지 결정에는 아마도 이 영화가 한몫을 했을 것이다. 2016년 베트남 포장 산업 박람회에서 이미 언급된 바 있는, 재활용 산업에서 준비하고 있던 이 금지 조치는 쓰레기 국제 무역의 범위를 가시화시켜 경제적, 외교적 문제와 더불어 언론에 '위기'를 초래했다. 그때까지 이런 거래는 대중에게 알려지지 않은 영역인 동시에 국제 규제의 레이더망을 피해 왔기 때문이다.
1992년에 핵 및 화학 산업을 우선하여 유해 폐기물의 국가 간 이동을 규제하는 바젤 협약이 발효됐다. 바젤 협약은 유럽 공동체법에 2006년 통합되면서 점차 진화하고 있다. 2021년 1월에 개정된 유해 폐기물 통제 목록에 폐플라스틱도 추가되었다. 이 협약의 실질적 목표 중 하나는 수출국이 컨테이너를 발송하기 전에 수입국의 승인을 받도록 의무화하는 것이다. 그러나 현재로서는 준국가적 주체들이 비교적 독자적으로 무역을 조직하고 있다. 국제적으로 논의된 이 규제에 따른 제재 의무의 구체적 이행은 아직 문제로 남아 있다. _ p115~119
일부 국제 브랜드들이 새로운 '친환경' 시장에 진입하기 위해 오염된 대양에서 온 재료뿐만 아니라 베트남 민 카이 마을에서 재활용된 재료를 사용한다는 것에 자부심을 느끼는 반면, 일부 기업들은 재활용 사업에서 손을 떼기로 결정했다. 사우디아라비아나 그 외 국가에서 수입된 폴리머 알갱이로 투명한 일회용 컵과 빨대 구멍이 뚫린 뚜껑, 정수한 물을 담기 위한 페트병을 만들기 위해 그들은 다시 플라스틱 원료로 직행한다 그 원료는 바로 탄화수소다. _ p121
정치학자인 티모시 미첼에 따르면 우리가 '1리터의 석유'를 쓸 때 '25톤의 원시 해양 생물'이 연기로 사라지고 '유기물이 성장한 수십 년'의 세월이 증발한다. 화석 에너지의 추출 덕분에 플라스틱 가공 산업이 발전했는데, 이로 인해 탄화수소 '소모'가 가속화되고 포장재 같은 일회용 플라스틱 용품, 즉 '일용소비재'의 소비와도 밀접하게 연결된다. 생산주의와 짝을 이루는 소비주의, 석유와 땅속에 매장된 자원을 추구하는 것은 곧 (유정, 광산 그리고 추출 작업과 함께) 플라스틱에 대한 애착의 시발점인 것이다. _ p124
이는 문명 과정(추출, 가공, 사용)만큼이나 자연 과정(지질학적, 생물학적)을 차용한 하이브리드 사물로, 이런 과정이 없었다면 플라스틱은 탄생하지 못했을 것이다. 플라스틱은 자연을 길들이는 운동과 관련이 있어 보이고, 샴푸 통처럼 우리의 밀접한 일상까지 함께하는 만큼 플라스틱을 '길들인 재료'라고 부를 수 있을 것이다.
플라스틱이 '야생'의 상태로 돌아가면 혹자가 '인류세'라 부르는, 즉 지구의 생태계의 인간 발자국을 정의하는 미시, 중시, 거시적인 모든 측면에서 그 흔적을 남긴다. 빙하 코어부터 도심 나뭇가지에서 펄럭대는 비닐봉투를 거쳐 대양에 생겨난 플라스틱 섬까지, 플라스틱은 여기저기로 비집고 들어와 지금까지 끄떡없어 보였던 생태계의 균형을 깨뜨리고 있다. _ p125
그런데 쓰레기가 '2차 원료'가 되자 우리는 학교에서 배웠던 물의 순환과 같은 물질 순환의 조합을 보고 싶어 한다. 지질학, 화학, 산업, 문화 등의 힘이 작용하는 다차원에서 복잡한 구성을 가진 분자 가공을 쉽게 이해할 수 있는 이미지로 도식화하는 것은 우리에게 분명 매력적이다.
재활용 로고 역시 이런 측면에서 매력적으로 다가올 수밖에 없다. 녹색의 세 화살표가 어우러진 로고는 네덜란드 화가인 마우리츠 코르넬리스 에셔의 개미가 끝없이 이동하는 뫼비우스 띠를 표현한 작품과 비슷한 성질을 띠고 있다. 우리가 가벼운 마음 혹은 죄책감을 짊어지고 버리는 포장재의 두 번째 삶을 증명하는 이 표식은 흑백으로만 표시된, 일종의 오리엔탈리즘의 형태를 취하고 있다.
이것이 근래 산업과 협회, 그리고 정치권에서 사용하는 재활용과 '순환 경제'라는 슬로건의 진정한 기원이다. 혁명적인 사고라는 측면에서 이것은 신화다. 즉, '쓰레기 연금술'에 기초한 오래된 인간 사상은 그 저자를 알 수 없는 이야기라는 것이다.
스코틀랜드 철학자이자 경제학자인 애덤 스미스가 상상한 - '국가의 부'를 자동 조절하고 생산하는 - '보이지 않는 손'은 노동자들의 손은 잊게 만드는 추상적 개념으로, 경제 행위자들의 합리성이라는 신조와 결합되었고 '원형성에 가까운 정신적인 교환'과 융합되었다. 이는 쓰레기와 잔여물을 사라지게 하여 아무것도 남기지 않는 순환경제로 탄생했다.
사람들은 가치가 떨어지지도, 죽지도 않는 물건들이 - 생애가 짧다고 믿고 싶은 - '생애 주기' 속에서 인간의 의지와 손길에 따라 끊임없이 장소를 옮기고 스스로 변화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광산에서 곡괭이로 채굴한 폴리머를 인간의 계획대로 생애를 미리 생각하고 형태를 바꿀 수 있다는 것이다. 폴리머는 다양한 모양으로 만들어질 수 있고, 끈적끈적해질 수 있으며, 실처럼 가늘어지거나 알갱이가 될 수도 있고, 심지어 현미경으로 봐야 할 만큼 작아질 수도 있다.
자, 이제 애초의 폴리머는 사라진 걸까? 녹아서 전체에 섞인다. 스스로 형성하고 재형성되고 재활용된다. 설사 이 대열에 끼지 못하더라도 곰 인형이나 극지방에서 발견되는 작은 병 또는 섬유로써 제2의 삶이 있을 것이라는 기약이 있으니 끝이란 없다. 빙하가 '비극적 문제를 가진 바다'에 가둔 플라스틱 조각을 놔 주지 않을지라도 말이다.
이 순환은 우리가 피라미드 모양의 더미와 그것에서 흘러나올 것들에 대해 생각하지 못하게 할 것이다. 순환 안에서 더 이상 높고 낮음은 없으며, 원의 모든 지점들은 결정의 중심에서 항상 등거리에 있다. 고로 모두 동률이다. _ p126~130
에필로그 : 우리가 믿고 싶어 하는 '재활용'이라는 신화
합성 폴리머 봉투를 금지한 선구자 중에는 아프리카인들이 있다. 2020년에 일회용 플라스틱의 38퍼센트를 생산한 아시아에 비해 아프리카는 단 1퍼센트를 생산했다. _ p136
플라스틱 포장재 문제를 제거하고 보이지 않게 하며 무해하고 논쟁거리가 되지 않을 방안으로써, 플라스틱 가공 산업은 세계 폴리머 제품 생산량의 1퍼센트에 불과한 '바이오 플라스틱'에 투자하고 있다. 바이오 플라스틱은 (지질 시대 차원에서 재생되는) 탄화수소와는 반대로, 인간 세대 차원에서 재생 가능한 자원으로 만들 수 있다. _ p137
재활용 논리에 속아 영원히 사라지지 않는 플라스틱을 겁 없이 언제까지 사용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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